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엄마, 내가 꿈 해몽을 찾아봤어"

by 오이랑

환절기 몸살감기는 첫째 아이에게 종합 선물 세트처럼 짜증을 안겨주었다. 끙끙 앓는 몸, 밀린 학교와 학원 숙제, 친구들과의 미묘한 관계에서 오는 어지러움, 수업 시간에 친구들에게 받지 못한 인정에 대한 서운함. 심지어 귀가 잘 들리지 않는(최근 노안까지 와서 힘든데, 아이들은 엄마가 잘 못 알아듣는 것 같다며 자기네들끼리 '노이(老耳, 늙을 노, 귀 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냈다.ㅜ) 나 때문에 자꾸만 말을 반복해야 하는 답답함까지. 아이는 자신의 육체적 아픔과 정신적 혼란을 집안 가득 한껏 전시했다.


나름 여유 있게 기다렸던 사춘기였다. 하지만 막상 시동도 걸리기 전인 듯한 아이의 날 선 반응에 나도 모르게 쫄기도 하고, 속에서 부글부글 무언가 끓어오르는 나를 발견하는 요즘이었다. '아파서 그럴 거야', '공부할 게 많으니까', '학교에서 힘들었겠지'. 속으로 아무리 아이 편을 들어 대리 변호를 해도, 한순간 마음이 상했다가 다시 다잡기를 반복했다. 감정 기복이 그닥 없는 나인데도, 딸의 기분에 눈치를 보며 오르락내리락하느라 힘이 빠지던 차였다.


그 와중에 둘째가 내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언니 사춘기 온 거 같아."

마치 피할 수 없는 전염병에 우리 언니도 걸린 양, 조심스레 엄마를 달래는 녀석의 진지한 진단에 나도 모르게 무장 해제! 그래, 사춘기. 그 무시무시한 이름의 시작이려나.



다음 날 아침, 여느 때처럼 기상이 힘든 아이의 '왕짜증 공격'을 피하고자 나는 심호흡을 한번 크게 했다. 그리고 평소 내 톤과는 사뭇 다른, 답지 않은 하이톤의 목소리를 장착했다.


"우리 딸, 잘 잤어? 밤에 아프진 않았어? 다리 주물러 줄까?"


잠을 이겨내며 살며시 뜬 눈으로 아이가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응. 잘 잤어. 엄마도 잘 잤어? 안아주세요."


'에고. 이제 진짜 우리 딸로 돌아왔네.' 순간 안도하며 아이를 꼭 껴안고 등을 토닥이고 있는데, 아이가 품 안에서 말을 이었다.


"나... 너무 슬픈 꿈을 꿨어."

"응? 무슨 꿈?"

"꿈에서 내 생일이었는데... 생일 바로 다음 날... 엄마가 죽었어. 너무... 너무 슬펐어."


말을 이어가며 아이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꿈이 현실이 아닌지, 내 품속의 온기를 확인하려는 듯한 눈빛이었다. 나는 아이를 더 꽉 안아주었다.


"아이고, 그런 꿈을 꿨어. 괜찮아. 엄마 여기 있잖아. 그냥 꿈이야, 꿈."


한참을 그렇게 서로 안고 있었다. 꿈속에서의 상실감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숙제 중인 아이에게 인사를 하니, 아이가 아침과는 달리 꽤 담담한 얼굴로 나를 불렀다.


"엄마. 내가 아침에 그 꿈 해몽을 검색해 찾아봤더니, 엄마가 죽는 꿈은 극심한 스트레스, 새로운 시작, 독립. 뭐 이런 거래."

"벌써 독립? 사춘기 시작인 건가? 아니면 아파서 스트레스가 심했나?"


여러 생각이 스쳤지만, 나는 그저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꿈 해몽이라는 나름의 논리적인 해석을 통해 자신의 복잡했던 마음을 일단락 지은 듯 보였다.


아이가 꾼 '엄마의 죽음'은 어쩌면 아이가 겪고 있는 혼란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숙제, 친구 관계, 몸살, 엄마에 대한 답답함까지. 그 모든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어내며, 아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새로운 시작'과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엄마라는 절대적인 세계가 한번 무너지는 꿈을 꿀 만큼, 아이는 지금 자신의 세계를 다시 세우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 꿈은 나에게도 선명한 메시지를 주었다. 아이가 온몸으로 힘듦을 뿜어낼 때, 그 이면의 스트레스를 읽어줄 것.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꿈 해몽'을 찾아보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나갈 때, 한발 물러서서 기다려줄 것. 아이의 성장은 그렇게 꿈으로도, 날 선 반응으로도, 그리고 스스로 찾아낸 해석으로도 온다.


나는 그저 아이가 언제든 돌아와 기댈 수 있도록, 따뜻한 품을 준비해 두는 '여기 있는 엄마'이면 되는 것이었다. 둘째의 진단대로, 진짜 사춘기가 오면 이보다 더한 파도가 밀려오겠지만, 오늘 아침의 그 포옹과 저녁의 꿈 해몽을 기억하며 나도 조금은 단단해져 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