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달식의 공간 읽기] 기장 일광 카페 ‘메이크 시 커피’
인위적 화려함·장식성 절제한 디자인
단순한 세련미와 담백함 빛나는 외관
건물 내부 바다 확장 오픈 공간 설계
수평선 이야기 들려주는 열린 공간미
건물 각 층 바다·마을과 절묘한 조화
해안길을 따라 끝없이 펼쳐지는 카페들. 부산 기장 해안길은 카페 건축의 성지이자, 카페들의 천국이다. 이곳 카페들은 대부분 화려함을 뽐낸다. 건물 외관이 디자인적으로 화려하거나 다채로운 사인 또는 건축 재료를 통해 자신을 한껏 드러내곤 한다. 하지만 카페 ‘메이크 시 커피’(기장군 일광면 문동리)는 조금 다르다. 외관만 놓고 보면 인위적인 화려함이나 장식성을 애써 절제한다. 아는 척 질척거리지도 않고, 뽐내듯 “나 여기 있소”라고 하지 않는다. 그만큼 모던하다. 대신 절제된 디자인이 바다 수평선과 자연을 돋보이게 한다. 송판 노출 콘크리트로 된 회색 건물 정면 외벽엔 영어 ‘make sea coffee’ 사인만이 붙어 있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가면, 자칫 휑~하고 지나칠 수도 있다. 분명 치장하거나 화장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다. 그곳엔 배려와 절제, 소통과 조화가 있다. 건물도 인격체라면 이게 내공이요, 스토리다.
■‘잘난 척’ 하지 않는 모더니즘 건축
카페가 들어서기 전 이 땅은 8m 높이 차가 있는 두 개 필지였다. 필지 사이엔 옹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아래 필지는 바다쪽(동쪽) 해변을 따라 펼쳐진 문동리 마을 집들과 접해 있었고, 위 필지는 큰길과 접해 있었다. 이런 971㎡ 땅에 연면적 595㎡(약 180평) 규모의 4층 카페가 들어섰다. 하지만 바닷가 문동리 쪽에서 보면 마을 집들과 마치 어깨동무하듯 서 있다. 이질감, 괴리감은 쉬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 2층 높이인 마을의 스카이라인과도 조화를 이룬다. 반대편 큰길에서 봐도 역시 2층 건물만 시야에 들어온다. 분명 4층 건물인데, 건물 앞·뒤에서 보면 2층처럼 보이는 구조다. 이게 ‘높이 차’가 만든 두 개 필지의 조화다. 또한 3, 4층 건물을 뒤로 살짝 물린 가가건축(대표 안용대 건축사) 설계의 힘이다.
안 건축사는 "2019년 여름, 내가 설계한 민락동 수변공원 카페 '오후의 홍차'를 본 건축주 부부가 직접 해운대 사무실로 찾아와 이 땅을 보여주며 의뢰했다. 바닷가고, 힘든 지형이었기에 오히려 더 설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처음 설계는 예산 초과였다. 설계대로 하면 토목 공사비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예산은 한정돼 있었고 다른 방법이 없었다. 디자인을 절제했다. 몇 차례의 디자인 단순화 과정을 거쳐 모던한 형태의, 지금의 카페 건물이 탄생했다.
안 건축사는 건물 설계 시 주변과의 관계성을 읽어내는 데 집중한다. “주변 환경, 도시, 사회와 어울리는 건물은 뭘까. 사용자에게는 어떤 내부 공간을 줄 것인가가 가장 고민하는 부문이다. 때로는 건축주가 과도한 방식의 개발을 요구하면, 주변 환경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려 노력한다. 이게 건축하는 사람의 자세요, 책임이라 믿는다”고 그는 말했다.
안 건축사의 이런 건축 철학은 ‘메이크 시 커피’에서 제대로 구현됐다. 4층 건물이지만 1, 2층은 문동리 마을, 3, 4층은 마을 뒤 큰길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장식성을 뺀 절제된 디자인, 단순함에서 오는 세련됨, 모던함에서 오는 담백함이 색다른 아름다움으로 빛난다.
