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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숙녀 윤지 14

by 자작가 JaJaKa

수현은 윤지를 쳐다보다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윤지에게 설명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주제 같아서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 들었다.


“윤지가 지금 나이에 다 이해하기에는 어렵겠지만 하여간 아저씨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평범하게 살고 싶은 사람. 하하하.”


“아저씨는 평범한 사람이구나.”


“그래. 평범한 사람. 윤지는 꼬마 숙녀 같아.”


“꼬마 숙녀? 숙녀가 뭐예요?”


“숙녀라...... 잠시만.”


윤지의 질문에 그가 급하게 인터넷으로 숙녀의 뜻을 찾아봤다.


“아저씨가 인터넷에 찾아봤더니 숙녀는 교양과 예의와 품격을 갖춘 현숙한 여자라고 되어 있네. 그리고 성년이 된 여자를 아름답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어.”


윤지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수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깐 윤지는 아저씨가 보기에 교양과 예의가 있는 참한 소녀라고 생각을 해. 그런데 아직 어른이 되기 전이니깐 숙녀이긴 하지만 어리다는 뜻으로 꼬마 숙녀가 아닐까 싶어서.”


“정말 제가 교양과 예의가 있어요?”


“그럼 그럼. 아저씨 보기에는 그래.”


윤지는 수현의 말을 듣고는 교양과 예의가 무슨 뜻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기분이 좋아진 듯 얼굴 가득 웃음꽃이 피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말해줘야겠다고 하면서 꼬마 숙녀 윤지라고 낮게 읊조렸다.


“나는 꼬마 숙녀 윤지랍니다.”


“꼬마 숙녀 윤지 씨이이이......”


“네에에에......”


수현과 윤지는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해맑은 윤지의 웃음과 호탕한 수현의 웃음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일을 마치고 윤지를 데리러 가기 위해 들른 경숙이 싱글벙글 웃고 있는 두 사람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쳐다보다가 뭔지도 모른 채 같이 웃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나한테도 얘기해 줘야 같이 웃던가 하지? 응?”


경숙의 말에 윤지가 “꼬마 숙녀 윤지야, 나는. 꼬마 숙녀 윤지.”라고 말하며 다시 웃었고 수현도 덩달아 “윤지 씨이이이......”하고 웃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른 경숙은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두 사람의 웃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고 그냥 웃어야 되는 분위기인 것 같아서 함께 웃었다.


웃긴 일이 있어서 웃는 게 아니더라도 웃다 보니 그날의 피로가 그 웃음에 함께 날라 가는 것 같았다. 웃을 일이 없는 일상에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웃을지라도.


그날, 셋이 함께 껄껄껄, 하하하 웃던 그날이 그가 경숙의 얼굴을 보는 마지막 날이 될 거라는 것을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알았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어떤 것이 달라졌을까?


그 후로 열흘 가까이 수현은 윤지를 보지 못했다. 아마도 윤지를 맡길 일이 생기지 않았는지도 모르지만 그도 글을 쓰는 작업을 마무리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쓸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일단 지금 쓰는 글을 가능한 한 정해진 기간 내에 끝내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서재의 노트북 앞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글 쓰는 작업이 마무리되어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나면 한번 연락을 해서 윤지와 경숙을 데리고 도심을 벗어나 가까운 수도권 근교의 한적한 자연휴양림이나 윤지가 가보고 싶어 하던 놀이동산이라도 같이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며칠 뒤 출판사에 메일로 원고를 보내고 나서 담당 편집자와 통화를 하고 나니 그때서야 피로가 쌓인 흔적이 나타나는지 몸 여기저기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졌다. 수현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커피를 타서 베란다로 걸어가 창밖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한 모금씩 커피를 마시며 바라본 창밖은 날씨가 흐려서 그런지 왠지 스산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비가 오면 좋으련만 비도 오지 않고 찌뿌둥하게 흐리고 어두침침한 날씨를 보니 기분 또한 낮게 가라앉는 것 같아 그는 이런 날씨를 좋아하지 않았다.


두 손으로 커피를 감싸고서 조금씩 커피를 마시던 수현은 휴대폰이 울리는 소리에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대학동창인 용수의 이름이 화면에 떠 있었다. 용수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안부전화를 하는 사이로 전화통화를 하면 거의 만나서 술을 한잔 기울이고는 하는 친구였다. 휴대폰 화면에 용수라는 이름을 보고는 오늘 날씨도 꿀꿀하니 한잔 하자고 전화하는가 보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잘 지내지? 항상 네가 먼저 전화를 주는구나.”


“너 소식 들었어?”


인사나 안부를 묻는 것도 없이 다짜고짜 소식 들었냐고 묻는 용수의 목소리가 평상시와는 다르게 다급해하면서 가늘게 떨렸다.


“무슨 소식? 뭔 일 있어?”


“경숙이가 어제 교통사고로 죽었대.”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어? 누가 죽어?”


“경숙이가...... 죽었대. 지금 나도 애들한테 연락을 받고 믿기지가 않아서 멍하니 있다가 수현이 네가 요즘 경숙이 힘들 때마다 경숙이 애를 돌봐준다는 얘기를 들어서 혹시나 해서 너한테 전화를 해본 거야. 네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용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휴대폰을 들고 있던 그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심장이 벌렁벌렁 대는 것이 마치 폭주기관차가 굉음을 내며 달려가는 것만 같았다. 수현은 숨을 쉬기가 곤란한 듯 가쁜 숨을 뱉어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얼마 전에 셋이 환하게 웃던, 무슨 일로 그렇게 웃느냐며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같이 따라서 웃음을 짓던 경숙의 모습이 떠올랐다.


수현은 멍하니 그 자리에 그렇게 주저앉아 있다가 휴대폰의 문자 알림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장례식장의 위치를 알려주는 문자메시지였다.


수현은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기에 너무나 마른 몸의 경숙을 떠올렸다. 피곤이 쌓여서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긴 눈과 햇빛에 노출이 많이 되어서 그런지 학생 때와 다르게 기미가 생긴 얼굴과 윤지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보이며 미소 짓던 경숙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욕실에 들어서서 세면대 앞에 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봇물처럼 터져 나와 한참을 욕실에 선 채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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