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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Jung Oct 09. 2022

메타버스의 현실

가상세계의 미련에서 얻은 깨달음

- 서론

얼마 전 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이 허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불우했던 학창 시절과 청소년기를 지나 20대가 된 나는 막 사회에 발을 들여

VR기술과 커뮤니티를 접하고 난 후 그것이 주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내가 당시에 경험했던 VR과 메타버스는 새로운 혁신이자 기회이고 희망이었다.

그곳은 불합리하고 제약이 많은 현실과는 다르게 무한하고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메타버스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 내가 나로서 있을 수 있었으며,

나와 잘 맞는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은 창조적인 공간이었다.

누군가는 집처럼 편안한 공간을, 누군가는 즐거운 게임을, 누군가는 분위기 좋은 카페를 만들어 공유하는 등

수많은 메타버스 이용자들이 제작한 본인들만의 세상을 공유하고 즐기면서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나 또한 세상을 만들고 친구들과 공유하며 즐겁게 보냈었다.

시간이 흘러 몇 가지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 외로워지는 공간

메타버스는 외로움을 증폭시키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인연은 그리 길게 이어지질 못했다.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오프라인으로 까지 이어지는 것 자체가 매우 드물었으며,

설령 오프라인에서 만나 친해졌더라도 현실적인 다양한 문제가 관계의 지속성을 무너뜨렸다.

메타버스에서의 만남은 '만났다'라고 하기보다는 '마주쳤다'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한 느낌이다.


그것은 마치 길가다가 마주친 사람과 친해져서, 어쩌다 보니 함께 술 한잔 하고 친구가 되었지만,

서로가 제 갈길 가기 바빠서 서먹해졌다가 결국 헤어지게 되는 그런 만남들이다.

술 한잔 하면서 농담을 나누고, 안부를 묻고, 걱정을 하고, 놀기도 하고 했지만 결국 남는 것은 없었다.

나는 원래 외로움에 익숙했었지만, 그렇게 한 번 외롭지 않은 것을 겪고 나니 그 상실이 크게 다가왔다.

짧은 만남과 이별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공간, 그것이 메타버스란 녀석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약간의 희망을 품은 체 계속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하고자 했는데

그 이유는 약 3년의 시간 동안 내 마음을 괴롭힌 한 사람을 그곳에서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1년을 들여 사랑했고, 1년을 들여 아파했으며, 1년을 들여 치유하고자 했던 첫사랑이었다.



- 랜선연애

내가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외로움에 슬퍼하고 있을 무렵 갑작스럽게 마주치게 된 한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신기한 외국인 친구 A 였지만, 시간이 지나 나와 그녀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였기에 이 사랑이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았다.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살고 있는 국가, 지역, 인종, 민족성, 가치관, 교육 수준, 도덕성 등 서로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를 매력적으로 인식했고, 서로가 끌렸기에 우리는 가까워졌다.

어쩌면 서로가 완전히 달랐기에 서로의 차이점이 매력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와의 이야기는 내가 온라인을 떠나는 것으로 강제로 막을 내렸다.

소설로 쓰자면 10권이 넘어가는 누아르 SF 판타지물을 쓸 수도 있는 엄청난 스토리이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의 삶을 축복하면서 이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애당초 배드 엔딩을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나름 훈훈한 엔딩을 맞이한 것 같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만남 또한 공허했기 때문이다.

이 만남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게임의 캐릭터로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의 이름 또한 가상의 이름으로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내 인생의 첫사랑을 환상의 존재로밖에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또한 매우 공포스럽고 충격적인 것이, 그녀가 그녀임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있다.

사실 알고 보니 남성이었고, 넷카마라고 불리는 여성을 가장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두렵다.

내 첫사랑이 사실 여장남자고, 그런 사람 때문에 약 3년을 마음고생했다는 게

내게는 정말 커다란 충격과 공포가 아닐 수 없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불우했던 학창 시절을 씹어먹는 내 인생의 가장 커다란 암흑기인 것이다.

세상도 참으로 무심하고 잔혹하지, 내 인생이 참으로 기구하다 못해 웬만한 소설보다 심각하다.



- 인생요약

여기서 잠깐 내 인생을 간략하게 소개해보자면,

나는 3남 중 막내로,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 막노동자인 박복한 가정불화 집안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성장했다.

다행히 고등학교까지는 졸업했으나, 학교 생활은 괴롭힘과 따돌림, 고통과 눈물로 점철되었고,

성적도 별로 좋지 않았으며, 친구도 있긴 했었는데 전부 배신을 당해 통수를 맞았고,

인간 혐오와 피해망상 그리고 극도의 우울증에 시달리며 더 고통을 받다가,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시도,

스타트업 VR 콘텐츠 기업(블랙기업)에서 열정 페이로 철야와 야근을 밥먹듯이 하며 구르다가,

다니던 회사가 대표 비리로 폐업하고, 크리스마스이브에 군 입대해서 전역까지 한 몸이 바로 이 몸이다.

아, 군대 영장 나오고 다음날 출근길 버스 라디오에서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온 건 정말이지 신의 한 수였다.

