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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숙녀 윤지 13

by 자작가 JaJaKa

점심을 가볍게 먹고 난 후 윤지가 수줍게 수현에게 물었다.


“저 혹시 저 방 구경해도 돼요?”


윤지가 가리킨 방은 수현의 침실이었다. “저 방은 왜?”라는 수현의 물음에 윤지는 조그맣게 “맨날 방문이 닫혀 있어서 안에 무엇이 있나 궁금해서요.”라고 말했다.


“우리 집은 방이 2개인데 늘 열려 있거든요. 근데 아저씨 집은 다른 방은 다 열려 있는데 저 방은 늘 닫혀있어서 궁금해서요.”


“저기는 아저씨가 자는 방이거든. 낮에는 잘 일이 없으니 따로 열어 놓을 필요가 없어서 그래.”


“아저씨가 자는 방이에요?”

“응. 궁금하면 아저씨랑 같이 들어가서 어떻게 생겼나 볼래?”

“네.”


수현은 닫혀 있는 침실을 열어서 윤지가 보게끔 옆으로 비켜섰다. 윤지는 방에 들어가 둘러보았다. 커다란 침대가 놓여있고 이불은 엉망으로 되어 있을 것 같은데 나름 정리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침대 옆에 놓인 탁자 위에 작은 조명등이 하나 놓여 있었고 침대 맞은편에는 작은 장식장이 있었다. 장식장 위에는 수현이 쓰는 것으로 보이는 스킨과 로션, 바디로션, 기타 몇 가지 화장품으로 보이는 것이 줄지어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가족사진으로 보이는 액자 세 개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장식장 밑에는 조그마한 회색의 휴지통이 있었다.

윤지는 방의 크기에 비해 단촐해 보이는 수현의 침실을 둘러보다가 장식장 위에 있는 액자를 보았다. 수현과 나이가 든 남자와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을 손으로 가리키며 윤지가 물었다.


“아저씨 아빠 엄마예요?”


“그래. 아저씨 아빠와 엄마야. 닮은 것 같니?”


“네. 많이 닮아 보여요.”


윤지는 다른 두 사진을 보았다. 그가 근사한 건물 앞에서 팔짱을 끼고 짝 다리를 짚고 서서 찍은 사진과 어느 미술 작품 앞에서 엄지를 척하고 올리며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옆에 서 있던 그가 윤지에게 사진 설명을 해주었다.


“이 사진은 아저씨가 유럽 여행할 때 찍은 사진인데 구체적으로 런던에 여행할 때 찍은 사진이야. 이 건물을 빅벤이라고 부르는데 아주 오래전에 지은 국회의사당 건물로 역사가 아주 깊은 곳이야. 사진 속의 아저씨 자세 괜찮지 않니?”


수현의 말에 윤지는 살짝 고개를 가로저을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사진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갔을 때 벨베데레 궁전이라고 하는 곳을 갔었거든. 거기에 유명한 화가 클림트 작품들이 있어. 아주 유명한 화가야. 지금은 살아 계시지는 않지만 그분이 아주 멋진 그림을 많이 남겼어. 그래서 그분이 그린 그림을 보기 위해 매년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몰려든단다. 아저씨가 벨베데레 궁전에 전시된 클림트의 작품 중에서 한 작품 앞에서 찍은 거야. 작품 이름이 뭐였더라. 아저씨 기억이 이렇단다. 나중에 기억이 나면 알려줄게. 하여간 새벽같이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아침 일찍 가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적을 때 간신히 사진을 건질 수 있었지. 아마 엄청 좋았던 게 표정에서 다 나타나지?”


윤지는 수현의 설명을 다 듣고는 “나도 가보고 싶다.”라는 말을 했다.


“윤지는 아직 어리니깐 기회가 많을 거야. 나중에 크면 여기저기 많은 나라도 가보고 많은 도시도 가보렴. 세상 밖에는 보고 배울 것들이 참 많이 있단다.”


“내가 갈 수 있을까요? 저기 가려면 돈이 많이 들지 않아요?”


“돈이 들긴 하지. 나중에 윤지가 크면 그때 가도 늦지 않아.”


윤지는 가만히 사진을 바라보다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수현에게 말했다.


“방 구경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방이 크고 넓어서 좋은 것 같아요. 우리 집도 아저씨 집처럼 넓었으면 좋겠는데.”


방 구경을 하고 나온 후 수현이 준 초콜릿을 먹던 윤지가 그에게 물었다.


“저 가끔 아저씨한테 전화해도 돼요?”


“그럼 그럼. 되고말고. 아저씨 전화번호 적어줄까?”


“네”


수현이 메모지에 적어 준 전화번호를 받아 든 윤지는 기분이 좋아진 목소리로 그의 전화번호를 소리 내어 말하고서는 고이 잘 접어서 자신의 가방 멘 앞에 있는 지갑에다가 잘 넣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또는 아저씨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전화하렴.”

윤지는 수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윤지의 입술에 묻은 초콜릿을 휴지로 닦아주던 수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저씨는 글을 쓰는 게 재미있어요?”


“재미있을 때도 있고 재미가 없을 때도 있지. 늘 재미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겠지.”


“왜 욕심이에요? 늘 재미가 있으면 좋잖아요.”


“음...... 윤지가 책을 읽고 싶을 때 읽거나 재미난 책을 읽으면 재미가 있겠지만 엄마가 억지로 책을 읽으라고 하거나 윤지가 생각하기에 재미가 없는 책을 읽어야 한다면 재미없겠지? 마찬가지로 아저씨도 글을 쓰는 일이 때로는 힘들기도 하고 재미없는 일이기도 해.”


윤지는 수현의 말을 듣고는 마치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중얼거렸다.


“전 책을 읽는 게 좋지만 가끔 가다가 싫을 때도 있어요. 그럴 때는 책을 읽지 않고 다른 일을 해요.”


“그래그래. 그게 현명한 일이야. 억지로 하는 것은 좋지 않아. 능률도 떨어지고 말이야.”


“그래도 엄마가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했어요. 아저씨처럼요.”


수현은 순간 당황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책을 많이 읽어야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맞는 말씀이야. 그러나 아저씨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란다. 그건 엄마가 그냥 하신 말씀이야.”


“왜 아저씨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에요?”


“음 대답하기가 곤란한 질문이긴 한데. 하여간 아저씨는 아니야. 훌륭한 사람은 착하고 어진 마음이 있어야 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지나치지 말고 도와줄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의 이익보다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우선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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