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30. 그런 이유로 버티다 보니, 벌써 15년 차다. 여전히 부모님을 찾는 빚쟁이가 나를 찾아온다. 영업직이라 전화번호를 바꾸지 못해서다. 여전히 물질적 도움을 많이 주기는 어렵다. 그래도 조금씩 주려고 노력은 한다. 그래서일까? 몇몇 빚쟁이들과 막역한 사이가 되었다. 사정이 서로 딱해서다. 부모님이 자취를 감추었던 당시는 30대 초반이었다. 무엇을 책임지기에는 어린 나이였다. 아버지의 문제를 책임지라고 몰아대는 연좌제[37]식 사고에 치를 떨었다. 너무 무서웠다.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서다. 아버지가 그런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야 하는 억울한 심정을 대부분 모를 거다. 돈이 너무나 무서웠던 그때가 떠오른다.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디잉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디잉동,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디잉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딩동, 디잉동, 딩동,딩동,딩동,딩동,딩동
초인종을 없애버렸다. 초인종 소리에 머리가 폭발할 것 같아서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름 끼치는 소리라 느껴서다. 하지만 초인종을 없앤다고 사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쿵, 쿵쿵, 쿵쿵쿵, 쿵쿵쿵쿵, 쿵, 쿵, 쿵, 쿵, 쿵, 쿵쿵쿵쿵쿵쿵쿵, 쿵, 쿵쿵, 쿵쿵쿵, 쿵, 쿵, 쿵, 쿵, 쿵, 쿵쿵, 쿵쿵쿵, 쿵쿵쿵쿵, 쿵쿵, 쿵쿵쿵, 쿵쿵쿵쿵, 쿵, 쿵, 쿵, 쿵, 쿵
처음에는 불을 끄고, 집에 없는 척했다. 하지만, 어둠을 틈타, 그들은 나의 공간까지 침입하려 한다.
삐삐삐삐삐, 삐리삐리삐리삐리, 삐삐삐삐, 삐리삐리삐리삐리, 삐삐삐삐삐삐, 삐리삐리삐리삐리, 삐삐삐삐삐, 삐리삐리삐리삐리, 삐삐삐삐, 삐리삐리삐리삐리, 삐리리삐리리삐리리삐리리삐리리
31. 그 이후로 한동안 찜질방에서 지냈다. 설사, 문을 따고 집에 들어온다고 한들, 내가 없다면, 그들은 제풀에 지쳐 떠날 거라는 얕은 생각을 해서다. 하지만, 아녔다. 그들 역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를 찾아온다.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내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린다. 모두가 잠든 시각인 새벽에, 아파트 복도를 범죄자처럼 살금살금 까치발로 걷는다.행여라도 누구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뒤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어김없이 들린다.
“임우현 씨! 임우현 씨! 맞지요? 아버지 지금 어디 계세요? 언제까지 아버지를 숨길 작정입니까? 이 사태를 해결할 사람은 당신 아버지뿐이라고요! 당신 아버지 때문에, 많은 가정이 파탄 났어요.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있다면, 아버지와 연락해 자수하라고 하세요. 아니에요, 자수는 안 해도 됩니다. 단지, 우리 돈! 돈!! 피 같은 돈!! 제발 돌려달라고요!!”
32. 인간이 큰 병에 걸려 죽음에 직면하면, 이를 받아들이기까지 다섯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 [38]
부정: 아니에요, 우리 아버지가 그럴 사람일 리가 없어요. 저한테 얼마나 다정했던 사람인데요, 그런 분이 당신들한테 그런 몹쓸 짓을 했겠어요? 정말 맞나요? 저희 아버지가? 혹시 헷갈리신 것 아니에요? 제발 저 그만 괴롭히고 제대로 확인부터 하세요. 자꾸 이렇게 행동하면,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분노: 정말!! 말 길을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네!! 아니라니까!! 아버지는 그런 파렴치한 사람이 아니라고!! 당신들!! 내가 무슨 잘못이야!! 내가 아버지야? 난 그 사람의 아들이라고!! 지금 연락도 안 된다고!! 핸드폰 보여줘? 그럼 내 말을 믿을 거야? 제발 그만하고 사라져!! 제발!!
타협: 또 오셨네요. 지겹지도 않으세요? 매번 같은 소리를 해야 하는 우리가? 알겠습니다. 저 역시 최대한 노력할게요. 다만,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해, 당신들한테 줄 수 있는 돈이 없어요. 그리고 아버지의 문제를 제가 해결할 이유도 없고요. 그래도 도의적으로 아버지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저 역시 궁금하니까, 열심히 찾아볼게요. 아버지를 대신해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버지와 연락이 닿으면 바로 말씀할게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우울: 부모님과 연락이 끊긴 지가 벌써 2년째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시라도 죽은 게 아닐까? 겁이 난다. 만약, 부모님 모두 잘못된 선택으로 세상에서 사라졌다면, 남겨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매일같이 찾아오는 빚쟁이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 삶은 이미 끝났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불행 중 다행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거다. 내가 죽더라도 힘들게 살아갈 남겨진 가족이 없어서다. 가끔 회사까지 찾아와 난동을 부린다. 정말 다 그만두고 싶다. 내가 죽으면 끝나는 거다.
