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톨이로는 만들지 말아 줘.
34. 그렇게 또 10년이 흘렀다. 아버지는 때마다 큰돈을 보낸다. 어디서 이런 큰돈을 만드는지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다. 그 돈이 절실해서다. 그 돈으로 결혼도 했고, 빚도 조금씩 갚는 중이다. 결혼식 날, 정말 많은 빚쟁이가 찾아와 결혼식장을 꽉 채웠다. 초대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았을까? 빚쟁이들은 혹시라도 부모님이 왔을까 하는 생각에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부모님은 오지 않았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는 중국의 사업 문제로 당분간 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와이프는 내심 놀란 눈치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와서다. 아버지 지인이거나 고향 친구라고 이야기했다. 웃픈 사실은 결혼식 날 지인들과 찍은 단체 사진에서 효상이와 승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빚쟁이다. 와이프는 그 사정을 모르니, 단체 사진을 확대해 거실에 걸어 두었다. 내 주위에 사람이 많은 게 멋지다는 이유였다. 속도 모르면서. 새벽에 물 마시러 거실에 나갈 때마다 깜짝 놀란다. 그들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서. 빚쟁이들은 부모님과 연락한다는 사실을 모른다. 말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나? 하긴 모른척할지도 모른다. 그들은 매달 돈만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해서다. 여전히 부모님이 어디 계신지 정확히 모른다. 심지어 전화번호도 모른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15년째 중국에서 숨어 살고 있다. 사실, 승기와 효상이도 모른다. 자세하게 부모님의 사정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효상이는 대충은 알고 있다. 하지만 모른척한다. 그게 난 참 고맙다. 난 승기와 다르다. 효상이가 무엇을 이야기해도 이해하고 감싸줄 생각이다. 모름지기 친구는 그래야 한다. 엎지른 물을 굳이 담으려는 게 미련한 짓이다. 승기처럼 과거의 행동을 비판해 문제를 바라보는 게 친구끼리 무슨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친구끼리는 위로가 필요할 뿐, 비판은 선택지에 없는 길이다.
“효상아, 오래 기다렸어?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웬일로 승기 없이 따로 보자고 하고?
대학 시절 기분도 나고 좋다.”
35. 효상이는 그간의 승기 소식을 내게 알렸다. 승기는 전세사기를 당했다. 그렇게 바라던 일이 일어났다. 그리 잘난 척하고 살더니만, 드디어 나무 위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 더군다나 속이 시원하지도 않다. 씁쓸했다. 그리고 걱정이 앞섰다. 사이즈가 달라서다. 전세 보증금 4억은 승기에게 전부다. 그 전부를 하루아침에 날릴지도 모른다. 뉴스에서 누군가 회삿돈을 몇십억 횡령했다고 한다. 라디오에서 누군가 몇십억을 뇌물로 받았다고 한다. 기사에서 누군가 몇십억을 벌었다고 한다. 대중매체의 안줏거리가 되려면, 최소한 몇십억을 벌거나, 받았거나, 훔쳐야 한다. 그렇기에, 1억 원은 푼돈처럼 느껴지는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통장에 천만 원도 없는 사람이 대다수다. 요즘, 중고 마켓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게 취미라면 취미다. 보통은 물건을 확인 후, 이상이 없으면 계좌이체한다. 스마트폰으로 계좌이체를 하기에, 본의 아니게 구매자 통장 잔고를 보게 된다. 걸어오든, 자전거를 타고 오든, 차를 끌고 오든, 구매자의 통장 잔액은 대부분 기백 만 원이었다. 그렇게 다들 가난하다. 통장에 천만 원도 없는 사람이라면 1억 원은 꿈의 돈이다. 평생 만지기 어려운 돈이다. 승기는 그 가난한 사람 중 하나이다. 효상이도 그 가난한 사람 중 하나이다. 나 역시 그중 하나이다.
구매자의 통장 잔액은
대부분 기백 만 원이다.
씁쓸함과 동시에
이들의 가난함은
내게 위로가 된다.
나만 힘들게 사는 게 아니라서.
