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 장보기
" 오늘 뭐해요? 리데르 마트에 오늘 고기 세일하는 날인데 같이 갈까요?"
"그래요? 같이 가요. 아침에 청소기 돌리고 빨래 개고 널어야 하니 한 11시쯤 만날까요?"
칠레의 수많은 장점을 무색하게 하는 가장 큰 단점이 있다면 음식이다. 외식은 돈만 버린다는 생각이 드니 주로 집에서 삼시 세끼를 다 해 먹게 된다. 도시락도 남편까지 3개에 아이들 간식 2개씩 4개를 챙겨야 하는 엄마들은 냉장고 비는 것을 대비해야 하기에 일과 중 장 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동남아 주재원으로 나갔던 지인의 말을 들으면 인건비가 워낙 싼 나라들은 아이 봐주는 사람, 집안 일 해주는 사람, 요리해 주는 사람까지 저렴한 비용으로 고용하여 우아한 시절을 보냈다고 하던데.
칠레는 인건비가 한국만큼 비싸서 거의 엄마들이 모든 것을 다 한다.
스쿨 버스비까지 비싸서 매일 오전, 오후 아이들 픽업으로 고생하는 엄마들도 많았다.
" 칠레에 와서 내가 나나(가사 도우미)인가 싶었던 적이 많잖아요"
"왜 우리 앞집 나나는 저에게 이 집 나나냐고 직접 물어본 적도 있어요."
"하하, 우리 진짜 주재원으로 나가면 편한 삶이 펼쳐 치는 줄 알았는데 새벽부터 도시락 싸고, 애들 학교 가면 아침 설거지에 청소, 빨래하고 장보고 그럼 아이들이 오고 저녁 준비해서 먹이고 저녁 설거지하고. 진짜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겠어요."
"맞아요. 그리고 김치 담가야지, 고기도 덩어리로 파니 썰어야지, 정말 이러다 손목 나가겠어요."라며 푸념하기도 하기도 한다.
물론 나중에는 청소도 매일 안 하고, 식기세척기 써 가면서 짬을 내서 브런치도 먹으러 가고,
칠레에서는 저렴한 골프도 치러 다녔지만 한국보다 집안일이 2배 이상 늘은 것은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어머니들의 담가주신 김치, 사 먹는 반찬, 밀키트 등이 일손을 덜어주고, 무엇보다 학교 급식이 있기에 도시락 싸는 고행길은 피해도 되지만 칠레는 먹는 일에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한다.
일과 중 중요한 장 보는 일을 조금 더 나눠보려고 한다.
주로 장 보러 대형마트를 가는데 집 근처에는 유명한 대형마트 Jumbo, Lider, Unimarc 이 있다. 한국처럼 매우 쾌적하고 크며, 농산물이 대체적으로 저렴하다. 사진처럼 복숭아가 1킬로에 한국돈 4500원 정도이고 수박도 1통에 8000~9000원 정도니 진짜 싼 편이다.
특히 사과가 많이 쌌는데 한국 와서는 사과가 너무 비싸 쉽게 못 사 먹고 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도 한국보다 조금 저렴했고 특히 소고기 질이 좋아서 자주 먹었다. 칠레 소고기보다 아르헨티나 소고기가 더 맛있다고 해서 아르헨티나 소고기를 더 선호해서 사기도 한다.
그러나 농수산물에 비해 공산품이 많이 비싸다.
거의 수입을 하다 보니 문구류나 장난감도 한국에 비해 질이 떨어지고 비싸다. 레고도 한국의 비용의 1.5배를 줘야 살 수 있어서 한국 나갈 때 문구나 레고는 사가지고 들어가기도 한다. 약도 비싸서 구급약은
한국에서 미리 처방받아 가거나 약국에서 미리 사가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끔은 베가시장(전통시장)에 가서 과일이나
야채를 더 저렴하게 사기도 한다. 소매치기 위험이 높아서 안 가는 것을 추천하나 블루베리가 나오는 시즌에는 여러 명이 한 차로 가서 한 박스씩 사 오기도 한다. 한 박스에 만원도 안 하니 한 번쯤은 가게 된다. 작은 멜론은 한통에 1500원이고 매우 달다. 가을에 감이 나올 때는 가서 대봉, 단감을 싼 가격에 잔뜩 사 오기도 한다. 무겁게 장을 보고 집에 돌아가면서 "얼마나 싸게 산다고 이렇게 무겁게 사고, 이고 가는지 모르겠다" 한탄하지만 엄마들은 다음에 가자고 하면 군말 없이 또 장바구니를 챙기며 따라나선다.
사는 곳에서 차로 20분 정도 가면 Patronato라는 동네에 한인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다. 몇 개의 한국 식료품 마트와 정육점, 떡집, 한국식 빵집 등이 있다. 한국 재료를 살 수 있어서 매일 가고 싶지만 가는 교통비가 비싸고 이 지역도 치안이 조금 위험해서 자주 못 가니 갈 때마다 바리바리 사 오게 된다. 각종 식료품도 한국 가격의 1.5~2배 가격으로 사야 하니 과자 한 봉지 고르는 일도 매우 신중하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붕어빵은 10000원이 넘는 돈을 줘야 하니 들었나 놓았다 고민하게 된다. 특히 스팸, 일본식 카레도 너무 비싸서 한국 다녀올 때 사가지고 온다. 거주기간이 3년이 넘어가니 마트 물건 가격까지 외워져 품목별 마트 쇼핑까지 가능하였다.
한인마트 근처에는 한국식 정육점 아리랑과 한국식 빵집 Copo de crema이 있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고기의 종류들이 많고 먹기 좋게 잘라져 있어서 자주 갔다. 특히 샤부샤부용 냉동고기를 팔아서 편했다.
한국식 빵집은 가격은 좀 비싸지만 맛이 정말 좋아서 칠레 사람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특히 이 집 딸기 생크림 케이크는 한국 케이크 못지않게 맛있어서 30000원이 넘는 가격이지만 생일날에는 미리 예약해서 꼭 먹는다.
코로나 이후 다행히도 배달을 할 수 있어서 마트도 Uber eats를 이용하여 쉽게 주문하고 문 앞에서 받기도 하였다. 장 볼 시간이 없을 때는 얼마나 유용하게 썼는지 모른다.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시간이지만
온전히 가족을 위해 에너지를 쓸 수 있었던 시간이라 후회는 없었다.
아이들에게도 하루 세끼를 엄마가 준비해 주니
몸도 마음도 부쩍 더 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도시락 안 싸는 요즘이 훨씬 더 편하지만 정성으로 먹이던 그 시절은 아이들에게도 내게도 몽글몽글한 추억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