수용: 아버지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덕분에 잘 살지 않았나? 아버지의 선택이 무엇이었든지, 그로 인해 누렸던 행복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은 거짓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연락이 안 되는 거다. 나를 모른 척하는 게 아니다. 나까지 믿지 않으면, 아버지는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되는 거다. 다만,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아버지의 선택으로 많은 사람은 현재까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 아버지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 거다. 언젠가는 아버지가 내게 연락하리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러니 그때까지 포기하지 말자. 이제 33이다.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다. 그러려면, 그들에게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항상 이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다. 인생을 포기하기에는 너무 젊다. 내 인생을 살자.
33. 내 인생을 살기로 한 후 3년이 지났다. 여전히 난 혼자다. 누군가를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런 빚쟁이를? 그러려니 한다. 결혼은 나와 관련 없는 단어일지도. 매달 5일은 월급이 들어오는 날이다. 매달 조금씩 빚쟁이에게 돈을 보낸다. 가끔 보너스 달과 겹치면, 월급이 쏠쏠하다. 빚쟁이들이 보너스까지는 건들지 않는다. 배려라면 배려랄까? 여느 달과 다름없이 핸드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얼마가 찍혔는지 확인을 한다. 눈알이 갈피를 못 잡고 요동친다. 30대 중반에 벌써 노안이 왔는지도 모른다. 믿을 수 없는 숫자가 찍혔다. 잔액이 삼천 오백만 원이다. 심박 수가 급격하게 상승한다. 가슴이 너무 나대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쥔다. 내 감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다. 꼭 돈을 훔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월급은 제대로 들어왔다. 문제는 모르는 사람의 이름으로 들어온 삼천만 원이다. 회사와 은행에 번지수가 잘못된 돈을 말하지 않을 거다. 쭉 함구[39]하고 싶어서다. 너무나 간절한 행운이어서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회사도 은행도 잘못된 삼천만 원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달을 더 기다렸다. 잔액은 여전히 삼천만 원이다. 그제야 확신했다. 이 돈은 내 돈이라고. 중국에서 전화가 온다. 요즘 중국 바이어와 대화가 잦다. 큰 계약 건이라 각별히 신경 쓰는 중이다.
“Hello, this is Mr. Im speaking.”
“우현이니? 아버지다. 오랜만에 통화하네. 한 5년 만인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많이 힘들었지? 아들아, 아비로서 면목이 없구나. 엄마와 난 중국에서 살고 있어. 몇 달 전, 네 통장에 다른 사람 이름으로 돈을 조금 보냈어. 앞으로도 종종 돈을 보내줄게. 요긴하게 써. 슬슬 결혼도 해야지. 당분간은 아버지가 고국에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10년이 걸릴지, 15년이 걸릴지는 모르겠어. 아버지도 억울하구나.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서. 전부를 말할 수는 없지만, 네가 들은 이야기가 모두 진실은 아니다. 아버지가 그리 나쁜 놈은 아니다. 가끔 이렇게 통화하자. 핸드폰 번호는 수시로 바꾸니까, 저장은 하지 말고. 전화해도 받기 어렵다. 아버지가 전화할게. 자주는 힘들고. 가끔. 사랑한다. 아들아. 그리고 버텨줘서 고맙구나.”
To be continued....
[37] 연좌제 (連坐制): 범죄자의 친척이나 인척까지 연대적으로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제도.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이후 사실상 폐지되었음.
[38] 분노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거론한 죽음과 관련된 임종 연구(near-death studies) 분야의 이론이다. [출처: 위키백과]
[39] 함구 (緘口):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음.
[비즈니스영어작문& 투덜투덜 다락방 연구소]
Part 3: 10년 차 경력 사원에게 듣는 성인 비즈니스 영어 공부는 어떻게?
"영어는 수련입니다. 빠른 길은 없습니다."
투덜투덜 다락방 연구소(투다연)는 두 남자(난조쌤과 김 과장)가
만들어 가는 경영전략 이야기입니다.
투덜투덜 다락방 연구소(투다연)에서는 경영전략의 SM process와 비즈니스 영어를 접목해
다양한 관점으로 실무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각색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너무 어렵지도 그렇다고 너무 쉽지도 않은 깊이로 진행하는
투덜투덜 다락방 연구소
영어공부와 경영전략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즐겁게 시청할 수 있습니다.
MZ 세대인 김 과장과
X 세대인 난조쌤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