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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건소 Oct 20. 2024

3. OPEN

"오픈(개복수술)합니다."       

정문이 나지막이 외친다. 기어이 정문이 개복하여 수술을 더 진행하고자 판단한다. 순간 마취과의 전화기가 바쁘다.      

"간 절제할 거야. 피 얼마나 준비되는지 확인하고, 준비해 줘. 가능한 많이 " 

'개새끼, 가지가지한다. 안 하던 오픈 수술을 한다니...'

마취과 의사는 속으로 욕을 해대지만, 분주히 환자의 상태를 주시한다. 

하련은 복강경 수술기구를 분주히 빼고 안쪽의 신참 간호사는 칼을 준비한다. 준비하는 손이 덜덜 떨린다. 하련이 그녀를 잠시 쳐다보더니, 안 되겠는지 손을 닦으며 다른 간호사에게 말한다.      

"내가 스크럽 들어갈게. 백업 봐줘."      

환자의 늑골을 따라 주욱 칼이 그어지고 검붉은 피가 그렁그렁 맺힌다. 보비로 조직을 절개한다. 그렇게 수술이 예상보다 길어진다. 피가 정문의 PAPR에 튀지만 닦을 여력이 없다. 이미 이렇게 진행되었으니 최대한 신속하게 마쳐야 한다.      

"쿠사 파워 올려주세요."     

“70입니다.”

‘젠장, 안 잘려.’

“더 올려요.”

간조직이 돌덩이처럼 딱딱하다. 이 노인은 어떻게 자신이 개복수술할 것을 알았을까ᆞ 정문이 잠시 생각에 빠ᆞ진 사이... 어시스트가 타이를 끊어 먹는다. 

“야, 똑바로 안 해? 썩션. 빨리 빨어"     

검은 피는 소용돌이치며 복강 내에 순식간에 차 올랐다.

"클립"     

수술 필드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하련은 정문이 미처 말하기도 전에 수술기구를 손에 쥐어준다. 그렇게 그들은 다른 말없이 수술을 진행한다.   

 수술을 끝난 시간을 보니 벌써 3시간이 가까워진다. 기다린 시간까지 하면 하루 종일 이 환자에게 매달린 꼴이 된다. 우주복을 벗고 나가면 나를 닦달할 짙은 흰 눈썹의 노인과 사무장이 기다리고 있겠지. 정문은 땀 범범이 된 모자를 벗으며 생각한다.      

간호사가 정문의 손에 소독액을 주고, 손으로 소독액을 바르고, 땀에 젖은 우주 복을 주섬주섬 허물 벗듯 발끝까지 벗는다. 자칫 전염병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는다. 특수 쓰레기통에 옷을 담으니 저절로 입구가 닫힌다.     


늦은 저녁 하련은 구석진 테이블에서 맥주잔을 기울인다. 넓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두 개의 행성이 오늘따라 유난히 커 보인다. 정문은 역시나 늦다. 눈을 열고 들어온 정문은 의자에 털썩 앉는다. 맥주가 도착하자 말도 없이 쉴 새 없이 마신다.           

"많이 혼났어?"     

 하련이 묻는다.      

"그냥 그렇지 뭐. 아까는 고마웠어."     

개복 수술에 익숙하지 않은 간호사 대신 하련이 직접 들어와 도와줘서 하는 말이다. 개복의 경험이 많은 하련이 있으니, 정문은 수술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뒤늦게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문은 상부로 불려 간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입을 다물었다.        

정문이 아무 말은 하지 않지만 하련을 알 수 있다. 원래 학생 때부터 정문은 말이 없었다. 특히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더더욱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갔다. 이렇게 한마디도 안 하는 것을 보면 아마 크게 문책당했음이 틀림없다.     

미확인 전염병 환자로 수술실 환자에 하루 종일 얽매인 바람에 VIP 수술이 늦어지는 책임을 그 늙은 눈썹이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많이 시달리고 왔겠지.'     

하련은 한숨을 푹 쉰다. 정문은 그냥 말없이 맥주만 들이켠다.      

"조금만 마시고 들어가. 오늘은 집에서 좀 쉬는 게 어때?'     

"아니, 병원으로 들어가 봐야 해."      

하련은 그런 풀 죽어 있는 그를 가만히 쳐다본다. 도와주고 싶지만 정문만의 온전히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 친구로서 위로도 어쩌면 짐이 될 수도 있기에 하련은 입을 다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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