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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숙녀 윤지 4

by 자작가 JaJaKa Feb 24. 2025

수현은 가만히 윤지의 눈과 손을 바라보았다. 윤지는 그런 그에게 우유수염이 생겨서 그랬다며 이제는 깨끗해졌다는 말을 하고는 자신의 의자에 다시 올라가 앉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의 뇌리에 갑자기 그의 입주위의 우유를 닦아주던 손이 김밥을 먹었던 손인 것을 인식하고는 김밥을 먹던 기름이 묻은 손이 아닌 다른 손이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도 배고프니?”     


“아니요. 이제 배불러요.”     


“아직 아이라 양이 작구나. 아저씨는 간신히 허기만 면한 정도인데.”  

   

윤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물었다.     


“허기가 뭐예요?”     


“허기는 말이야. 배고프다와 비슷한 뜻이야. 그러니깐 아저씨가 배부른 상태는 아니고 아직 조금 더 먹어야 배부른 상태가 된다는 거지. 아저씨의 말이 이해가 되니?”


윤지는 눈을 말똥말똥 뜨면서 뭔가 생각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알겠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김밥을 나한테 나눠줘서 지금 배고프다는 거네요. 내가 아저씨 거를 뺏어먹어서.”  

   

수현은 아니라는 뜻으로 손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야, 아니야. 윤지가 아저씨 거를 뺏어먹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이좋게 나눠먹은 거야. 아저씨가 김밥을 세 줄을 샀어야 했는데 너무 적게 산 거지. 그러니깐 아저씨가 더 샀어야 한다는 말인 거지. 아저씨가 너무 쩨쩨하게 산 거지. 혹시 모르니깐 넉넉하게 샀어야 했는데.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여간 먹을 것을 넣어주었으니깐 이제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더 이상 나지 않잖아. 그러면 된 거지, 그치? 저녁을 조금 일찍 먹지 뭐.”     


윤지는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표정으로 수현을 쳐다보았다. 아이의 눈빛에서 알쏭달쏭하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Never mind”     


그가 자신도 모르게 불쑥 자신의 입에서 영어가 튀어나왔다.     


“네버? 뭐라고 한 거예요?”     


“네버 마인드. 그냥 불쑥 튀어나온 말이야. 영어인데 아저씨가 그래도 영문과 출신이라 가끔 입에서 영어 단어가 튀어나올 때가 있어. 그렇다고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고, 습관처럼 가끔 쓰는 단어가 몇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야. 네버 마인드.”     


“네버 마인드?”     


“그래, 네버 마인드는 됐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또는 별거 아냐, 마음 쓰지 마 정도로 이해하면 될 거야.”  

   

윤지는 왼손으로 턱을 받치고서 곰곰이 듣고 있는 모습이 어떻게든 그의 말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인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는 모습인지 표정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김밥을 먹고 나서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다. 결혼을 해본 적도 없고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는 그가 아이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알 턱이 없었다. 조카랑 놀기라도 해 봤으면 그나마 조금은 알 텐데 그에게는 조카도 없기 때문에 무엇을 하면서 8시까지 버텨야 하는지 수현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음...... 윤지야. 우리 뭘 할까? 엄마가 오시려면 아직 6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하는데......”     


윤지는 소파에 앉아 있을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래, 솔직히 아저씨가 아이에 대해서 잘 몰라. 인정해.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노는지 등 아는 것이 하나도 없어. 왜냐고? 아저씨는 결혼도 아직 안 했고 아이도 없으니깐. 그건 너도 이해해 줘야 해.”   

  

수현의 말을 듣던 윤지가 그를 쳐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조금은 용기가 났다.      


“고마워. 네가 이해해 주니 그나마 아저씨가 덜 뻘쭘하네. 아, 뻘쭘은 표준어는 아닌데 무슨 뜻이냐면 민망하다, 부끄럽다와 비슷한 뜻이야.”     


그의 말에 윤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의 표시를 했다. 왜 이렇게 어색하냐, 하는 생각을 하며 그가 벽시계를 보는데 시계의 분침이 건전지가 다 된 것처럼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시계 뚜껑을 열어서 시침과 분침을 손으로 마구 앞으로 돌려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음...... TV 볼래? 애니메이션 틀어줄까? 책 읽을래? 아저씨는 책 읽는 거 좋아하는데...... 근데 네가 읽을 만한 책이 없지. 윤지 너 소설책 보기에는 좀 이르지? 한글은 뗐는지 묻는 게 먼저인가?”     

“저 글자 읽을 줄 알아요. 엄마가 가르쳐줘서 동화책은 다 읽을 줄 알아요.”     


“오, 그래? 근데 소설책은 무리겠지?”     


“소설책이 뭐예요?”     


“아냐, 네버 마인드. 신경 쓰지 마.”     


수현은 어린아이에게 자기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젓고는 옆에 놓여 있던 리모컨을 쥐고서 TV전원을 켰다.     


“너 혹시 ‘이웃집 토토로’ 라고 들어봤어?”     


“아뇨”     


“있잖아 아저씨가 되게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감독님이 있거든.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일본사람인데 그분이 만든 애니메이션이 많아. 정말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 찾아서 보렴. 정말 강추야. 강추는 무슨 말인지 알지? 몰라? 정말로 대단히 강력하게 추천한다는 말이야. 그냥 그런 말이 있다는 것만 알면 돼. 네버 마인드. 어찌 됐든 그중에서 이웃집 토토로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어. 아저씨가 재미있게 보았고 윤지도 재미있게 볼 것 같아 추천하고 싶은데...... 아저씨 믿고 한번 볼래?”     


윤지는 수현을 미덥지 않은 얼굴로 쳐다보았다. 이름도 낯설고 이 아저씨가 재미있게 보았다면 왠지 재미가 없을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젓고 싶지만 마땅히 할 일도 없고 또 아저씨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지가 보고 싶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수현은 내심 얼굴이 밝아지더니 VOD에서 이웃집 토토로를 검색해서 틀어주었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한 미소가 번졌다. 만화영화가 시작되기 전의 잠깐 동안의 시간 동안 수현은 자신이 추천한 만화를 감동 깊게 보고서 나중에 그에게 정말로 좋았다고 재미있었다고 윤지가 말하는 장면을 상상했다.      


윤지와 나란히 이웃집 토토로를 보다가 어느 순간 수현은 잠이 들어버렸다. 어제 늦게까지 일한 데다가 오늘 아침에 너무 일찍 잠에서 깬 영향 때문이었을까.      


소파에서 꾸벅꾸벅 졸던 그의 다리에 어떤 감촉이 느껴져서 정신을 차려보니 윤지가 그의 다리에 매달려서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마 토토로를 보고 무서워서 놀란 것인지 아니면 졸고 있는 수현을 깨워서 같이 보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졸린 눈을 억지로 밀어 올리고 이웃집 토토로를 같이 시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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