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내가 하고 싶었던 것
사실 나는 어떤 계기가 있기 전까지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회사에선 one note나 스케줄러에 늘 업무기록을 하고,
여행 가서는 매일 일기를 쓰려고 노력했으며,
SNS를 좋아하고 블로그도 9년째 하면서도,
나는 내가 '글'을 쓴다거나 언젠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글재주가 있는 편도 아니고,
굴곡이 많은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니며,
누군가에게 뭔가 가르침을 전달해야 작가라고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고 싶었다고?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있다.
너무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은 순간에 갑자기 찾아오는 깨달음.
나에게 그런 순간은 2020년 어느 겨울 캐나다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의 질문으로 찾아왔다.
그 동료는 Christopher라는 음악과 작곡을 매우 사랑하여 작곡을 전공한, 하지만 현실에 부딪혀 내가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셰프로 일하던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그와는 매주 수요일마다 함께 마감을 하고 집까지 15분 정도 같이 걸어가곤 했었다. (사는 곳이 매우 근처였다.)
처음에는 그와 집을 걸어가는 순간이 부담스러웠다.
일단 나는 영어로 원어민과 1:1로 대화를 오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었는데, Chris는 캐나다 토박이인 데다 조용한 편이라, 그가 순간순간 던지는 짧은 말을 내가 이해하진 못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알고 보니 그는 조용하긴 했지만 솔직하고 배려심이 많은 친구였고, 적당히 천천히 얘기를 해주었기 때문에 집에 가는 동안 마구 수다를 떨며 심심하지 않게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라 그런지 걷는 동안 이런저런 특히 꿈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이야기들을 종종 했었다.
그렇게 한 5~6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그냥 손님이 많아 힘들었던 평범한 퇴근길이었는데, 그가 "만약 현실적인 거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면 넌 뭘 할래?"라고 물어봤다.
어릴 적부터 꿈도,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던 나는 순간 막막했다가, 그저 새로운 경험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냥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 그리곤 그에게 너는?이라고 물었는데, 당연히 음악일 거라고 생각했던 내 예상과는 다르게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재능에 상관없이 하고 싶은 것을 고르라면 자기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예상과 다른 대답을 들어서인지, 누군가 나에게 이제껏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없어서 그랬는진 모르지만, 집에 도착해서도 '내가 뭘 하고 싶지?'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세계여행도 틀린 대답은 아니었는데, 뭔가 그것보다 조금 더 '동사'에 가까운 답이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골똘히 고민을 하다, 정말 갑자기 머릿속에서 '글을 쓰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너무 의아했다.
웃기게도 그전까지는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거나, 잘한다거나, 하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을 정말 전혀 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현실적인 거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라는 전제가 튀어나오니 글쓰기가 나오다니.
생각도 못해봤던 동사라 스스로도 너무 신선했고,
'사실은 글을 쓰고 싶어'라고 Chris에게 얘기한 순간 약간의 뿌듯함과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실은 글을 쓰고 싶어' 라니...
누군가에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온 생각을 전달하는 것의 힘은 생각보다 큰 것 같다.
내가 글을 쓰고 싶었다는 것을 자각한 뒤로는 막연하게 계속 글을 쓰는 생각을 해왔다.
그렇다고 딱히 너무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거창한 세계관이 있는 소설을 쓴다거나, 누군가에게 깨달음을 주는 자기 개발서는 아닐지라도, 그냥 나를 쓰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 있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거의 2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시작해보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에 벌써 뿌듯하다.
조금 더 깊게, 넓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