또 있다. 큰길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문동리 마을 주민들은 카페가 들어서기 전에는 빙 돌아서 집으로 가야만 했다. 하지만 카페는 주민들에게 기꺼이 길을 내줬다. 카페의 열린 계단이 큰길과 마을을 이어주는 매개 공간이 됐다. 건축의 속 깊은 마음이랄까. 소통의 건축, 배려의 건축을 본다. 어쩌면 ‘착한 건축’이 더 어울릴 듯하다. 큰길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카페 계단은 이제 더 이상 계단에만 머물지 않는다. 또 다른 무엇이다. 한 계단 한 계단이 시간을 만나 수많은 이야기를 잉태하기 때문이다.
■공간을 돋보이게 하는 힘
기장 해안길 카페 중 상당수는 건물이 바다 풍경을 막는다. 물론 대지 위에 건물이 들어서면 그게 시야를 가릴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치. 하지만 ‘바다를 만든다’ ‘바다를 꾸민다’는 의미의 ‘메이크 시’라는 이름 속엔 이걸 피하고 싶은 열망이 들어 있다. 그 열망은 카페 3, 4층 창을 통해 멀리 펼쳐진 수평선이 얘기해 준다. 도로변 창을 통해 아스라이 수평선을 드러낸 바다는 건물이 바다를 막는 장애물이라는 인식을 지워준다. 건물 창이 바다를 열어주는 역할을 했다. 4층 외벽보다 3층 외벽을 더 안으로 쑥 들어가게 설계해 건물 전체가 바다를 배경으로 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이쯤 되면 집이 바다를 만들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큰길에서 보면 3, 4층은 넓은 판을 겹쳐 놓은 듯한 모양이다. 수평선과 어울리면서 바다 공간을 확장한다. 카페 내부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는다. 바다를 바라보는 건물 끝 부문에 인위적인 수변 공간을 둬, 바다 확장을 꾀했다.
건물의 각 층은 오픈된 공간으로 설계돼 있어 지루하지 않다. 특히 3, 4층은 건물 옆도 틔워져 있어 조망이 탁월하다. 바다 풍경을 배경으로 포토존이 만들어진 3층은 카페를 찾는 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공간이다. 카페 안에서는 중정 같은 공간, 천창, 계단을 만난다. 안인 듯 밖인 듯, 닫힌 듯 열린 듯한 공간이 조화롭다. 카페 2층 계단 옆 창에서 만난 건물 설계도(약식)는 카페를 찾는 고객의 미소를 훔친다. 주차장에서 카페와 마을로 이어주는 계단 진입 부분 역시 멋진 포토존으로 손색없다.
카페 건축이 주는 또 하나의 재미는 옥상이다. 메이크 시 커피의 옥상은 뒤(서쪽)로는 산을, 앞(동쪽)으로는 바다를 품었다. 이곳에서의 커피 한 잔은 ‘선상에서의 커피’라는 착각에 빠진다.
카페를 살펴본 강기표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아체 ANP 대표)는 “건물 전체가 장식성을 배제해 깔끔하다. 특히 3, 4층은 큰길 쪽에서 봤을 땐 안정감이 있고, 바닷 쪽에서 봤을 땐 다이나믹한 느낌이다. 바다엔 소나무 숲이나 갯바위도 없지만, 오롯이 바다 선(풍경)만 활용해 건축적 아름다움을 구현해 냈다”고 평했다.
근대건축은 주로 기능에 매달린다. 그러다 보니 주변과의 대화, 관계성은 약화됐다. 하지만 ‘메이크 시 커피’에서는 이게 작동됐다. 비록 작지만, ‘착한 건축’을 보았다. ‘메이크 시 커피’는 건물 자체를 주변에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아우라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왜 카페에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는지를 알겠다. 스스로 빛나는 존재이기에. ‘메이크 시 커피’에는 사람들을 공간에 머물게 하는 힘이 있다.
가가건축 안용대 건축사는 요산문학관(2006년), 디오임플란트 부산 사옥(2008년), 부산시립미술관 부설 이우환 공간(2014년), 울산시립미술관 등을 설계했다. 울산시립미술관은 올 연말 개관을 앞두고 있다.
공동기획:부산일보사·부산광역시건축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