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천정 스피커에서 소리가 울린다.
"썩션"
"그라스퍼 파이팅 하잖아. 뭐 하는 거야. 스콥 좀 빼."
화들짝 놀랜 정문이 재빨리 스콥을 뺀다. 중앙 의사가 이를 놓칠 리가 없다. 화면에 그의 거뭇한 얼굴이 커지더니 정문을 요란하게 째려본다. 수술하는 힘없는 정문의 모습을 보며 하련을 한숨을 내쉰다. 오늘도 정문은 기운이 없다. 예전의 당차던 그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도대체 이곳에 오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한참 동안 병원의 검은 그림자처럼 존재감이 없던 정문이 갑자기 바뀐 건 미확인 전염병 환자를 받고 난 후였다. 행성에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서서히 확산되고 그 범위를 좁혀오고 있었다. 병원의 음압병실과 수술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지만, 많이 사용하지 않아 모두들 낯설어했다. 그리고 그런 환자가 오면 오히려 다른 병원으로 보내기 일쑤였다. VIP만 주로 담당하는 병원의 특권이기도 했다.
그런데 정문이 전염병 환자를 독단적으로 입원시키고 수술하겠다고 나서니 병원이 발칵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VIP를 먼저 수술하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평소 같으면 상상도 못 할 그의 모습이었다. 어려운 담낭 절제술을 능숙하게 하고, 개복하여 간의 일부까지 절제했으니, 병원의 모든 사람들이 놀랄 만도 했다. 겨우 카메라나 잡고 있던 보조의로 알았는데, 쿠사까지 써가며, 능숙하게 수술을 진행하니 말이다. 게다가 그가 직접 환자에 대한 오더를 내리는데, 이 또한 막힘없이 줄줄 오더를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평소 흐리멍텅하던 그만 보았던 사람들은 놀랬지만 하련만은 저것이 예전의 그의 진짜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왜,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수술하겠다고 모험한 거야?"
맥주잔을 만지던 하련이 다시 한번 정문에게 말을 건다. 상부에서 문책당한 일을 말 안 할 것이 뻔하니, 이번에는 그의 마음이나 들어보고자 하련이 정문에게 물어본다. 매번 만나던 맥주집에서 정문은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다.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을 적시고, 참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건들며 안으로 밀려들어간다.
"그냥 내 동생이 생각나서..."
순간 하련은 말문이 막힌다. 벌써 오래된 일이다. 그의 동생은 전염병에 걸려 이런저런 이유로 병원에서 진료를 거부당하고 전전하다 끝내 수술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 냉정한 아버지는 정문이 외과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상부 명령으로 그날도 VIP를 수술한 정문이 동생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조금만 일찍 알았다면, 상황은 달라져있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그 녀석 지금쯤 살아 있을지도 몰라."
그렇게 그는 점점 어두운 사람으로 변해갔다.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살던 그가 유독 그 전염병 환자를 보더니 가슴속 깊이 잠들어 있던 예전 동생이 났던 거다. 그리고 분명 전염병에 모든 시설이 완벽함에도 제대로 활용되지 않음을 이미 파악하고 있던 그였다. 상부에서 가만히 안 있을 거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그는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상관없어. 두 번 다시 내 동생처럼 죽게 할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