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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건소 Oct 20. 2024

1. 그곳은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곳일 뿐이었다.

"그 새끼 불러와."

희고 짙은 눈썹의 노인가 씩씩거리며 말한다. 하얀 눈썹 한가닥이 눈꼬리 밑까지 내려와 있다.

"지, 지금 막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사무장이란 사람은 안절부절못하며 흰 눈썹 노인의 눈치를 본다.

"전화라도 연결해."

갈색 의자에 몸을 깊이 쑤셔 넣으며 흰 눈썹의 노인이 소리 지른다.

"지금 수술용 PAPR(방호복)을 입어서 전화통화도 어렵..."

갑자기 의자에 있던 그가 벌떡 일어난다. 던질 것을 찾으려 두리번거리나, 모든 물건은 책상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어 던질 것이 없다.  

"도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VIP 수술 먼저 하라고 말했어, 안 했어."

"그게 전달은 했는데..."

사무장은 우물쭈물하며 손만 만지작거린다.     


그 시각 수술실은 모든 의료진이 분주하다. PAPR이 처음인 마취과 의사는 자꾸 머리가 가려워서 눈을 위로 치켜뜬다. 방호 모자가 위로 올라가 어색한 듯 다른 사람의 옷매무새를 보느라 눈치를 살핀다. 하얀 PAPR을 입은 정문은 가만히 수술실 바닥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벌써 준비한 지 1시간이 훌쩍 넘었다. 최첨단 수술실은 검증되지 않은 전염성 질환의 환자를 맞이하기 위해 온 벽면은 특수 비닐로 덮여 있다. 수술실 모니터와 복강경 장비마저 특수 비닐로 칭칭 동여매져 있다.     

전염병 환자는 음압 병상과 음압 수술실이 있는 곳에서만 수술 진행이 가능하다. 평소 같으면 환자가 많아 받을 수 없다고, VIP 수술을 먼저 할 것 같은 정문이 그 환자를 받는다 해서 병원이 난리가 났다. 게다가 상부 보고를 하지 않고, 수술을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미확인 전염병이 확산되는 요즘에 이 환자가 병원에 온 것은 천운이다. 마취를 포함하여 모든 장비와 수술실 기구가 완벽히 구비되어 있다. 미확인 전염병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아 걱정이 좀 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자의 담낭이 곪아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만약 여기서 빨리 수술하지 않는다면, 더 큰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정문은 환자 수술을 진행하고자 마취과에 협조를 요청 한 그 순간, 사무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VIP가 들어올 예정인데 그 수술을 먼저 해달라는 연락이다. 사무장이 사뭇 정중하게 부탁하지만 그 뒤에 수염 짙은 노인이 있을 거라는 것은 눈에 빤한 현실이다. 이번만은 왠지 정문은 그들의 말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 다른 병원에서 전염병으로 거부하여 돌다 돌다 거의 다 배안이 엉망인 이 사람을 더는 미룰 수가 없었다.

정문은 사무장에게 말한다.

"이 환자 먼저 수술하고 VIP는 다른 의사 알아보세요."

"아니, 원장님이 좀 먼저 해달라고..."

사무장이 말을 흐린다.  

"나, 수술 들어갑니다. 바빠요."

탁 소리를 내며 통화음이 끊긴다. 사무장은 전화기만 잠시 바라본다.     


의료진이 분주히 움직인다. 폐기물 봉지로 감싸져 있는 수술 쓰레기통, 수술 침대 역시 특수 비닐이 덮여있다. 분주히 마취약을 준비하는 간호사의 손에 긴장감이 깃든다. 환자가 오기 전에 모든 상황이 완벽히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에 수술실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퇴근하던 간호사들도 밖에 보조일을 도와주기 위해 대기한다. 한 명의 환자를 위해 의료진은 물론이요, 보조인력까지 20명 넘는 병원 인력이 투입된다. 사실 병원의 이익만 생각한다면 이 환자를 수술하면 그만큼 손해이다. 투입되는 수술 및 인건비가 다른 환자의 5배가 넘기 때문이다. 게다가 VIP를 제치고 하는 수술이니 이 상황은 병원에 계산할 수 없는 손해로 기록될 것이 뻔하다. 게다가 중앙 의사의 오더를 주로 받는 이곳 아니던가. 단순 수술 보조의사로 인식되었던 정문이 직접 이렇게 상부와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 다른 이들은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정문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이 환자를 무리하게 수술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아님 VIP를 수술하는 게 맞았을까. 몇 시간째 대기 중인 다른 의료진들의 얼굴을 보기 민망하여, 바닥만 쳐다본다. PAPR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는 귓바퀴에서 벌떼 소리처럼 시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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