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st D Dec 06. 2022

평범함의 수직선 위에서

반짝임 보단 은은함을 위해


결혼 전 일이다. 


퇴근을 하고 연락이 온 친척 오빠를 만나기로 했는데 친척 오빠의 친구들을 같이 만나게 되었다. 

거절이 어려워 억지로 만나게 된 불편한 자리였다. 

그러다가 허락한 적 없는데 자기 친구 동생이면 내 동생이라며 말을 놨고 말을 놓으니 생각 필터라는 것도 사라진 것처럼 말들을 해댔다. 

그냥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인 게 얼굴에 나타났는지 술이 조금 오른듯한 친척 오빠 친구 한 명이 

'너는 평범하게 생겼으면서 왜 도도하게 구냐'라고 아무 말 대잔치를 했다.

만나기 싫었지만 친척 오빠의 체면을 생각해서 같이 만났고 처음 봐서 어색하니까 말을 안 한 거고 긴장해서 힘드니까 웃질 못했던 건데 어느새 나는 평범하게 생겼는데 꼴에 도도한 척하는 웃긴 애가 되어 있었다. 

평범하게 생겼다는 말에는 사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도도하면 안 되는 거지? 순전히 외모가 평범해서?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던 본인도 그다지 남을 평할 외모는 아니던데 예의 없는 말본새를 보니 더더욱 화가 났다.

'그쪽이 뭔데 내게 그런 소리를 하냐, 그쪽이나 주제 파악이나 잘하라' 쏘아붙이고서 날 말리던 친척 오빠를 뒤로하고 그 자리를 뛰쳐나왔다. 

어릴 땐 나도 예쁘고 싶었고 키도 크고 싶었고 성격도 늘 밝은 그런 특별한 내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난 나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평범한 키, 평범한 인상, 평범한 성적, 평범한 성격, 평범한 직장, 평범한 체격.

내가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면 과연 그렇게 말을 했을까?

표면적으로 평범 해 보이는 사람은 내면도 평범해야 하나?

내 내면은 오롯이 내가 만들어가는 나만의 고유영역인데, 그걸 표면적으로만 보고 이럴 것이다 단정 지으며 내 영역을 함부로 폄하하는 게 나는 너무나도 듣기 싫고 심기가 불편했었다.

그날 내 외면은 평범해 보이지만 내 내면은 평범하지 않다는 걸 피력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온 내가 좋았지만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은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아 보였다.


그 후 몇 번인가 크든 작든 비슷한 일을 겪었다.

자신의 내면은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남의 겉모습만 보고 남을 평가하거나 단정 짓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고 그런 사람들을 차단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다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평범하다며 날 쉽게 보는 사람들보다는 평범함을 편하게 받아주는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특별함의 반짝임보다는 평범함의 은은함으로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좋든 싫든 난 아마도 평범한 삶을 살아갈 것 같다.

흔하지만 때론 무엇보다 소중한 평범함.

평생을 그 수직선 위에서 오르내리며 살아갈 내가

심한 오르내림 없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그래프만을 그리며 수직 선위를 잘 나아갔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혼자 하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