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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언덕에 핀 꽃

<단편소설. 끝>

by 박래여 Oct 05. 2023

 대원은 계단에 퍼질러 앉았다. 그 대목에만 오면 숨이 찼다. 한참을 두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있다가 일어섰다. 천천히 포로수용소의 유적지를 돌아 나오다 예전에 포로수용소 입구가 있던 곳을 찾았다. 녹 쓴 철조망을 감아 오른 담쟁이넝쿨이 옛 자취를 기억나게 했다. 소나무 아래 시멘트가 깔린 둥근 원안에 들어가 앉았다. 포로수용소에 기거하던 미군 병사와 그 아내, 가족들이 파티를 열던 곳이라 했다. 밤이면 청춘남녀가 모여 몽환의 춤을 추며 즐기던 곳, 철조망 안에서 그 현란한 광경을 지켜보며 이를 갈았을 포로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살아 있는 자보다 죽은 자가 많으리라. 역사는 기록에서만 남아 있을 뿐 직접 전쟁의 참화를 겪지 못한 현재를 사는 사람에게 아픈 역사도 스쳐가는 바람 같은 것이 아닐까.

 대원은 거제포로수용소를 나와 바람언덕으로 향했다. 학동 몽돌해수욕장 근처를 지날 즈음에는 자신도 모르게 가속페달을 밟은 오른발에 힘이 실렸다. 중형 SM5는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바람을 가르며 구불구불한 길을 달렸다. 바다를 품고 앉은 섬 거제, 다리가 생기면서 배편이 아니라 육지와 이어졌지만 그에게 거제는 여전히 무인도 같은 섬이었다. 관광객이 밀리고 밀리는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낯선 그림일 뿐 그의 마음에 있는 섬은 짙은 검회색 바다와 낡은 어선이 떠 있는 폐허 같은 섬이었다. 

 대원은 바람의 언덕으로 가는 길에서 바다 쪽을 봤다.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덩이, 신선바위는 천년 후에도 그 자리에 그대로 꿈쩍도 않고 앉아 있을 커다란 덤이었다.  신선바위가 가슴을 찌르며 들어왔다. 통증, 이젠 모두 사그라지고 없으리라 생각했던 통증은 늘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솟구쳤다. 그 옆에 바다의 풀등 같은 송도도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대원은 바람언덕의 이정표를 지나 간이주차장에 승용차를 세우고 좁고 가파른 오른쪽 언덕 아랫길을 따라 신선바위 쪽으로 내려갔다. 대원은 신선바위 끝자락에 가서 걸터앉았다.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오관을 자극했다. 바위를 치고 가는 하얀 포말이 그때 뿌린 눈물방울 같았다. 아내는 통곡을 하고, 그는 속울음을 삼키며 그 자리에서 아이를 보냈었다. 자유롭게 날아가라고, 갈매기 조나단처럼 가볍게 날아가라고. 비로소 대원은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았다. 팔뚝에 내려앉는 끈끈한 소금기조차 혀로 핥아먹고 싶을 정도로 그리웠던 곳, 아내를 품어주지 못했던 아픔조차 함께 그리웠던 곳, 아내와 함께 뿌렸던 눈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는데.

 ‘현아, 아빠가 왔다. 오래 기다렸지? 많이 외로웠을 게다. 그래, 아빠도 많이 외로웠단다.’

 대원은 중얼거렸다. 하얀 포말이 다리 아래 신선바위를 강하게 강타하고 물러갔다. 그제야 아들 현이가 현관을 나서는 그를 향해 중얼거렸던 말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빠, 미워 나랑 거기 가기로 했잖아.’하면서 물기 크렁크렁한 눈으로 바라보던 모습이었다. 아들의 마지막 모습, 30년 동안 하루도 잊을 수 없었던 그 눈빛, 그 모습이 신선바위에 앉으니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밀려가고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아들은 그의 품에 안겼다가 사라져 가기를 반복했다. 

 ‘당신 참 모질군요. 어쩜 눈물 한 방울도 없어요. 아들이 가는데. 내 잘못이지만’

 바람결에 실려 오는 쓸쓸한 목소리가 파도를 타고 넘나 든다. 대원은 돌아섰다. 어쩜 그것은 아내의 잘못만은 아니란 것을 안다. 가족보다 나라는 에고가 먼저였던 젊은 치기 때문에 아들도 아내도 어머니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하고 차버린 것이 자신이었음을 안다. 그날, 불뚝 치솟은 화를 참고 아내를 다독였다면 아니, 현이를 안았다면 그의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을 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한 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대원은 신선바위를 뒤로 하고 다시 길 위에 올라 반대편 바람의 언덕 쪽으로 걸어갔다. 이국적인 풍차가 돌고 있는 바람의 언덕, 그 너머 푸르게 넘실대는 바다를 봤다. 바람의 언덕을 오르는 길섶이나 언덕 아래 바닷가는 예전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때는 낡고 가난한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곳이 지금은 완전히 관광지로 바뀌어 있었다. 대원은 바람의 언덕에 오르는 계단을 천천히 밟고 올랐다. 평일인데도 관광객이 많았다. 바람의 언덕이란 이름에 매혹되어 찾는 발길인지, 바람의 언덕에서 바라보는 거제 바다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찾는 발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외로 관광객이 많았다. 

