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련이 이 병원에 오게 된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훨씬 많은 돈을 주고, 자신의 능력으로 상류 세계에 갈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그렇게라도 그들의 세계에 합류하고 싶었다. 하련은 로봇수술 시에 도킹을 하고 의사와 함께 수술에 참여하며, 그렇게 편안하고 안정된 생활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이 병원에 오게 된 첫날 하련은 새로운 인생에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수술실에서는 로봇으로 수술이 진행되었다. 몇 명의 중앙 의사가 메디컬 컨트롤 타워에서 콘솔 안에서 원격으로 주된 수술을 집도한다. 이들은 엄격한 시험을 통과한 이들로, 수술 실력은 물론 인성, 출신 계급까지 철저히 검증된 이들이다. 환자를 직접 보지는 않지만 그중 VIP 수술에 특화된 이들이다. VIP 환자는 SWEL병원에서 로봇 수술을 받는다. 보조의가 중앙 의사가 집도하는 로봇수술을 함께하며 카메라나 기구가 파이팅 할 때 조율을 한다. 썩션을 하는 등 간단한 수술 보조만을 하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
하련이 수술실에서 처음 정문을 마주쳤을 때 예전에 학생 때 보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 병원 의사로 온다는 것은 자신의 결정권을 내려놓고, 중앙 의사의 명령을 따르는 수동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환자에 관한 주된 오더도 메디컬 컨트롤 타워 의사의 권한이 막강하였으니, 특별히 보조의가 할 일은 많지 않았다. 수술을 준비하고 보조하며 수술 후 환자의 상태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환자의 상태도 AI가 즉시 중앙 의사에게 보고하기 때문에 주된 오더를 확인하고 따르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학생 때 하련이 기억하는 정문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불의에 참지 못하고,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다. 그런 그가 왔을 때 하련이 몹시 놀랬던 이유는 당연했으리라. 정문은 눈빛은 회색으로 변해있었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묻는 말에도 잘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가끔 맥주를 먹을 때나 별일 없다며 웃어 보이는 그였다.
"환자 입실합니다."
다들 PAPR(방호복)을 입었으니, 소리가 잘 안 들린다. 그래서 의사소통을 위해 큰소리로 말해야 한다. 시뻘건 큐브에 둘러싸인 침대가 서서히 문을 열고 미끄러지듯 수술실 안으로 들어온다. 다들 침을 삼키며, 서로의 눈치를 본다. 누가 먼저 침대를 잡을 것인가.
그때 정문이 먼저 환자의 침대를 덥석 잡고, 버튼을 누르니 뻘건 큐브가 열린다. 다른 의료진은 머뭇거리지만 이내 정문과 함께 환자를 옮긴다. 그때 아픔으로 일그러진 검은 얼굴의 환자가 입술을 겨우 달싹거리며 한마디 한다.
“오픈(개복수술)으로 해야 할 거요. 조직이 단단해서 쿠사는 최대한으로 올려야 할 겁니다.”
**CUSA(Cavitron Ultrasonic Surgical Aspirator)는 조직을 정확하게 절편화하여 흡입제거하는 기구로서 혈 관이나 신경, 요관 등과 같이 collagen이 풍부한 조 직은 선별하여 손상시키지 않고 제거하고자 하는 조 직만을 절편화하는 장점을 지닌 기구이다.
‘ 미친 새끼,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입만 살았네.’
정문이 속으로 생각하지만, 침착하게 말한다.
“제가 알아서 안전하게 합니다. 환자분은 걱정 마세요.”
환자를 침대로 옮기고 마취과가 마취제를 주입한다. 온몸에 보호 장구를 둘렀지만 역시 새로운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다. 정문은 그런 그들을 물끄럼히 쳐다본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환자의 얼굴을 쳐다본다. 순간 동생 성희가 떠오른다. 환자의 입을 크게 벌리고 목구멍에 바짝 붙어 Laryngo blade(기도삽관 기구)를 밀어 넣는 마취과 의사의 손이 덜덜 떨린다. 제발 한 번에 성공하길 정문은 바라본다.
마취가 되지 일사불란하게 수술이 준비된다. 소독을 마친 환자의 복부에 트로카를 삽입하여 복강경 카메라를 밀어 넣는다. 역시 배 안쪽이 염증으로 다 엉겨 붙어 있다. 그라스퍼(복강경 수술용 기구)로 대망을 걷어내자, 터지기 일보직전인 담낭이 보인다. 달마시안처럼 검은 점이 군데군데 있어 이건 벌써 썩어서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환자가 고통을 표현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Aspiration needle(담즙을 꺼내기 위한 긴 니들, 보통 썩션에 연결하여 사용한다. ) 주세요.'
