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
당신의 소원
박래여
소원사 부처님은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지.
나는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그를 본다. 내 손을 꽉 잡은 그의 손에 끌려들어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다. 가슴에 붙인 마약페치도 소용없고, 강한 진통제 알약을 부드럽게 갈아 물에 탄 것도 소용없었다. 빨대로도 물을 빨아먹을 힘이 모자란다. ‘내 죽어가는 꼴 보니 좋나? 제발 안 아푸고로 해 도라. 순아, 제발 나 좀 살리도. 병원 가자. 열이 불러라.’ 그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헐떡거린다. 뼈만 남은 앙상한 손, 해골 같은 얼굴, 툭 튀어 나온 눈에서 새파란 불꽃이 튄다. 나는 그 손을 어스러지게 잡았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나.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고통스럽다. 한바탕 통증이 지나가면 그의 눈에서 빛이 사라진다. 내 손을 잡았던 그의 손에서 힘이 빠진다. 축 늘어진 그의 얼굴은 핏기라곤 없다. 나는 그의 입술에 젖은 거즈를 물린다. 발치에 놓인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준다. 이젠 눈물도 말라버렸다. 조용히 방을 나온다.
“열아, 아부지가 병원에 가잔다. 응급실로 가모 무슨 수가 나것제.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너거 아부지 소원대로 병원으로 모시자.”
아들은 알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긴 병에 효자 없다던가. 아들의 한숨이 보인다. 어쩌겠나. 나는 다시 그의 곁으로 간다. 그는 멍한 눈빛이다. 풀어진 눈동자가 나를 보자 생기가 돌아온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잡아달라는 뜻이다. 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다. 다행이다. 나는 그 손을 내 볼에 댄다. ‘미안하오.’ 허옇게 변한 그의 입술이 달싹거린다. 나는 가만히 웃는다. 그는 내 웃음을 마주본다. 살짝 벌어진 입귀가 올라간다. 그의 입에 물렀던 젖은 거즈가 베개 옆에 떨어져 있다. 나는 새 거즈를 물에 적셔 그의 입에 물리고 이불을 벗긴다. 푹신한 매트리스에 그를 반듯하게 눕힌다. 보통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던 키, 이목구비가 뚜렷했던 얼굴은 거기 없다. 살아있는 미라다. 나는 허깨비 같은 그의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여가며 내복을 벗긴다. 식은땀에 젖은 내복은 잘 벗겨지지 않는다. 나는 용을 쓴다. 그가 내 손을 잡는다. 조금 전보다 또렷한 목소리로 말한다.
“열이가 오모 하소. 당신이 심든데.”
“옷을 갈아입고 있어야 바로 병원에 가지요.”
“인자 안 아푸니 병원 안 가도 되오.”
“진통제 효과가 자꾸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의사의 처방을 다시 받아오든지 해야지요.”
“소용없소. 인자 진통제도 안 듣소. 여보, 생각해보니 나는 참 잘 산 것 같소. 당신 덕이오. 열이가 효자니 당신 혼자 남아도 괜찮을 것 같소.”
“그런 말 하지마세요. 당신 없이 어찌 살라고.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입시더. 그 병원은 환자의 통증을 잘 다스려 준답니더. 의사도 간호사도 항상 대기하고 있고 친절하게 잘 보살핀답니더. 1인 1실이라요. 병실만 나모 연락 준다 했으니 쪼맨만 더 기다려 보입시더. 열이가 수시로 연락한답니더.”
“열이 옴마, 당신이 고생하니 병원 간다고는 했지. 나는 집에 있고 싶소.”
“알아요. 당신이 나를 위해서 내린 결정이라는 거.”
아들은 그를 근처 종합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시키기로 했다. 말기 암 환자의 마지막을 도와준다는 호스피스 병동도 꽉 찼단다. 병원에서 자리가 나면 연락 주겠단다. 아들의 결정을 따르면서도 나는 울지 않았다. 눈물샘이 말라버렸다. 왜 당신인가. 무능한 나를 조리돌림 시키던 회한도 없다. 그냥 멍하다. 통증이 가라앉으면 그의 얼굴은 평온하다. 푸른 눈빛은 호수 같다. 새파란 인광을 뽑아내던 눈빛, 살고 싶어 하는 눈빛, 내가 왜 죽어야 하느냐고 악을 쓰던 일그러진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체념한 눈빛은 내가 대신 아플 수도 없고, 내가 대신 죽을 수도 없다는 사실만 확인시켜준다. 인간은 죽는다. 언젠가는 혼자가 된다. 혼자라는 짐조차 놓아버리면 나도 평온할까.