 대원은 천천히 절벽 위에 섰다. 발아래 푸르고 깊은 물이 넘실거렸다. 사람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나무기둥을 세우고 굵은 새끼줄을 쳐 놓았다. 그 아래, 노란 금계국이 사방에 피어 있었다. 유난히 노란색을 좋아하던 아이였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면 노란색 크레용만 바닥나곤 하던 아이, 대원은 뒤를 돌아봤다. 등 뒤에 풍차가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 아이의 넋이 따라와 풍차를 돌리는 듯했다.

 대원은 넋을 놓고 풍차를 보다가 풍차 아래로 사뿐히 내려서는 한 여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바다를 향해 걸어오는 여인, 하얀 저고리에 감색주름치마가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단연 도드라졌다. 대원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개량한복이 참 잘 어울리는 여자구나.’ 순간 대원은 그 여자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자가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대원과 눈이 마주쳤다. 네 개의 눈이 동시에 딱 멈췄다. 관광객도 바람도 그들 사이에 딱 멈추어 섰다. 두 사람은 망부석이 되어 마주 봤다. 바람의 언덕에는 오직 두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아, 당신......”

 여자가 먼저 중얼거렸다. 

 “순임이 맞소?”

 대원은 바짝 마른 입술을 겨우 움직여 물었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옆으로 걸어와 섰다. 가까이서 본 그녀, 짧은 커트머리를 좋아하던 그녀, 지금은 반백이 된 긴 머리를 어깨 뒤로 단정하게 묶었다. 대원은 돌아서서 바다를 봤다. 순임도 그의 옆에 서서 바다를 봤다. 30년 전 그날처럼 말없이. 

 대원은 그날을 떠올렸다. 

 그들은 신선바위에서 새가 된 현이를 보내고 정처 없이 걷다 보니 바람언덕의 절벽 앞에 서 있었다. 대원을 따라 말없이 걸어온 순임도 그곳에 서서 바다를 봤다. 그때는 이국적인 풍차도 없었다. 그냥 바다 위의 절벽 난간일 뿐이었다. 대원은 죽음을 생각했다. 죽고 싶었다. 아들을 따라가고 싶었지만 자신만 바라보고 청상으로 살아오신 어머님을 생각하면 차마 절벽 아래로 뛰어내릴 수도 없었다. 그곳에서 대원은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꺼이꺼이 목 놓아 울었다. 

 “왜 그랬어? 왜?”

 순임의 어깨를 잡고 쩔쩔 흔들다가 사정없이 밀어버렸다. 순임은 맥없이 쓰러졌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내 탓이에요. 내가 그 앨 죽였어요.”

 울 기력도 잃어버린 순임은 풀밭에 엎어진 채 풀을 쥐어뜯으며 그 말만 되풀이했다.

 비로소 냉정을 되찾은 대원은 순임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떤 감정도 실려 있지 않은 삭막하고 날카로운 쇳소리 같은 거였다. 

 “당신이 원했지. 그래, 우리 헤어지자. 더 이상 당신과는 안 되겠어. 이렇게 될 줄 알고 당신은 뱃속의 아이도 죽였구나. 현이가 그토록 원하던 동생을 당신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했었지. 이제 알았어. 어머님이 외아들인 내가 외로웠으니 아들 생각해서 손자든 손녀든 상관없이 셋만 낳아달라고 했을 때 당신은 현이 하나면 된다고 혐오스럽다는 듯이 딱 잘랐었지. 어머님은 그런 당신에게 넌더리를 냈고. 결국 이렇게 될 줄 알았구나. 홀가분하겠구나.”

