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듯 혼자 아닌 혼자 같은 나
얼마 전 아점을 혼자 먹으며 티브이를 켜봤다.
채널을 돌리다가 '나 혼자 산다.'를 보게 되었는데 유명인이 나와 혼자 밥을 먹고 있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로 한참을 가만 앉아 있던 그녀는 가볍게 세수를 하고 배달어플을 켜 밥을 시켜 먹었다.
시킨 음식을 소파 테이블에 놓고 포장을 뜯으면서 작게 한숨을 쉬다가 핸드폰을 보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지 않은지 정말 살기 위해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서 없던 입맛이 더 씁쓸해져 티브이를 끄고 말았다.
그녀도 나도 분명 혼자는 아닌데 왜 혼자인 것처럼 느껴질까.
전에는 혼자 있고 싶다고 생각을 자주 했었다.
회사에 묶여 있다고 느꼈을 때나 일찍 한 결혼이 후회됐을 때, 아이들 육아가 너무 힘들었을 때 그런 생각을 자주 했었다.
혼자 지내게 되었을 때 느낄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한껏 느끼고 싶었지만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가고 남편이 회사를 가서 혼자 남은 그 시간에도 난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혼자만의 시간은 누리지 못했다.
내 의지가 아닌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집안일이나 회사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시간을 탄력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 떠안아야 했던 아이들 케어나 온갖 심부름들은 몸은 혼자 있지만 내 시간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묶여 있었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욱더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에 빠졌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만의 장소에서, 나 혼자, 내 시간을 다만 몇 시간이라도 보낼 수 있게 된 지금 느껴지는 혼자라는 개념은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혼자 지내는 걸 유지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만의 공간이라고 칭하는 작업실을 유지하기 위해 돈도 벌어야 하는데 매달 일정한 금액이 통장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서 계획을 세워 재테크는커녕 한 달 한 달 간신히 버티곤 한다.
아무도 나에게 지침 같은걸 내리거나 감시하지 않아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시간을 흘려보내버리기에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노력도 배로 해야 했다.
작업실에서 혼자 오래 지낼수록 점점 내 작업이 괜찮은 건지, 아닌 건지 알 수가 없어 찾아오는 현타와 우울감도 누군가와의 토닥임이나 조언 없이 내가 알아서 극복해야 했다.
썰물처럼 아침에 가족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빠져나가 버리면 집안일을 하고 혼자 밥을 먹고 작업실을 가고, 작업실에서 혼자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 되면 밀물처럼 모두들 집으로 돌아오는 일상.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걸 막을 수 없는 바다에서 난 해변가의 외로운 작은 바위섬 같은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
코로나 이전엔 가끔 서울도 가서 사람들과 모임도 하고 독립서점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화방을 가서 몇 시간씩 보내기도 했지만 이젠 말 그대로 오롯이 혼자 보내고 있다.
내가 알아서 보내야 하는 그 시간들이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힘들지 않았기 때문에 꽤 오랜 시간을 잘 지내며 보내왔지만 이제 나의 세상과의 소통 창구는 sns만 남은 어정쩡한 혼자가 되어 버렸다.
가족이 없는 게 아니라서 진짜 혼자라고 하기엔 앞뒤가 맞진 않지만 혼자 보내는 시간이 앞으로 점점 길어질 걸 생각해 보면 진짜 혼자가 되어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요즘엔 점점 혼자가 되어 가는 게 무서워지기도 한다.
누군가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함께 하고 싶어 지지만 그 뒤에 찾아올 공허감을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자꾸 들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할수록 혼자 있고 싶어 지고, 혼자 있을수록 누군가가 그리워지는 아이러니,
그리고 동전의 양면처럼 자유로움과 외로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혼자라는 말.
내 앞으로의 인생은 '혼자 얼마나 잘 살게 되는가'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