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8: # 선택 6화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by 카테난조





Episode 8:

# 선택 6화





25. 부장님은 기회라고 몇 번이나 반복하여 말한다. 공정과 상식을 위배[27]하는 어카운트가 기회라고? 사회생활 시작한 지, 고작 3년 차다. 이제 시작하는 내 삶을 시궁창으로 몰아넣는 게 아니고? 부장님의 날렵하고 각진 턱이 빛을 발하는 날이다. 완벽한 악당, 조커의 얼굴이다. 웃을 때마다 보이는 촌스러운 금니가 악당의 얼굴을 완성하는 완벽한 액세서리다. 부장님은 이렇게나 무섭고 소름 끼치는 얼굴을 지닌 사람이었나? 남자들만 득실대는 이곳을 3년이나 몸담은 이유는 따로 있다. 돈 때문에? 난 효상이가 아니다. 평생 돈에 구애[28]받지 않았다. 그럼 명예 때문에? 난 승기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게 임우현 마음에 있을 리 만무[29]하다. 나, 임우현에게 돈과 명예는 자유로운 영혼의 삶을 망가뜨리는 해충 같은 존재다. 솔직히 말하면, 회사 꼰대들이 꼭꼭 숨겨 놓은 럭셔리한 비밀 장소를 공유할 수 있어서다. 이게 영업인의 묘미[30]라고 해야 할까? 어린 나이에 이런 곳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새로운 신세계를 경험했다고 말해야 하나?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다. 직접 경험해야 한다. 물론, 사비로 다니지 못할 만큼 집안 형편이 어렵지도 않다. 그런데 말이다. 희한하게도, 그동안 뻔질[31]나게 다녔던 접대 장소는 인터넷으로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 그들만의 세상이다.



젊은이는 그들만의 세상에

입장할 수 없다.


그들의 인생에 기생해

기쁨을 공유하는 게


난 참 좋았다.





26. 젊음은 영원하지 않다. 젊음을 앞세워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척해도, 천둥벌거숭이처럼 혁신을 설쳐대도, 결국 기득권이 걸었던 그 길을 걸어야 편안하게 콩고물을 먹을 수 있는 불편한 법칙,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다. 승기처럼, 자존심만 센 부류는 세상의 법칙을 부정하려 한다. 항상 어른들이 문제라고 말한다. 지도 다 큰 어른이면서, 자기는 아직 사랑을 받을 청년이라 박박 우긴다. 승기는 내일모레 쉰 살이다. 쉰 살인 청년도 존재하는가? 그래, 소싯적[32] 책을 좀 읽었나 보다. 말은 청산유수[33]다. 지가 도대체 청년에게 무슨 도움을 주고 있다고?



승기가 자기 학생에게

제일 많이 하는 조언은,


“너 자신을 좀 더 믿어봐.”


승기야, 헛소리 그만하고

너나 좀 믿어라.


그만 세상 탓 좀 하고





27. 승기는 세상을 바꾸려고 나서지도 않는다. 승기의 외침은 술 한잔을 기울일 수 있는 안줏거리에 불과하다. 입만 열면 정치 이야기다. 가진 자의 사악한 음모로 오늘도 힘들게 살아간다고 푸념한다. 집을 살 능력도 없으면서, 그렇게나 부동산 정책에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돈부터 먼저 모아라. 선비놀이 좀 그만해라. 네 와이프가 불쌍하다. 겉으로는 재물에 초연한 척한다. 하지만, 속으로는 너무나 부자가 되고 싶어 하며, 동시에 가진 자를 시기하는 그런 부류가 딱 김승기다. 한때는 승기가 베스트 술친구였다. 회사 사람들과 마음을 터 넣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금방 소문이 퍼져서다. 접대 자리로 회사 사람들과 숱한 술자리를 가진다. 하지만, 이는 그저 업무의 연장선이다. 늘 긴장해야 하고, 항상 조심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즐겁지 않다. 승기는 회사 사람이 아니라 좋았다. 자주는 아니어도 승기의 매운맛도 좋았다. 터 넣고 이야기해도, 고과 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가장 매력적인 장점이었다. 효상이는 술을 못한다. 더군다나 효상이가 집 안에 처박혀 글을 쓴다고 선언한 후, 효상이를 불러내기가 어렵다. 자연스레 승기와의 만남이 잦았다. 만남 초기에는 승기가 소주파라는 사실을 몰랐다. 둘이서 싸구려 양주를 엄청나게 마셔댔다. 당연히 승기는 양주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순수한 마음으로 눈 호강도 시킬 겸, 비싼 곳을 데려갔다. 승기가 좋아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승기야, 부자들만 다니는 비밀 아지트야.