 그리고 그들은 헤어졌다. 대원은 이혼 서류를 작성해 순임의 친정으로 보냈다.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집과 전답을 팔아서 반은 순임에게 위자료로 지급하고 반을 가지고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는 외삼촌이 작은 직물공장을 하고 있었다. 대원은 외삼촌 밑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잊고 싶었다. 순임도 잊고 싶었고, 현이도 잊고 싶었다. 다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지만 모자는 끝없이 그를 괴롭혔다. 외삼촌은 새장가를 가라고 했지만 여자는 모두 아내 같아서 싫었다. 어머니는 그의 방황이 길어지자 마음병을 얻어 앓다가 돌아가셨다. 외톨이가 된 그는 어머니를 잃고 서야 조금 정신을 차렸지만 여전히 혼자 살았다. 30년 동안 단 한 번도 거제에 오지 않았고 아내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철저하게 잊었다. 아니 철저하게 잊고 싶었고 잊은 척했다. 자신이 죽음 앞에 서지 않았다면 아직도 잊은 척 아니, 진짜 잊고 살았을지 모른다. 대장암 말기, 그는 살아갈 날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고서야 아들 현이 생각을 했다. 아니, 고향 생각을 했다. 돌아가고 싶은 곳,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 기뻤다.

 그랬다. 마음의 정리가 필요해 나선 길이었는데 뜻밖에도 아내를 만난 것이다. 우연일까. 신의 섭리일까. 대원은 곱게 늙은 아내의 모습을 슬쩍 훔쳐봤다. 아내는 잘 살아온 것 같았다. 그래, 잘 살면 된 거지. 맺힌 고를 풀고 오라는 신의 섭리 아닌가 생각하니 마음이 한없이 너그러워졌다. 대원은 앞뒤 뚝 잘라버리고 스쳐가듯 나직하게 말했다.     

  “그때 일 미안하오.”

  “아니요. 제가 늘 미안했어요.”

 그들은 바람의 언덕에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텅 빌 때까지 망부석처럼 서서 바다를 보다가 천천히 바람 언덕을 걸어 나왔다. 신선바위와 바람언덕을 가르는 삼거리에 섰을 때 순임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시간 있으면 잠깐 그곳에 같이 갔으면 해요.”  

 “거기 말이오?”

 순임이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이젠 아프지 않다. 다시 가 봐도 괜찮겠지.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그리움 한 조각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현아, 기다려라. 곧 갈게. 할머니랑 잘 있지? 뜻밖에도 너의 엄마를 만났구나. 30년 만인데 하나도 안 변했네. 그때 그 모습이더라. 아빠는 반갑더라. 너에게 해 줄 이야기가 하나 더 늘어서 좋구나. 아빠를 용서해 다오.  엄마 잘못이 아니라는 거 안다. 그런데도 아빠는 너의 엄마를 원망했어. 바꾸어 말하면 너를 외면하고 집을 나왔던 나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거야. 내 잘못인데. 엄마 잘못으로 돌리고 싶었던 거야. 알지? 너는 그날 많이 외로웠던 게야. 엄마아빠가 크게 싸웠으니까. 

 대원과 순임은 각자의 승용차를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바람의 언덕을 떠났다.

 대원은 순임의 차를 따라가며 라디오를 켰다. 세월호 소식이 다시 들려온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의 비탄이 고스란히 그의 가슴을 찔러온다. 모진 세월이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각인된 상처는 낫지 않았다. 가끔 아물었나 싶으면 다시 차오르는 통증이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던 긴 세월, 대원은 안다. 그들 부모도 그와 같은 마음이리라. 라디오를 껐다. 

 학동 몽돌해수욕장에 닿았다. 앞서 가던 순임의 차가 바닷가 근처 조그마한 카페 앞에서 섰다. 대원도 근거리에 차를 세웠다. 핫도그와 옥수수, 오뎅을 파는 리어카에서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예전에 그 바닷가는 높고 낮은 다랑이 논밭이었다. 구불구불한 논과 논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바닷가에 닿았다. 바닷가는 바스락거리는 검은 자갈로 덮여 있었다. 물빛은 푸르고 깊었다.

 대원에 승용차 안에 앉아서 창문만 내리고 바다를 봤다. 아직 오월인데도 바다는 한적하지 않았다. 옷을 입은 채 물속에 들어가 자맥질을 하는 젊은 남녀의 경쾌한 웃음소리와 자갈밭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물수제비 뜨는 소리, 뱃고동 소리, 갈매기의 끼룩끼룩 우는 소리, 다소곳이 서로의 어깨에 기대 바다를 바라보는 젊은 연인들, 중년 남녀가 모여 먹자판을 벌인 것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바다는 그대 론데 주변은 온통 변해버렸다. 가난한 어촌의 모습은 아니었다. 세련되고 흥청망청하는 도시풍의 어촌으로 변해 있었다.

 순임이 대원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대원은 차에서 내려 순임을 따라갔다. 순임은 사람들이 뜸한 바다 가장자리를 향해 걸었다. 발자국을 떼어놓을 때마다 짜르르 짜르르 몽돌이 울었다. 순임은 몽돌해변 옆에 바다를 향해 툭 불거진 바위 쪽으로 걸어가다가 어떤 지점에서 멈추더니 바다를 보고 자갈밭에 퍼질러 앉았다. 대원도 순임 옆에 가서 앉았다. 순임은 반질거리는 자갈 두 개를 주워 만지작거리며 먼 수평선 너머 떠 있는 크고 작은 배를 바라봤다. 대원도 가만히 그녀 옆에 앉아 바다를 봤다. 바다는 평온했다. 

