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우현아, 그래서 말인데, 단톡방에서 네가 말한 그 투자, 나와 승기도 낄 수 있어? 자리가 있어? 없더라도, 마련 좀 해줘. 승기가 너무 딱해서. 너도 볼드몰트 사건 만회하려고, 투자하고 있는 것 아니야? 말한 지가 벌써 1년 정도 지났는데, 아직 사기당했다는 소식은 없으니 믿을만한 것 같고, 더군다나, 볼드모트 사건 때문에 힘들어하던 네가 요즘은 멀쩡한 것 같고, 승기가 네가 하는 일은 무조건 반대부터 하니까, 하여튼, 이번 기회에, 우리 셋, 모두 한몫 챙기자고. 부탁할게, 우현아. ”
39. 효상이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투자? 무슨 투자? 승기가 설치는 게 꼴 보기 싫어서, 볼드몰트 사건 이후로, 단톡방에 없는 사실도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아마도 그 없는 사실 중 하나인 것 같다. 승기와 효상이는 아직도 볼드몰트 사건으로 고생하는 줄 안다.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보나 마나 승기는 돈의 출처를 물으면서 삐딱하게 말할 게 뻔해서다.
“효상아, 그 투자? 기억나네. 참 빨리도 말한다. 맞아, 나 요즘에 그 투자로 사기당한 돈 거의 갚았어. 믿을만한 정보라고. 그러게 효상아, 왜 승기와 붙어 다니면서, 세상을 볼 줄 모르는 거야? 이번에 잘 찾아왔어. 승기라면, 절대로 나한테 부탁하지 않았을 텐데, 그나마 네가 친구라서 다행이야. 승기가 깐족거리는 게 보기 싫지만, 그래도 친구니까 도와줘야지. 승기 상황이 안쓰럽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회원제라서, 바로 자리를 마련하는 게 쉽지가 않아. 보안이 생명이어서. 일단은 그쪽 형님들과 이야기한 후에 최대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만들어 볼게. 효상아, 나 알지? 우갈량이라고. 오랜만에 둘이서 본다. 대학 시절 기분도 나고. 내가 쏠게. 일단은 맛난 것 먹으러 가자. 내 친구, 안효상이.”
40.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으려면, 다른 거짓말로 급한 위기를 모면하는 게 영업사원의 노하우라면 노하우다.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정말로 거짓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그래, 계약에 성공하려면 약간의 도덕적 해이[41]가 필요하다. 계약과 관련한 회사의 잠재적 위험은 영업 사원만 알고 있어서다. 즉, 서로 간의 조율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굳이 계약 전에 잠재적 위험을 미리 고지하지 않는다. 물론, 잠재적 위험은 해결 가능한 문제만 말한다. 처음부터 미주알고주알[42] 회사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면 누구도 계약하지 않는다. 아니면 불리하게 계약해야 한다. 이는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계약한 후, 조금씩 서로의 내부 사정을 알리는 게 정석[43]이다. 세상 물정 모르는 햇병아리는 이를 두고 상식과 공정을 무시한 도덕적 해이의 대표적 사례라 비난할지 모른다. 물론 나도, 상식과 공정으로 세상의 잣대를 판단해야 한다고 믿었던 대학교 시절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공정과 상식의 잣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같은 사실을 전혀 다르게 이해한다.
41. 스스로 옹호하는 게 참 멋쩍은데, 공정과 상식의 잣대는 살면서 계속 바뀌더라. 또한, 계약을 성사하기 위해 이 정도 공정과 상식의 위반은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회사의 내부 사정을 말해, 계약을 망치는 게 더 미련하다. 무슨 기준으로 이를 상식과 공정을 위반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정작, 나만 깨끗하면 뭐하나? 모두가 깨끗해야지. 나 혼자는 어렵다. 꼭 이런 상황에, 무슨 잔 다르크처럼, 착한 척, 고상한 척, 남을 위하는 척, 그렇게 ‘척’하는 인간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척’의 기준은 상대적으로 변한다. 그 대표적 예시가 승기다. 승기를 봐라. 무슨 생각으로 문제가 있는 집을 계약해 이 사단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정말 잊지도 않는다. 골백번[44]도 더 들었다. 그 죽을 놈의 사자성어! 승기의 트레이드 마크!!
