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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숙녀 윤지 5

by 자작가 JaJaKa

이웃집 토토로에서 두 소녀가 비 오는 날 정류장에서 우산을 쓰고 아버지를 기다리는 장면을 볼 때였다. 두 소녀가 옆에 보이는 누군가의 커다란 발을 보다가 이내 옆에 서 있는 토토로를 발견하는 그 장면을 보던 윤지가 놀란 듯이 눈이 커지고 숨을 멈춘 채 화면을 빤히 쳐다보다가 순간 옆에 앉아있던 수현의 손을 꼭 잡았다.

수현의 손바닥에 고사리 같이 작고 말랑말랑한 윤지의 손이 느껴졌다. 윤지는 재미가 있는지 집중해서 보느라 자기가 수현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고 그가 리모컨을 들어 TV화면을 끄자 윤지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아저씨, 토토로가 동물이에요?”


“음...... 글쎄. 윤지는 뭘 것 같아?”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던 윤지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깨비?”


“윤지는 도깨비 같다고 생각하는구나. 아저씨는 고양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렇게 큰 고양이는 없어요. 고양이는 아주 작아요. 내가 저번에 길에서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었거든요. 얼마나 작은데요.”


“그렇지? 고양이는 작지. 그럼 뭘까? 아저씨도 모르겠는데...... 저걸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도 구체적으로 토토로가 어떤 동물이거나 생명체다, 라고 말씀을 하지 않아서 저 만화영화를 본 각각의 사람들이 상상하도록 맡기신 것 같아.”


윤지는 수현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다음 질문으로 이어졌다.


“저런 버스가 있어요? 나는 아직 못 타봤는데......”


“아저씨도 아직 못 타봤어. 만화영화니깐 가능한 거야. 너무 깊게 생각하면 머리 아파져.”


“아저씨 머리 아파요?”


“아니 아저씨가 지금 머리 아프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깊게 파고들어서 생각하면 그렇다는 거야.”

“좀 누워요. 머리 아플 때 누우면 조금 나아져요. 우리 엄마도 머리 아프고 허리 아프고 어깨 아프고 할 때는 그냥 방에 누워 있어요. 그리고 좀 지나면 다시 일어나서 괜찮다며 움직여요. 아저씨도 여기 누워요. 그럼 괜찮아질 거예요.”


수현은 뭐라고 얘기할까 하다가 그냥 윤지의 말대로 소파에 누웠다. 그러자 윤지가 작은 손으로 수현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열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수현은 그렇게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다. 가만히 누워있던 그가 잠시 뒤에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정말 윤지 말대로 잠시 누워있었더니 좋아졌네. 이제 아저씨 괜찮아졌어.”


윤지가 웃으며 거 봐요. 내 말이 맞죠? 라는 표정을 지었다.


윤지가 갑자기 “아, 똥마려.”하며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온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들어갔다. 똥냄새 때문에 화장실에 들어갔다 바로 뛰쳐나온 그가 외쳤다.


“아휴 똥냄새. 어린아이인데도 냄새가 지독하네. 어린아이들은 냄새가 별로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네.”


윤지가 그런 수현을 바라보더니 짐짓 고개를 가로저으며 조금은 부끄러운 듯 조금은 그게 아니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그런 소리는 여자한테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에요. 똥냄새가 지독하다는 말이 여자에게 얼마나 부끄러운 말인 줄 아세요? 어디 가서든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돼요.”


“그런 말은 누가 가르쳐 준거야? 엄마가?”


“네, 엄마가 가르쳐 주었어요. 엄마가 멋진 남자란 자고로 여자를 위해주고 여자를 존중해 주는 남자라고 그랬어요.”


수현은 그런 윤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리 어려도 여자는 여자이니만큼 여자에게 지켜야 할 예의를 지켜 달란 그런 말인데......


수현은 팔짱을 끼고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윤지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가만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럼 아저씨가 어떻게 말을 했어야 했을까? 윤지 네가 말해줄래? 아저씨가 잘 모르니깐.”


