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경숙의 빈소가 차려져 있는 3호실을 찾았다. 다른 빈소는 화환이 복도까지 늘어서 있고 문상을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그가 도착한 3호실에는 단 두 개의 화환만이 덩그러니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경숙이 일했던 학습지 회사에 보낸 화환과 대학교 영문과 동기들의 이름으로 보낸 화환이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간 수현은 경숙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아직 꽃다운 37세의 젊은 나이의 경숙은 영정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가 잠시 영정사진을 쳐다보고 서 있는데 그의 허리를 감싸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니 윤지가 눈이 퉁퉁 부어서 그의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윤지의 퉁퉁 부은 눈과 지금 믿기지 않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두려움과 왜 엄마가 저렇게 사진 속에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여러 가지 표정이 윤지의 얼굴에서 나타났다. 낯설고 두렵고 무서운 현실 앞에서 그나마 아는 얼굴이 나타나 반가운 마음에 윤지는 수현의 바지춤이 동아줄이라도 되는 것 마냥 그 자리에 서서 꼭 붙들고 있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윤지를 불러 세우며 인사를 하게 비켜서라고 윤지를 잡아끌었다. 헝클어진 머리에 눈이 퉁퉁 부은 노인의 주름진 얼굴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고되었을지 느끼기에 충분할 정도로 구부정한 허리에 뼈만 앙상한 모습이었다. 윤지의 할머니로 보이는 분에게 억지로 끌려가는 윤지의 가냘픈 모습이 수현의 마음을 더 착잡하게 만들었다.
수현은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경숙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해야만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서 어떤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목구멍에 뭔가가 막힌 듯, 누군가가 그의 눈물샘을 톡 하고 건드린 듯, 갑자기 그의 가슴속에서 어떤 것이 쿵하고 내려앉은 듯이 먹먹한 느낌에 눈에서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자리에서 엉엉 울고 있는 수현을 데려다가 빈자리에 앉힌 것은 먼저 와 있던 용수였다. 수현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며 빈 종이컵에 가득 물을 따라 주던 용수가 말을 꺼낸 것은 그가 종이컵에 든 물을 들이켜고 긴 숨을 토해낸 뒤였다.
용수가 들은 얘기로는 어제 수업을 끝내고 다음 수업을 가기 위해 경숙이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갑자기 승용차가 경숙이 서 있던 횡단보도로 돌진을 했다고 했다.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사망을 했다고 들었다는 용수의 말이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말처럼 수현의 귀에는 웅웅웅 거리는 아주 작은 소리로 들렸다.
70세 노인운전자가 몰던 차량으로 본인은 브레이크를 밟으려고 밟은 것이 엑셀이었다고 했다. 경찰은 운전미숙으로 보이는 사고로 보고 있다고 했고 나이가 든 노인이 엑셀과 브레이크를 순간 헷갈려서 일어난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결론이 날 것 같다는 용수의 말에 수현은 말없이 빈 종이컵만 내려다보았다.
누군가의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한 사람의 생명을 그리고 한 가정의 행복을 송두리째 망가뜨려 버렸다. 그 운전자는 실수일지 몰라도 누군가는 그로 인해 꽃다운 목숨을 잃었고 또한 한 아이의 엄마를 뺐었으며 누군가의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잃게 만든 것이다.
그 운전자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크나 큰 상처를 주었지만 아마 그가 받게 될 죗값은 그에 비하면 턱없이 낮을 것이다. 나이 든 노인의 실수로 벌어진 사건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엄청난 현실이 눈앞에 펼쳐져있기에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더 막막해하는 분위기였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현실로 일어나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허무한 죽음이 일어날 줄이야...... 왜 그 노인은 그때 그런 혼동을 일으켰는지, 차라리 차를 몰고 나오지 말지 자신도 없으면서 왜 차를 몰고 나와서 그런 사고를 일으킨 것인지 정말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용수가 권하는 소주를 두 잔 째 마시고 가만히 빈 종이컵을 손으로 돌리고 있을 때 수현의 옆자리에서 조그마한 손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윤지가 일회용 접시에 놓인 음식 중에서 하나를 집어서 수현에게 내밀고 있었다. 그는 가만히 윤지의 고사리 같은 손에 들린 음식을 바라보았다.
“엄마가 술을 마실 때 술만 마시면 배가 아프다고 했어요. 안주도 같이 먹어야 배가 안 아프대요.”
수현은 윤지가 내민 음식을 말없이 받아먹었다. 입안에서 음식을 천천히 씹는데 그의 눈에서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수현은 옆에 앉은 윤지를 가만히 안아주었다. 가장 힘든 사람이 윤지인데 그런 윤지 앞에서 눈물이 나 보이고 있는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졌다.
앞에 앉은 용수는 수현의 품에 안긴 윤지를 바라보며 “네가 윤지구나. 예쁘다는......”라고 말을 하다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소리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는지 하던 말을 멈추고는 급하게 소주잔을 들어 입에다가 털어 넣었다.
빈소에 조문을 하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경숙 어머니도 친척이 거의 없는지 찾아오는 사람은 대부분이 경숙의 친구나 회사동료들로 경숙과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썰렁한 빈소에 수현은 밤늦게까지 남아서 빈소를 지켰다. 경숙 어머니도 충격이 클 텐데 누구 한 명은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그 시간들을 이를 악 물고 가까스로 버텨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한산하거나 순간 울컥할 때는 고개를 돌려서 한참을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수현의 마음이 짠했다.
윤지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하고 지쳤었는지 그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수현은 잠이 든 윤지가 깰까 봐 한동안 그 자세 그대로 잠이 든 윤지를 바라보며 그렇게 앉아 있었다. 며칠 사이에 핼쑥해져 버린 윤지의 얼굴에 눈 밑으로 볼을 따라 눈물자국이 나 있었다. 어린 윤지를 두고 경숙이 어떻게 떠나갈는지...... 윤지를 바라보는 수현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밤늦은 시각에 다리를 절면서 수현에게 걸어온 경숙 어머니가 윤지를 옆에 연결된 작은방에다가 눕혀서 편하게 자게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그가 윤지를 안아서 방에다가 눕혔다. 잠이 든 아이는 나쁜 꿈을 꾸는지 찡그린 얼굴을 하며 뒤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