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꼬두람이 Mar 29. 2023

병원과 바다와 꽃

오늘은 기필코 나 홀로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구운 계란 하나와 불가리스 한 병으로 아침을 먹은 후  머리를 감는데 왜 그렇게 아랫배가 아픈지.  머리를 말리다가 화장실 가기를 두 번, 이렇듯 나는 버스 타는 것에 여간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버스를 탔을 때 과연 내가 앉을자리가 남아 있을까. 버스가 심하게 흔들리면 내 척추는 어떡하지.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 속이 매스꺼우면 어떡하지. 토할 것 같으면 어떡하지... 만약 그렇다면 도중에 내리면 되지. 고속도로가 아니니까 다행인 거지.  그래, 오늘부터 다시 학생이 되어보는 거지.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통학버스를 탄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지.


그런데 오늘 아침에도 실망스럽게 병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지 못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다가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또 버스를 타지 못한 것이다. 어제 나의 애인과 손가락 걸고 약속했는데. 또 버스를 타지 못했냐고 얼마나 껄껄거리며 웃을까. 병원 앞에 도착하니 택시비가 19800원이 나왔다.


나의 주치의는 많이 변했다. 처음처럼이 아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니 외모도 마음도 변하는 것일까. 환자가 너무 많이 늘어서 그런 것일까. 여하튼 오늘도 처음처럼이 아니라는 것을 투박한 말투에서 알았다. 예약 환자가 많으니까 그러시겠지, 나는 가급적 이해하려고 애썼다. 고맙습니다, 를 연발했다. 내가 이해하려고 애를 쓰니까  나의 가슴 저 편이 푹 꺼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보고 마음이 급하다고 했는데 오히려  나의 주치의가 환자처럼 보였다. 급한 성격이 참으로 안쓰럽게 보였다. 


어쨌거나 주치의가 권유한 검사를 끝내고 결과를 보고 나오는데 병원 밖 벚꽃이 눈물 나도록  화려했다.  현대중공업 회사 맞은편 앞에서 흘러나오는 상여 노래가 벚꽃나무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는 무작정 걸었다. 담벼락에서 피어나고 있는 담쟁이 잎들 나를 보고 인사를 했다.  양쪽 어깨를 바로 서게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잔잔한 해안(일산)이 나타나고 소나무(대왕암공원)나타나늠름한 출렁다리가 나타나고 웃는 사람이 강아지를 끌고 산책하는 해변(슬도 가는 길)이 나타났다.  웃는 사람들이, 혹은 어떤 좋은 풍경들이 계속 눈앞에 나타난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


내가 가볍게 움직이면, 마음을 비우면  반가운 얼굴이 많아진다. 바다의 얼굴이 다양하다. 파랗고 노랗고 하얗고, 초록초록 ...안정적인 색과 표정을 나타내는 것들이 귀하고 고마웠다. 내가 손을 내밀면 내 손가락을 어루만져주는 태양과 구름과 바다와 나비와 바람과 꽃들이 진정한 내 편인 날ㅡ

매거진의 이전글 향기나는 카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