정문이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말한다. 이미 담낭의 모양을 확인하고, 미리 Aspiration needle을 들고 있던 하련은 바로 수술 필드로 기구를 열어준다. 정문이 니들에 썩션을 연결하고 썩어버린 담낭으로 니들을 조심스레 하지만 한 번에 정확하게 찌른다. 검은 담즙이 썩션을 통해 빨려 나온다. 쪼그라드는 담낭 이제 정문은 포셉으로 담낭을 잡는다. 아까 터질 듯하여 함부로 잡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조금 잡을만하다.
담관을 박리하여 결찰 하여야 한다.
'젠장, 염증으로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어. 너무 두껍고 아무래도 기존에 사용하던 5mm 트로카(복강경 수술용 기구)로는 어림없을 것 같아.'
"큰 트로카로 바꿔주세요. Hemolok(혈관 결찰 클립)도 큰 것 사용할게요."
하련은 트로카와 조금 더 큰 사이즈의 Hemolok을 내어준다. 두꺼워진 담관을 결찰하고, 보비로 조심스레 간에 붙어있는 담낭을 떼어나간다. 순간 화면이 붉게 물들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젠장"
담낭 동맥을 아무래도 놓친 것 같다. 너무 엉겨 붙어 있어 한눈에 잘 보이지 않더니 결국 터져버린다. 카메라를 잡고 있던 보조의는 당황한다. 정문이 말한다
"빨리 카메라 닦고 들어와."
보조의는 허둥지둥 카메라를 얼른 빼서 거즈로 닦고 재빨리 다시 트로카 안으로 카메라를 들이민다. 가는 혈관이지만 솟구치는 피가 무섭다. 정문은 침착하게 포셉으로 피가 나는 지점을 정확하게 누른다.
"클립 주세요."
한발 두발 세발을 사용하니 피가 멈춘다.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쉰다. 담낭을 꺼내고 담낭을 가위로 자르던 정문은 안쪽에 조직을 절개할 때의 서걱거림이 정상조직과 다름을 느낀다. 분명 판독에서는 특별한 말이 없었는데..
"프로즌(동결절편 검사, 조직의 양상을 빠른 시간 내에 판독이 가능하다.) 보낼게요. 결과 확인하고 마취 깨워주세요."
일순 모두 정적이 흐른다. 결과가 좋지 않으면 더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 미확인 전염병 환자인데 과연 더 이상 수술을 진행할 수 있을까. 또 그 피가 많이 난다면 수혈이 가능할까. 중앙 의사의 오더 없이 이곳에 있는 인력만으로 환자를 케어할 수 있을까. 정문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맴돈다. VIP가 기다리고 있는 이 마당에 꼭 이렇게 까지 진행해야 할까.
하련은 불안감을 감추며 밖에 있는 보조 간호사에게 나지막이 전화를 건다.
"오픈 준비해 줘, 아이언 인턴(복강 견인기)과 쿠사(간절제술을 할 수 있는 초음파 장비)도 같이."
10여분쯤 지났을까 병리과에서 방송으로 결과를 알려준다.
"GB carcinoma (담낭암)입니다. 근육층까지 침범하였습니다."
아 다들 나지막이 탄성을 지른다. 이렇다면 개복을 할지 다음에 다시 수술을 잡을지 모든 결정권은 정문에게 달려있다.
사무장은 발을 동동 구른다. 당장 VIP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정문이 안 하다니 다른 의사를 찾아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막막했다. 그대 갑자기 닥터백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 닥터백 가능하시겠어요?"
"VIP 중앙 의사가 로봇 수술을 주로 할 테니, 제가 오픈(개복수술)할 경우를 대비해 대기하도록 하죠. "
응급 수술이 아니니 충분히 로봇 수술만으로도 끝날 수술이었다. 닥터백이 하는 일이라곤 그저 로봇이 잘 움직이는지 확인만 하면 된다. 게다가 주로 지구 의사가 집도하니 책임으로부터 닥터백은 자유롭다. 수술에 대한 책임은 적고, VIP 수술을 했다는 타이틀도 얻고 일석이조가 아닌가.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멍청한 새끼, 지가 뭐라고, VIP를 마다해. 역시 맘에 안 들어.'
닥터백은 정문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힘없이 돌아다니는 것 같지만 왠지 그 눈빛이 맘에 들지 않았다. 권력에 전혀 관심 없어 보이는 정문이었지만 닥터백은 그런 그를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어떤 일을 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는지도 아무도 모르는 터라, 닥터백의 의심은 더욱더 깊어만 갔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정문을 누르고 이 수술실 장악할 기회를 잡은 거라 닥터백은 생각하며 희미한 웃음을 짓는다.
'멍청한 정문은 자신의 무덤을 파는 줄도 모르고 수술하고 있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무장은 그저 VIP 수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연신 해대며 싱글벙글 해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