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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두람이 Mar 11. 2023

여행의 힘 12

산수유꽃 입모양(구례 산동면)

단 하루라도 좋은 생각으로 아침을 맞이해서 최상의 저녁이 될 수는  없을까. 어제의 부정적인 기억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만을 위한 아름다운 시간의 탑을 쌓을 수 없을까. 나의 주변 좋은 분들이 병에 걸려서 고통을 호소할 때는 더더욱 이런 생각에 빠진다. '인생은 짧다' '삶은 별 것 없다'라는 말을 되풀이하게 된다.


엄마의 기일이 지난 후  고향 선산을 찾았다. 친구 아버지가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찹찹한 날이다. 친구 아버지 발인날이었다. 우리 엄마보다는 10년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셨으니 더 마음이 그러했다.  


친구의 아버지를  한번 적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을 것이다. 설날에 대가족이 먹을 떡국을 준비하기 위해 친구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방앗간을 방문했었다. 구례의 비혹한 땅, 토지 들녘에서 생산된 쌀은 정말 맛있는 쌀이었다.  '통일벼'라는 이름을 듣고 자랐다. 깨끗이 씻어 불린 쌀, 그 하얀 쌀의 힘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물에 불린 쌀을 광주리에 담아 큰 대야를 포개서 머리에 이고 바삐 걷는 엄마의 뒷모습이 생각난다. 엄마의 뒤를 졸졸 따라간 나의 그림자도 생생하다. 그때 보았던 친구 아버지는 밝고 친절. 비록 우리 동네는 아니었지만 윗동네에서 좋은 일을 하고 계신 분이었다.


 "아버지, 엄마, 이제부터는 울지 않을 게요." 두 분의 봉분 아래에서 절을 한 후, 금세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한참만에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 날아왔을까. 까만 점이 박힌 노란 나비 두 마리가 팔랑거리며 날아다녔다. 봉분 위로 솟구쳤다가 마른 잔디 위에 앉기를 반복했다. 우리를 향해 무엇인가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ㅡ 이젠 웃고만 살거라, 너희 건강만 생각하거라"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인데 벌써 나비가 다니. 긍정적인 마음이니까 나비가 날아다니는 모습도  아름답고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일끼. 마른 잔디 속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제비꽃이 우리 가족 중 누구를 닮았다.


이상하게도 이번 선산 방문은 마음이 즐거웠다. 갯버들 피는 시냇물 소리도 초록이 짙었고 명랑했다. 시냇물 건너서 동네를 돌아 나오는 모퉁이 산수유꽃이 우리를 빠르게 어딘가로 끌고 갔다. 그 어딘가는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마을이었다.


산동은 산수유로 유명하지만 온천으로도 유명하다. 다행히 우리 두 아이 어렸을 때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 온천에서 하루를 보낸 기억이 있다. 엄마 집에서 승용차로 이동하면 아주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모시고 오지 못했다. 그래서 후회한 날도 많았다. 승용차를 타면 멀미를 심하게 하셨기에 아주 잠깐도 차를 타는 것을 싫어하신 엄마 항상 안쓰러웠다. 


늦은 오후 구례 산동면에서는 산수유꽃이 이렇게 예쁜 줄 미처 몰랐다. 같은 곳을 여러 본 방문한 곳이라도 지금 현재 마음이 어떠하냐에 따라 주변 그 너머 역사까지 세심히 알게 된다. 지리산 노고단 아래 산동이 이처럼 아름다운 마을을 담고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반곡마을의 돌담과 오래된 산수유나무의 수피에 해 한참을 한 곳에 있기도 다. 산수유꽃, 매화향기, 흙냄새를 코로 킁킁 맡았다. 서시천 너럭바위에 서성이는 여러 쌍의 노란 나비는 누굴까. 어느 나라에서 날아왔을까. 그저 하아! 산수유꽃 입모양으로 감탄사 연발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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