 순임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신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당신은 한 번도 내게 묻지 않았고, 나는 말할 기회를 잃었던 이야기지만. 그날, 당신이 집을 나가고 울면서 들어온 현이를 달래기 위해 여길 왔었어요. 나도 울음 울 곳이 필요했고요. 여기에요. 내가 앉아 넋을 놓고 있던 자리가. 그리고 현이는 저기 바위 쪽으로 다람쥐처럼 올라갔어요. 나는 현이에게 멀리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는 그냥 잊어버렸어요. 내 설움에 빠져서 꺽꺽 울면서 아이를 잊은 겁니다. 딱 한 번 현이가 저 바위 위에 올라 엄마라고 불렀어요. 나는 근성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지요. 현이는 두 팔을 벌려 사랑한다는 표시를 했어요. 나는 고개를 돌렸고 아이는 사라졌어요. 요즘처럼 사람이 몰렸더라면 누군가 바위에서 미끄러져 바다에 빠지는 현이를 발견했겠지요. 그때는 이곳이 을씨년스러웠어요. 여름철에만 잠깐 북적대는 곳이었지요.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는 내 주위가 너무나 조용하다는 것에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아이를 찾았죠.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미친 듯이 저 바위에 올라 현이를 부르기도 하고, 바닷가를 헤매기도 했어요. 현이를 부르는 내 절박한 비명소리에 동네 노인 한 분이 나오더군요. 나는 그 어른을 붙잡고 우리 아이 좀 찾아달라고 매달렸어요. 그분이 거제 해경에 연락을 했고, 아이는 파도에 밀려 저 바위 너머 어딘가에서 발견했다더군요. 나는 해경이 안고 온 현이를 보고 그 자리에서 기절을 했었지요. 그다음은 당신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미 지나간 세월이오. 나만 힘든 세월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 거요. 어쨌든 우리는 이렇게 살아 있고 또 만났구려. 아마도 현이가 우리를 만나게 한 모양이오. 한 가지 묻고 싶소. 그날 바람의 언덕에서 당신은 어디로 간 거요? 모진 말을 하긴 했지만 걱정을 했었소.”

 “바람언덕에서 당신이 사라진 후 나는 신선바위로 갔어요. 현이랑 같이 있으려고 뛰어내렸지요. 현이가 나를 구했나 봐요. 나는 죽지 않았지만 죽은 여자였어요. 나를 구한 사람은 다름 아니라 현이를 찾아준 그 노인이었어요. 내가 왜 죽으려고 했는지 아는 분이었기에 나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던 거래요. 그날부터 쭉 여기서 살았어요. 저기 <현이 카페>라고 문패가 붙은 집이 제 집이에요. 늘 현이랑 살고 있어요. 내가 당신을 찾았을 때는 이미 몇 달이 흐른 후였고 당신은 서울로 이사를 갔다더군요. 친정어머니께 전해준 위자료 고마웠어요. 그것을 밑천으로 저기 현이 이름으로 카페를 열었어요. 처음에는 바닷가 헌 집을 구해서 찻집으로 꾸몄는데 몽돌해수욕장을 재정비를 하는 과정에서 현대식 카페가 된 겁니다.” 

 “재혼도 않고 쭉 혼자 지낸 거요?”

 “당신도?”

 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다시 만났다한들 무엇이 달라질까.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 마지막 합일점을 찾아갈 뿐이 아닐까. 그들에게 젊음은 다시 오지 않고, 영원히 자람을 멈춘 아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맴돌 것이다. 대원은 바다를 향해 자갈을 주워 던졌다. 퐁 퐁 퐁 퐁 퐁 다섯 개의 징검다리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마지막 둥근 파문 속에 아들 현이가 웃고 있었다.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아빠, 빨리 와. 엄마, 빨리 와. 여기야 여기’ 아이는 긴 세월을 건너뛰어 개구쟁이 모습으로 거기 있었다. 그들은 아이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았다. 

 “갑시다.”

 대원은 순임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순임도 대원의 손을 꼭 쥐었다. 수평선 너머 해가 설핏 기울고 있었다. 고기를 낚으러 갔던 어선들이 조용히 돌아오고 있었다.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희망의 불빛이리라. 대원과 순임도 오랜만에 편안한 휴식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긴 기다림이었다. 더는 기다릴 필요가 없는 그런 기다림이었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걸었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어떻게 건널 것인가는 그들 두 사람의 숙제일 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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