여기서 진짜 양주를 먹을 수 있어.

그동안 우리가 먹었던 싸구려 술 말고.”


“우현아, 난 소주가 더 편해.

이런 곳은 사치스러워.

너도 정신 차릴 때도 됐잖아.

언제 철들래?”





28. 웬 훈장질? 정말 지랄도 가관이다. 곧 죽어도 대장을 해야 하는 성격이다. 누가 너보고 돈을 내라고 했나? 네 주머니 빈털터리인 것? 내가 제일 잘 안다. 언제부터 소주만 먹었다고. 나와 싸구려 양주를 기울이던 날은 기억 속에서 사라진 거니? 까마귀를 삶아 드셨나? 그날 이후로, 승기는 내 앞에서 소주만 먹는다. 가증스럽다. 효상이가 물들까 걱정이다. 어쩌다 소주파가 된 김승기 씨, 그냥 그렇게 다른 사람 탓, 세상 탓하면서 소주나 먹고살아라. 그게 딱 너랑 어울린다. 세상 탓은 그리하면서, 기득권이 만들어 놓은 길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기득권에 기생해서 사는 게 딱 김승기다. 최소한 효상이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이나 한다. 그 길이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간혹 천재들이 기성세대와 자웅[34]을 겨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예도 더러 있다. 적어도 효상이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효상이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힘내라, 효상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라?

그건 천재들의 이야기다.


내가 천재는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천재들의 전략이

인터넷에 있을까?


우리는 속고 있다.


천재들은 기득권 품에서 자란

다른 의미의 기득권이다.





29. 사표를 던진 다른 이유도 있다. 공정과 상식을 무시한 처사[35]라서? 물론, 아니라고는 말 못 한다. 아니다, 거짓말이다. 공정과 상식의 위반은 사표를 내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3년이면 충분히 다닐 만큼 다녔고 마실만큼 마셨다. 부장님이 말하는 기회로 돈을 더 벌 수는 있다. 하지만, 사수가 해오던 더러운 일을 이어서 한다고 생각하니, 인생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진다. 모양이 안 난다. 적어도 난 그런 기회를 원하지 않는다. 사표를 호기롭게 낼 거다. 우리 집은 부자다. 그렇기에 승진이나 월급 인상에는 큰 미련은 없다. 부모의 재력은 큰 버팀목이다. 이는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더욱더 실감한다. 그래, 이런 생활이 지겹다. 무슨 거지들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해서 돈을 벌어야 하나? 아버지한테 부탁하면, 서울에서 적당한 크기를 자랑하는 카페 사업은 바로 시작할 수 있다. 구차한[36]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전화벨이 울린다. 어머니다. 어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우현아, 아버지가 큰 사기를 당하셨어. 어쩌면, 너한테도 사람들이 찾아갈지도 몰라. 상황이 조금 힘들 거야. 너 역시 그만큼 지금까지 누렸으니까, 엄마가 미안하다고는 하지 않을게. 힘들어도 버텨. 어떻게든, 아버지가 해결할 거야. 아니, 우리가 해결해야 해. 당분간 연락은 잘 안 될 거야. 회사 잘 다니고. 밥도 잘 챙겨 먹어.”



어머니와 통화 후, 바로 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수가 믿어준 만큼, 부장님을 실망하게 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전화 한 통으로,

난 알게 되었다.


영원한 버팀목은 그저 아이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에서나 나올법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to be continued....



[27] 위배 (違背): 위반.

[28] 구애 (拘礙): 거리끼거나 얽매임.

[29] 만무 (萬無): 전혀 없음.

[30] 묘미 (妙味):미묘한 재미나 흥취.

[31] 뻔질: 드나드는 것이 매우 잦다.

[32] 소싯적 (少時―): 젊었을 때.

[33] 청산유수 (靑山流水): 푸른 산에 맑은 물이라는 뜻으로, 막힘없이 말을 잘하거나 그렇게 하는 말의 비유.

[34] 자웅(雌雄): 강약·승부·우열 따위의 비유

[35] 처사 (處事): 일을 처리함. 또는 그런 처리.

[36] 구차 (苟且): 말이나 행동이 당당하거나 떳떳하지 못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