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58. 육천만 원을 마련해 계약금을 치렀다. 한고비 넘겼다. 현재 전세금으로 근처로 이사하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인생이라는 게 그렇다. 시동이 꺼지지 않는 한, 깊은 수렁이나 경사가 너무나 높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든 간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오늘은 발을 디딘 장소가 깊은 수렁이라 느꼈다. 오늘은 손을 뻗어 오르려는 곳이 경사가 너무 높다고 느꼈다. 오늘을 버티면 좋아질까? 다가올 오늘은 수월할까? 그렇게 오늘만 살아왔다. 더는 꿈을 꿀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더는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열심히 움직이고는 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겠다. 그래도 말이다, 신기한 게 꾸역꾸역 또 돌아간다. 죽을 것같이 힘든 시간도 지나고 나면 별거 없다. 더군다나 추억까지 생긴다. 당시는 절대로 웃을 수 없었던 시간을 회상하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99]가 있다. 만약에 그동안 얻은 지식을 온전히 지닌 채 과거로 돌아가면 현재와 다르게 살 수 있을까? 그때보다 더 잘 해낼 수 있을까? 어느 때로 돌아가고 싶을까? 질문의 방향이 틀렸다. 이렇게 묻고 싶다.
과거로 돌아가면
부자로 살 수 있을까?
59. 인생에서 후회하는 게 있다면, 내일을 살아보는 거다. 항상 오늘만 어떻게든 넘기려고 행동하니 내일을 맛보는 기분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오늘의 맛은 떫은 감 맛이다. 배고파서 허겁지겁 눈앞에 놓인 떫은 감을 먹는다. 그래서 통증, 속 쓰림, 메스꺼움 때로는 구토로 이어지는 소화불량의 인생이다. 내일을 기다렸다면, 떫은 감은 입안에 달콤함을 가득 채우는 홍시로 변했을까? 내일을 기다린 적이 없으니 알 수는 없다. 떫은 감조차 인생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열심히 떫은 감을 먹는다. 축적된 지식을 지니고 과거로 돌아가면 난 홍시를 먹을 수 있을까? 장자의 잡편 중 제23편의 경상초 내용이 떠오른다.
知止乎其所不能知(지지호기소불능지),至矣(지의)
지혜가 있어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 것이 지극한 앎이니,
若有不即是者(약유부즉시자),天鈞敗之(천균패지)
만약 이를 따르지 않으면,
자연의 균형은 무너질 것이다. [100]
60. 장자의 말씀처럼 미래의 지식을 지닌 채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꾸는 것 자체가 이미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행위이다.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말고 스스로 한계를 인정할 때 행복한 삶은 비로소 다가온다고 학생들에게 수십 번 말했다. 하지만 정작 나는 떫은 감을 먹을 수 있다는 감사함보다 먹을 수 없는 홍시를 그리워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어쩌면 홍시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오늘을 버티며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율배반적인[101] 삶이다. 효상이와 우현 그리고 학생들에게 귀가 닳도록 강조한 말을 기억하는가?
“내일 죽을 확률보다 10년을 더 살 확률이 통계적으로 훨씬 높아. 10년 후, 미래의 너에게 미안할 행동을 오늘 하지 말아라.”
61. 솔직히 부끄럽다. 난 위선자다. 주위 사람에게 다가올 미래를 상상하여 오늘을 살아가라 강조했지만, 정작 나는 내일을 그리며 살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결혼한 이후로 무엇이 나를 위한 내일인지 알 수 없어서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잘살고 있다는 위안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그렇다. 답도 없는 수많은 상념[102]이 장자가 말씀하는 자연의 균형일지도 모르겠다.
적막함을 찢을 뱃고동 소리가 가득하여 이 집이 시끄러웠으면 한다. 내게 말을 걸지 않아도 된다. 눈빛을 맞추어 웃어주지 않아도 된다. 아이와 아내의 체취가 섞여 내 코를 자극한다면 그것으로 잘살고 있다는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그 위안은,
어쩌면 나를 포기한 작은 선물일지도,
처음부터 난 외톨이였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보니까 인생은 어떻게든 굴러간다고,
그러니 아등바등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보니까 계획해 살아간다고,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그러니 아등바등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보니까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모든 이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다고,
그러니 아등바등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살아보니까, 살아보니까, 살아보니까,
그러니 아등바등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그거 아는가?
이렇게 말하는 이는
항상 과거를 그리워한다.
항상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아무래도 난
과거로 다시 돌아가도
부자는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난 말이다.
절대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TO BE CONTINUED....
[99] 예술 작품의 바탕이 되는 재료.
[100] 차경남,『초월하라 자유에 이를 때까지』,미다스북스, 2012, p73
[101] 이율배반 (二律背反):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명제가 동등한 권리로서 주장되는 일.
[102] 상념(想念): 마음속에 품은 여러 가지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