안분지족[45]
안빈낙도[46]
42. 승기가 말이다. 분수를 알았다면, 그 돈으로 그 동네에서 살기 어려웠다는 것은 이미 알았다. 안분지족을 실행하려면 와이프를 설득해 서울을 떠나야 했다. 하긴, 승기는 이미 제 분수에 맞지 않는 와이프와 살고 있다. 그것만 보아도 안분지족은 승기와 거리가 멀다. 안빈낙도는 어떠한가? 승기는 편안한 마음으로 가난을 즐기는가? 단연코 그렇지 않다. 자기에게 주어진 경제 상황을 만족했다면 효상이를 통해 같이 투자하자고 말하지도 않았을 거다. 그 덕분에 효상이가 내 앞에 있기는 하다. 결국, 승기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 아닌가? 고고한 척하려면 끝까지 하던가. 그래, 이해는 간다. 승기의 행동으로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앉을지도 모르는 가족은 무슨 죄인가? 과거의 사건을 떠올리면, 단전의 힘을 모아 분노의 울분을 승기에게 토해내고 싶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자기가 못난 것을 인정할까? 아니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승기는 그냥 그렇게 살았으면 한다. 효상이 부탁만 아니라면 솔직히 도와줄 마음도 없다. 그렇다고 이 상황을 모른척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감싸 줄 생각이다. 물론 이유는 따로 있다. 승기와 어울려 같잖은 사상에 물든 효상이를 구제하고 싶어서다. 여하튼 효상이가 부탁한 투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부터 찾으면 된다. 그러면 처음부터 존재한 투자처다. 또한, 얼마 전 아버지와 이야기한 게 있다.
“아버지가 사람이 필요해. 그래서 말인데, 우현아, 네가 아버지 일을 도와줬으면 해.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해서. 생각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43. 당시는 아버지 제안을 일언지하[47]에 거절했다. 중국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아버지에 대한 신뢰도 없어서다. 정기적으로 큰돈을 보내는 것도 의심스럽다. 그렇기에 아버지와 관련한 일에 굳이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볼드몰트 사건 이후로 아버지 일이 궁금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면 일주일 만에 현금 5억 원을 만들 수 있는지를. 아버지 연락처를 모르니 일단 연락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나 다시 들어보자.
“아버지, 예전에 말씀하신, 아버지를 도와줘야 한다는 그일 말이에요. 아직도 가능한가요? 이야기 들어보고, 좋은 사업이면, 이번 기회에 아버지와 함께 일하고 싶어서요. 친구들도 같이 참여하면 좋고요. 중국에서 무슨 일을 하세요?”
기뻐서인지, 당황해서인지 모르겠으나 아버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우현아, 아버지가 하는 일은 조금 위험한 일이야. 보안이 생명이야. 그만큼 수익은 보장할 수 있어. 그렇다고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고. 간단하게 설명하면, 네가 할 일은 한국에서 사람을 모으는 일이야. 전화로 이야기하기는 한계가 있구나. 중국으로 놀러 오는 게 어떻겠니? 주위 사람한테는 중국 출장 간다고 이야기하고. 일정 알려주면, 아버지가 항공권과 숙소 예약해 보내줄게.”
44. 중국에? 이렇게 갑자기? 나쁘지 않다. 부모님 못 뵌 지도 워낙 오래되었다. 아버지의 사업 아이템만 좋다면 회사도 그만 다니고 싶다. 누군가에게 내 정수리를 보여줘야 하는 삶은 지치고 힘들다. 나도 누군가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살고 싶다. 그래, 현재는 욕심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아버지가 내 삶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실낱[48]같은 희망을 걸어 본다. 또한, 이번 기회에 승기의 코도 납작하게 해주고 싶다. 아니다, 이번 기회에 승기가 정신 좀 차리고 그만 ‘척’하고 살았으면 한다. 승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기야, 이야기는 들었다. 많이 힘들겠구나. 효상이가 회사로 찾아와 자초지종[49]은 대충 말했다. 돈이 아주 필요하겠네. 그 기분 누구보다 잘 안다. 볼드모트 사건 때, 나도 무척이나 힘들었다. 나쁜 생각하지 말고, 가족만 생각해.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이럴 때 돕고 살아야지. 안 그래?”
45. 승기는 말이 없다. 상관없다. 이미 난 네 놈보다 대인배다. 절대로 널 비난하지 않는다. 똑같은 놈이 되기 싫으니까. 말을 이어갔다.
“예전에 단톡방에서 말했던 투자 관련한 이야기는 아버지 사업을 돕는 일이야. 아버지에게 너희 둘 이야기하니까 일단은 아버지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승기 특유의 의심이 시작된다.
“우현아, 네 말은 고마운데, 아버지 일은 무엇을 말하는 거야? 부모님 못 뵌 지가 벌써 10년 넘은 것 아니야? 확실한 정보냐? 그리고 너 볼드몰트 사건으로 아직도 힘든 상황 아닌가? 네 코도 석 자일 텐데 누구를 돕는다고 하는 게냐?”
승기의 냉소적 반응에 전화를 끊고 싶다. 효상이 생각해 참으려 했는데 한마디는 해야겠다.
