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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파파 Jun 22. 2024

오랜만에 <백범 일지>를 다시 읽었습니다

가슴 뜨거워지는 6월 새벽

책 아래 찍힌 구입일자 도장을 보니 스물한 살 때 구입하여 처음 읽었었나 봅니다. 당시 <백범 일지>는 옛 문체와 고어가 많아 읽는 속도가 더디게 나아갔고, 그래서 몰입과 공감이 어려워 솔직히 큰 감흥 없이 의무감으로 읽었던 기억입니다. 이 정도 나이가 됐다면 이 정도 책은 이미 읽어봤어야 하는 것 아닌가 했던 그런 의무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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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장에 보관해 두었던 <백범 일지>를 다시 읽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문득 책장을 보며 이 책을 발견하고는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요즘의 세상에 이런 책을 읽어야 할 필요를 마음속으로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다시 읽은 <백범 일지>는 뭐랄까요. 한 편의 흥미진진한 문학 소설 작품이자 때론 슬프고 때론 감동적인, 가슴 뜨거워지는 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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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일지>는 백범 김구 선생님의 두 아들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아들에게 훗날 남기고 싶은 기록, 하고 싶은 말을 모아놓았습니다. 글에는 조선 말기, 일제 치하 우리나라의 근현대 역사가 담겨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읽으며 나 자신이 이십 대였던  당시에는 이런 책을 왜 소화하지 못했을까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독서도 어느 정도 경험과 노하우가 쌓여야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고어와 옛 문체는 여전했지만 술술 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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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구절들이 인상 깊었고, 읽다가 잠시 책을 덮고 뭉클한 감정으로 생각에 잠기도록 하는 대목들이 많았는데요.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이봉창, 윤봉길 의사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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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창은 당시 ‘모던보이’였습니다. 일본인의 양자로 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술자리에서도 일본 노래를 부르며 호방하게 놀았다고 합니다. 그런 이봉창 의사는 가슴속에 살신성인의 의기를 품고 김구 선생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31년 동안 인생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하여 우리 독립사업에 헌신하고자 상해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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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도쿄 의사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떠나며 마지막 사진을 찍을 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영원한 쾌락을 향유코자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두 사람이 기쁜 얼굴로 사진을 찍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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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서나 봤던 이봉창 의사의 활짝 웃는 마지막 사진에 담긴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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훙커우 공원 거사를 위해 떠나던 윤봉길 의사와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제 시계는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백범) 선생님 시계는 불과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1시간밖에 더 소용없습니다.”

백범 선생은 윤봉길 의사의 시계를 받고, 차고 있던 시계를 주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자동차를 타기 직전까지도 가지고 있던 돈이 소용없다며 남은 돈을 백범 선생님 손에 쥐여주었습니다.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마지막 작별의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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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선생님은 해방 후 귀국하여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3 열사의 유골을 환국시켜 국내에서 장례를 진행하고, 용산 효창원에 장지를 구해 모셨다고 합니다. 장지의 제일 앞머리에는 안중근 의사의 유골을 봉안할 자리를 비워두었다고 합니다. 배문고 선수들 연습 때 함께 달리며 종종 효창운동장을 들리는데, 시간 내어 바로 옆 효창원에도 꼭 한 번 방문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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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 <나의 소원>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백범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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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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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본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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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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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일찍이 황해도에서 교육에 종사하였거니와 내가 교육에서 바라던 것이 이것이었다. 내 나이 이제 70이 넘었으니, 직접 국민교육에 종사할 시일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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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나의 아이,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드는 <백범 일지>였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틈날 때마다 읽어 오랜만에 다시 찾은 책을 완독 하였는데, 오늘 새벽 달리기를 마치고 ‘나의 소원’에 나온 글들을 두 번 세 번 다시 읽고 고쳐 읽었습니다. 뜨거운 6월 열기 속 달리기에 더해, 가슴 또한 뜨거워지는 새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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