지난여름은 유난히 폭염이 심했다. 지구온난화의 가속화 탓이라 했다. 북극의 빙산이 녹아내린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하던 식품점을 아들에게 넘겼다. 좀 쉬고 싶다고 했다. 나도 찬성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 이젠 편하게 살자. 파크골프도 치러 다니고, 외국여행도 하면서 그동안 못 해 본 것들 즐기며 살자고 했었다. 그는 신바람이 났다. 버킷 리스트를 준비한다고 몇 날 며칠 끙끙거렸다. 가끔 그는 소화가 안 된다며 식사 후에 활명수를 들이켰다. 활명수를 박스째 사다놓고 수시로 마셨다. 살도 빠지기 시작했다. 날마다 긴장해 살다가 마음이 풀어지니 몸살 하나보다 예사롭게 여겼다.
시간은 멈춤 없이 지나갔다.
추석날 아침이었다. 아들 형제와 며느리, 4명의 손자손녀로 꽉 찬 집안은 웃음꽃이 만개했다. 집안이야기라 부끄럽지만 막내는 독일에 가서 살고, 큰 아들은 남매를 데리고 혼자 산다. 도박에 미친 며느리였다. 몇 억의 빚과 남매를 남기고 집을 나갔다. 결혼 할 때 우리가 대출받아 사준 아파트까지 싹 말아먹고. 그 어린 손주를 내 손으로 키웠다. 식품점 운영 하랴, 어린 남매 돌보랴, 정신이 나가 술만 퍼는 아들 달래랴, 그때는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다행히 둘째 아들부부는 착실하다. 며느리가 살림을 똑 부러지게 한다. 피자 가게 하나 내 줬더니 제 집 마련까지 하고 산다. 우리 집 복덩이.
“어머님, 어시장에서 싱싱한 해물 사 왔어요. 보세요. 새우도 문어도 엄청 싱싱해요. 이것 넣고 탕국 끓이면 아버님이 좋아할 것 같아서요.”
“비쌀 텐데. 많이도 사 왔구나.”
“저 이뿌죠? 사랑받는 며느리니 용돈도 많이 주실랑가?”
“그래, 조야제. 너거 시아베가 안 주모 나라도 주께. 너 아니면 우리가 웃을 일도 없다. 솜씨 자랑 해 봐라. 너거 시아베가 요새는 묵는 기 부실하다. 안 묵어 그런지 자꾸 살이 빠진다. 먹고 싶은 것도 없다 쿠고. 소화도 영 안 된다 쿠고. 병원에는 안 가려하고. 저 똥고집을 나는 이길 수가 없다. 니가 살살 구슬러 봐라.”
며느리는 솜씨꾼이다. 추석날 아침 두레상에 앉으면 모두 군침을 흘린다. 맛깔스런 갈비찜, 온갖 튀김, 잘 익힌 생선, 내가 좋아하는 잡채에 남편이 좋아하는 해물을 듬뿍 넣고 끓인 탕국이 놓였다.
“자, 모두 묵자. 탕국이 시헌허니 맛있네. 며눌아야, 니도 와서 앉아라.”
그는 탕국이 참 맛있다며 몇 숟가락 떴다. 모두 밥 먹느라 정신없는데 갑자기
“내가 와 이라노?”
모두 그를 쳐다봤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가 차츰 일그러졌다. 그는 배를 움켜쥐고 폭 고꾸라졌다. ‘아부지, 아부지.’ 아들은 아버지를, 손자들은 할아버지를 불러댔다. ‘빨리 병원으로’ 아들과 나는 그를 싣고 근처의 종합병원 응급실로 직행했다. 새파란 당직의사는 그를 진찰대에 눕히고 배를 눌렀다. 그는 비명을 질렀다. 의사는 검사를 지시했다. 그는 링거 병을 달고 누웠다. 두 시간 후, 그는 통증이 가라앉았다며 멀쩡하게 일어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