그런 현생이 고통으로 가득했던 내게 VR을 통한 메타버스 세상은 한줄기의 희망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요약하고 나니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아 있는지 역시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도 세상에 별다른 애착이 남아있지 않다. 그냥 오늘도 눈을 떴으니까 사는거지.



- 위험한 공간

아무튼 이야기를 계속해서 메타버스에 대한 또 다른 깨달음이 있었다면 그것은 '위험하다'였다.

메타버스가 위험한 이유는 그곳이 '너무나도'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의 초창기 시절을 알고 있는가?

인터넷이 생긴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에는 체계와 질서가 없어 온갖 부정한 것들이 산제 해있었다.

숭하고 폭력적이기 그지없는 비도덕적인 콘텐츠들이 그냥 아무렇게나 공유되고 방치되었던 시절이었다.

지금이야 그런 것들을 규제하고 단속하니 전부 음지로 숨어 들어가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메타버스 또한 그 인터넷의 연장선이 되겠다.

메타버스는 결국 네트워크 망을 이용해서 만든 가상공간인데,

기존의 2D인 페이지들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벗어나,

게임처럼 3D로 이루어져 형태를 이루게 된 지금 그곳은 또 하나의 디지털 신대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대륙인 만큼 그 땅에는 아무런 질서가 잡혀있지 않기에 온갖 좋지 못한 일들도 일어난다.

내가 지금껏 소문으로, 그리고 직접 겪은 것들만 해도 굉장히 충격과 공포를 가져오는 일들이 많다.

무질서의 땅에 사람이 모이는 만큼, 악의적이고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목적으로

타인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활개 치고 있었는데, 오프라인 모임을 이용한 성범죄 사건도 일어나는 등

비교적 속여 넘기기 쉬운 순진하기 그지없는 젊은 청년들에게 매우 위험한 공간인 것이다.


내가 직접 겪은 것들에는 성소수자들이 불순한 목적으로 만남을 주도한다던지,

마약을 하는 외국인과 쉽게 접촉할 수 있는 점이라던지 등이 있다.

심지어 그렇게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곳은 자유로운 만큼, 그 자유로움에 책임 또한 크게 따르는 공간인 것이다.



- 얻게된 것들

여러 가지로 많은 일들을 겪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고, 첫사랑도 해보고...

인간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모든 것을 잃게 되었지만,

기술적인 면에서는 나름 남는 것이 있기는 했다.


원래 직업이 게임 개발자인 나로서는 메타버스 활동으로 숙련된

3D 모델링 기술의 향상이 앞으로의 미래에 도움이 되어줄 것이다.


또한 인간관계에서의 다양한 상황들과 대처법 등, 대화의 기술들을 익힐 수 있었다.

낯가림과 경계가 심해 말도 제대로 못 했던 내가

처음 보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제일 크다.

명백한 사회 부적응자였던 내가 사회에 적응하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메타버스 상점과 커미션을 운영해보면서 나름 고객 서비스를 제공해본 경험도 도움이 될 것이다.

메타버스의 수요가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면 개인사업도 충분히 가능할 정도였지만 시장이 아직 작았다.

간신히 생활비만 벌어서 먹고사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1년 정도 했지만 고객 풀이 작고, 재방문율도 낮다. 개인사업 규모로는 아닌 것 같다.

가장 크게 기대했던 것은 수익의 자동화, 패시브 인컴의 창출이었으나 마찬가지로 수요가 적어서 그만뒀다.


한 달에 50만 원도 간신히 벌리니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내 시간은 그렇게 저렴하지 않다.

지금 내 스펙으로 게임 회사에 취업하면, 인재가 항상 부족한 이 업계에 경력 대비 유니콘인데

최소 연봉 3천 이상은 당연하게 받을 수 있는 나다.

새로운 시도랍시고 이곳저곳 열심히 삽질했으나, 결국 사회생활 초창기는 취업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이제 온라인의 삶에 대한 미련을 털어내고 다시 현생을 살아가고자 다짐하게 되었다.

지금은 단절된 경력을 메워줄 어떤 한 게임 개발 공모전에 참여한 상태이다.

이것과 기존에 내가 해온 것들을 합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취업을 하면 나름 모셔가리라 생각한다.


다음번에 취업하게 될 회사는 야근과 주말출근이 적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나의 인생이 없는 코딩 노예의 삶은 별로 살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런 것뿐이라 결국 나는 먹고살기 위해 나아가야만 한다.



- 결론

결국 신세한탄으로 끝난 것 같지만 내가 메타버스를 통해서 얻게 된 경험은 작지 않다.

그러나 결국 깨달음들만 남겨두고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가

다시 메타버스에 빠지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행복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메타버스에서의 인간관계는 짧은 만남과 이별만을 반복하는 공허한 관계들이다.

즉, 메타버스는 결코 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낙원이 아닌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이제서야 깨달아 환상의 집착에서 벗어나 다시 현생을 살러 가지만,

앞으로 더 발전하게 될 메타버스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공허를 겪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다.

결국 메타버스는 SF 소설에나 나올법한 디스토피아 세상에 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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