“아저씨는 설령 냄새가 났다고 하더라도 그냥 냄새가 나지 않은 척 했어야 했어요. 내가 부끄러울 수 있으니 똥냄새가 지독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냥 아무 냄새도 나지 않은 것처럼 평상시대로 행동했다면 멋진 남자 어른으로 생각을 했을 거예요.”


“그럼 아저씨가 냄새가 나도 나지 않은 척 해야 한다? 그럼 그건 연기잖아. 거짓말이고.”

윤지는 수현을 답답하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때로는 그래야 한다고요. 아저씨는 여자를 너무 몰라요. 여자 친구도 없죠? 아마 없을 거 같아요. 있다면 이러지 않죠.”


수현은 고개를 저으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윤지를 보았다.


“남자는 냄새가 나도 나지 않는다고 해야 하면 여자는? 여자도 똥냄새가 난다거나 그런 말을 하지 않아야 하는 거니?”


윤지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이, 이러니 아직까지 사귀는 여자가 없지 않냐는 듯이 새침하게 말했다.


“여자랑 남자는 다르잖아요. 아저씨는 남자잖아요. 다 큰 어른.”


수현은 마치 억지라도 부리려는 것처럼 한마디를 내뱉고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컸다고 다 어른은 아니다.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철부지 어린애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똥냄새 사건 이후에 약간의 어색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수현은 남의 집에 와서 똥을 그것도 지독하게 냄새나는 똥을 싸 놓고는 오히려 당당하게 그깟 냄새 정도는 나지 않는 것으로 해달라고 요청하는? 아니 강요하는 윤지와의 대화를 피하고 싶었다.


홍길동처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똥냄새가 나도 여자니깐 똥냄새가 난다고 말을 하지 말라는 윤지의 말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똥냄새가 지독했다고 큰소리로 외치고 싶었다. 당장 방으로 달려 들어가 문을 닫고 벽을 향해 외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지 똥냄새가 정말 지독하다, 라고.


분위기가 조금 어색하다고 해서 윤지를 거실 소파에 혼자 내버려 두고 지금 서재에 들어가서 글을 쓴다거나 조용히 책을 읽을 수도 없었다. 가만히 서서 베란다 밖을 쳐다보는데 점심에 먹은 김밥을 너무나 적게 먹은 탓인지 허기가 느껴지는 것이 수현은 아무래도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파에 앉아 보지 않는 척하면서도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염탐하고 있던 윤지에게 우리 피자 시켜먹을까? 라고 물었더니 의외의 말에 잠깐 깜짝 놀라던 윤지가 눈알을 굴리며 입맛을 다시더니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러면서 이왕 시킬 거면 페페로니 피자에 치즈크러스트를 추가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자기가 돈을 낼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오후 6시에 배달된 피자를 식탁에 앉아 두 사람은 맛있게 먹었다. 윤지는 콜라를 꿀꺽 마시며 입 주위에 가득 기름을 묻혀가며 오랫동안 먹지 못한 사람처럼 맛있게 먹었다.


“윤지가 피자를 좋아하나 보네. 윤지는 피자를 언제 마지막으로 먹었어?”


손으로 피자를 들고서 먹던 그가 윤지에게 묻자 윤지가 잠깐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작년 크리스마스인가?”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네”


“그럼 4개월 만에 피자를 먹는 거구나?”


윤지는 수현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피자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고서는 그것을 씹느라 콜라를 마시느라 바빠 보였다.


“이렇게 잘 먹으면 엄마한테 가끔 사달라고 하지. 혹시 피자가 몸에 나쁜 음식이라 잘 사주시지 않나 본데 오늘 아저씨가 잘 모르고 사 준거 아닌가 모르겠다. 나중에 뭐라고 한 소리 듣지나 않을까 모르겠네.”


“아니에요. 엄마 돈 없어요. 피자 사 줄 돈 없어요.”


수현은 피자를 먹다가 물끄러미 피자를 먹고 있는 윤지를 바라보았다. 피자 사 줄 돈이 없다는 윤지의 말이 수현의 귓바퀴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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