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풀코스 완주 도전기 43
반백(살)을 넘어서 42.195km를 달렸다.
힘들어서 멈추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완주를 했다. 그런데, 스스로 궁금함이 일었다.
왜 달렸을까?
달리며 얻은 것, 달린 후에 얻은 것, 달리기 위해 얻은 것 등에 대해 그동안 종종 적었다. 그래도 아직 '왜?'라는 자문(自問)에 완전한 답을 얻지 못했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 누군가가 "왜 뛰어?"라고 물으면, "뛰어봐. 좋아."라는 식의 눌변으로 무마하기 일쑤다.
이런 우문에 명확한 답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흩어진 나의 기억들을 수소문해서 그 답의 근처에 가보고자 한다. 도대 체 나는 왜 달리고 있는지..
어릴 적, 국민(초등) 학교도 들어가기 전, 꾀죄죄한 내 모습으로 시작해 볼까. 그 시절 나의 활동 무대는 집 앞 골목길이었다. 어른 두 명이 간신이 어깨빵 없이 지나쳐갈 너비의 그 골목이 나와 또래 녀석들에게는 올림픽 스타디움 같은 공간이었다. 매일같이 던지고, 차고, 달리던 그곳에서 나의 운동세포가 조금씩 성장했을 것이다.
그런데, 특이했던 기억이 있다. 그 시절 나는 항상 '샌들'을 신고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엄마에게 물어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뭐든지 부족했던 그때는 그저 받아들이고 감사했던 것 같다. 그 샌들을 신고도 잘 달리고, 잘 차고, 잘 던지고 받았다. 종종 끈이 끊어지고, 그래서 실로 꿰매고 했던 기억도 있다. 그렇게 언덕 기슭을 따라 나있는 골목을 헤집고 다녔다. 열심히 놀았던 것 같다. 그때부터다. 나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던 것이..
아직도 고향집 어딘가 사진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국민학교 1학년 운동회에서 달리기 1등을 했었다. 공책을 선물로 받았고, 3살 어린 동생과 자랑스럽게 사진을 박았던 것 같다. 그 이후에도 종종 달리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통해 그때의 기억을 더듬곤 했다. 하지만, 1~2년 사이에 급격히 바뀐 것이 있다. 덩치가 커지고 살이 엄청나게 쪘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 사진을 보면 나도 깜짝 놀라곤 했다. 엄마에게 이유를 물어보면 그냥 덤덤히 말하셨다. "내가 잘 먹였지. 너도 잘 먹었고.."
얼마나 뚱뚱했냐고?
그걸 말로 어떻게 설명할까? 학교에서 실시했던 신체발달검사(?)에서 항상 나는 '마'를 기록했다. BMI지수가 가장 높다는 뜻이다. 그 시절 친구(?)들이 나를 까는 호칭은 대부분 돼지, 뚱보, 날으는 돈가스(?) 등이었다. '날랐다'는 표현은 덩치에 비해서 '잘 달렸다'는 것으로 기억된다.
5학년 때인가? 선생님이 단체 체벌로 운동장 달리기를 시켰다. 꼴찌로 달리던 나는 너무 힘들어서 몇 명의 녀석들에 편승해서 1바퀴를 덜 뛰고 마무리했다.
"중간에 그만둔 사람, 자진 신고해!"
그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야, 돼지! 너 다 안 뛰었잖아!! 나가!!!"
그 고함소리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정확히 기억한다. 그때 나의 모습을.. 지금 이렇게 달리는 것이 트라우마 같은 기억을 떨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내 어린 시절 달리기는 상처로 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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