36. 볼드몰트 사건 때, 무리하게 대출받은 돈을 갚을 길은 없었다. 그래서 승기의 기분을 너무나 잘 안다. 나 역시 막막했다. 물리적으로 방법이 없어서다.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했다. 아버지의 죗값을 대신 받는 기분이었다. 승기가 그리 좋아하는 소주 1병을 단숨에 마신 후, 절대로 가서는 안 될 장소로 갔다. 당시는 아내와 아이를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 난 마포대교로 갔다. 어두워서 다리 아래가 잘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높은지 감이 없어야, 뛰어내릴 용기도 생겨서다. 바람 소리는 거셌다. 나의 멍청함을 비웃는 듯했다. 생각보다 깊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투신할 때 기절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아픔을 느낄 수 없으니까. 이제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떨어질 일만 남았다. 마지막으로 신이 있다면 묻고 싶었다. 하늘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친다.
“난 신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효상이가 말했습니다. 신은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당신은 나를 보고 있습니까? 효상이가 말했습니다. 신은 항상 우리를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지 않는 나도 사랑합니까? 아니면, 당신을 믿지 않았기에 저를 이처럼 하대[40]합니까? 효상이가 말했습니다.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을 당신은 시험하지 않는다고. 저는!! 지금 저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당신을 믿지 않기에,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제게 던지셨습니까!! 제가 어디에 있는지 보입니까? 맞아요!! 지금 마포대교에 있습니다. 죽으려 합니다!! 너무나 억울합니다!! 효상이가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기도하면 들어준다고. 이 말은 정말입니까? 기도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습니까? 제발…. 제발…….”
37. 거센 바람 소리와 맞물린 자동차의 소음으로 귀가 먹먹하다. 기적일까? 아니면 간절함의 응답일까? 전화벨이 울린다. 마포대교의 잡스러운 소음은 갑자기 사라진다. 카랑카랑한 전화벨 소리만 내 귀를 사로잡는다. 해외에서 온 전화다. 아버지다.
“아버지, 얼마 전에 중국 놈들한테 속아서 큰 사기를 당했어요. 정말 죽고 싶어요. 아니 죽으려고요.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와이프와 아이를 살리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에요. 아파트 담보대출과 신용대출로 투자한 돈을 전부 잃었어요. 하긴, 아파트 담보로 대출을 받았으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제 돈이라 할 수는 없겠네요. 아파트도 아버지 돈으로 샀으니까,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회수할 수 있을까요? 이게 다 아버지 탓이라고요.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버지가!! 올바르게 살았더라면, 그렇게 살았더라면!! 제가 왜 이런 사기를 당했겠어요? 당신의 잘못을 제가 왜 책임져야 합니까? 네? 말 좀 해보세요!! 한국에 저 혼자예요. 부모님이 없으니, 상의할 곳도 없고 가정을 꾸리는 게 이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지도 몰랐고, 저도 살아보려고, 멋진 남편으로, 아빠로서, 그렇게, 정말 그렇게 살고 싶었다고요!! 이제 연락하지 마세요!! 이제 전화받을 수 없으니까요!!”
미련한 속풀이를 아무 말 없이 한참 듣던 아버지가 내게 묻는다.
“사기당한 돈이 얼마냐?”
“5억 원이요.”
38. 희한하게도 최악의 상황을 해결해 준 사람은 신이 아니라 아버지였다. 일주일 후, 통장에 5억 원이 찍혔다. 출처를 묻지는 않았다. 그게 무슨 돈이든 무슨 상관인가? 대단해 보였다. 일주일 만에 5억 원을 만들 수 있는 아버지의 능력이. 그래, 신은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응답한 것은 아버지다. 아버지가 신이다. 효상이도 속은 거다. 신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의지는 흔들리는 낙엽보다 가볍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가 다르게 보인다. 아버지가 중국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아버지가 아직 말씀은 없지만, 기회가 있으면 같이 일하고 싶은 생각이다. 그게 무엇이든, 영업직으로 사는 인생보다 속 편해서다.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to be continued....
[40] 하대 (下待): 상대방을 업신여겨 소홀히 대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