“승기야, 넌 그게 문제야. 아직도 날카롭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헛똑똑이 양반아! 날카로우면 그딴 사기는 왜 당하는 건데? 네 불쌍한 와이프와 자식 좀 생각해. 좀 자신을 제대로 보려고 노력 좀 해. 효상이가 오죽했으면 나한테 찾아왔을까? 나도 돕고 싶지 않아. 그동안 네가 한 짓거리들을 생각해봐. 누가 너를 돕고 싶겠어? 주위에 사람이 있기는 해? 자업자득[50]이지 안 그래? 하여튼 네가 싫으면 그만둬. 미쳤다고 그런 취급받으면서 아버지한테 부탁하니? 무슨 수로 그 일을 감당할지 모르겠다만, 난 이미 할 만큼 했다. 효상이 얼굴 봐서 연락한 거야. 그럼 없던 일로 할게. 그래, 소주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으니까, 나중에 소주나 먹자. 정신 좀 차리고. 네가 제일 미련해. 좀 거울 좀 봐라.”
46. 너무 세게 말했나? 승기가 또 말이 없다. 답답하다. 그래도 속은 시원하다. 이번 기회로 사이가 멀어진다고 해도 상관은 없다. 미안한 감정은 없다. 승기가 말을 이어간다.
“우현아, 네가 몰아치지 않아도 충분히 병신인 것 잘 안다. 고마움을 그렇게 표현한 거다. 너도 힘들 텐데, 나까지 신경 써 주는 게 고마워서. 그래 네 말대로 이런 말투도 고쳐야겠지. 오해하지 않았으면 해.”
평소와 다른 맥없는[51] 승기의 반응이다. 이 상황이 정말 힘들어 보인다. 승기가 나처럼 마포대교에 가기를 바라지 않는다. 실낱같은 희망을 승기에게 던져주고 싶다. 난 네 놈보다 대인배니까. 앞으로는 이 우갈량을 본받기를 바란다. 이 헛똑똑이야.
“승기야, 나도 모르게 좀 심하게 말했네. 너무 개의치 말아라. 다만, 그 이야기는 해줄게. 너와 효상이한테 말하지 않은 게 있어. 혹시라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아서. 그래, 볼드몰트 사건은 이미 해결했어. 5억 원을 다 갚았다고. 물론 내 돈은 아니고, 아버지가 해결했어. 그것도 일주일 만에. 좀 감이 와? 그런 아버지가 너희 둘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거라고.”
47. 승기가 아무 말 없다. 흐느끼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린다.
“.............”
“.............”
“.............”
“.............”
“.............”
“.............”
말하지 않아도 승기가 어떠한 상태인지 충분히 전달된다. 힘겹게 승기가 입을 뗀다.
“우현아, 나 좀 도와줘.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평생을 모은 피와 땀이 한순간에 사라졌어. 국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구제할 방법도 없다고 해. 우현아, 그동안 정말로 미안했다. 다시는 모질게 말하지 않을게. 아버지한테 말 좀 잘해줘. 아버지 사업에 참여를 못 해도 좋아. 다만 조금이라도 돈을 빌릴 수 없을까? 내가 뭐든지 다 할게. 부탁이다. 정말로 죽고 싶다. 우현아, 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밀림의 사자가 혓바닥이 잘렸다. 밀림에서 사자의 울부짖음을 더는 듣기 어렵다. 바람이 멈추었다. 수사자의 상징인 풍성한 갈퀴도 이내 축 처진다. 카리스마를 내뿜던 날카로운 말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토록 바랬던 승기의 모습을, 그토록 궁금했던 승기의 모습을 지금 확인한다. 워낙 자기 생각이 강했던 친구다. 그런 친구의 자아가 붕괴[52]하였다. 상상은 상상이었을 때가 즐겁다. 얄밉기는 해도 승기가 무너지기를 바라지는 않았나 보다. 괜스레 코끝이 찡하다.
“승기야, 마음 굳게 먹어. 나쁜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말고. 일단, 아버지 만나러 곧 중국에 갈 거야. 최대한 네 상황을 이야기해볼게. 정말로 나쁜 생각하지 마. 가족만 생각해. 그럼 중국 다녀온 후 효상이와 다 함께 모이자. 승기야, 우리는 널 외톨이로 만들지 않아.”
to be continued....
[41] 쌍방 간의 계약이 이루어진 이후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서로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는 현상. 미국에서 보험가입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윤리적으로나 법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행위를 나타내는데, 법 또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하거나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는 행동을 포괄하는 용어로 확대됐다. [출처: 시사경제용어사전]
[42] 아주 사소한 일까지 속속들이. 고주알미주알.
[43] 정석 (定石): 사물의 처리에 정하여진 일정한 방식.
[44] 골백번 (―百番): ‘여러 번’을 강조해 이르는 말.
[45] 안분지족 (安分知足):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함을 앎.
[46] 안빈낙도 (安貧樂道): 가난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道)를 즐김.
[47] 일언지하(一言之下): 한 마디로 잘라 말함.
[48] 실낱같다: 아주 가늘다.
[49] 자초지종(自初至終):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
[50] 자업자득 (自業自得): 자기가 저지른 일의 과보를 자기가 받음.
[51] 맥없다: 기운이 없다.
[52] 붕괴(崩壞): 허물어져 무너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