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와 관련한 글을 쓰면서 뚱뚱하고 거대했던 옛날 모습을 자주 적었다. 그랬더니 주변에 있는 몇 사람이 "왜 그런 이야기를 자꾸 해?"라고 묻는다. 그리고, "도대체 얼마나 뚱뚱했던 거야?"라고 궁금해하기도 한다.
이걸 다시 돌려서 보여줄 수도 없고...
얼마나 비만했었는지는 그 시절 내 주변인들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기억들이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것이다.
체중계 올라가는 것은 엄두도 못 냈던 기억, 새 옷을 입을 때마다 '이게 맞을까?'라고 느낀 공포감, 뭘 먹고 있으면 누군가가 '또 먹네..'라고 흉보지 않을까라는 두려움들이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그 결과 학창 시절 이후 지속적으로 다양한 다이어트를 반복해 왔다. 굶는 것은 기본이고, 한 종류 음식만 먹기, 반찬만 먹기, 반만 먹기 등. 모든 방법이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다이어트를 중단하는 순간 다시 돌아왔다. 결국,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만이 답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먹는 것에 경계심이 있고, 간헐적 단식(16시간 금식)을 하며 어떻게든 가벼운 몸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트라우마다.
달리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소파나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과자봉지를 전전하는 모습을 스스로 경계한다. 또다시 살찐 모습을 돌아갈까 봐. 그런 생각이 들면 운동화를 신고 달리러 나선다.
달려서 기분이 좋은 것인지, 기분이 좋아서 달리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두 가지 모두 일 것이다. 살이 찌지 않기 위해 달렸고, 달리다 보니 달리는 것 자체가 좋아졌다. 달리는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도 생각이 든다.
누가 달리라고 시킨 적도 없고, 손을 잡아끌고 나가지도 않는다. 결국, 내면의 트라우마가 지금 나를 달리게 만든 것이다.
트라우마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그리 좋지 않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나는 새롭게 태어났다.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한 친구가 나를 보면서,
"내가 너를 봐온 중에 지금이 가장 날씬한 것 같다.."
정말.. 새롭다는 말이 적합한 순간이다.
아직도 50살이 넘어서 마라톤을 한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하지만, 달리는 순간이 행복하고 트라우마를 이긴 모습도 만족하니 달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 스스로를 극복하고 계속해서 달릴 것이다. 나만의 방향을 향해서 말이다.
트라우마를 이야기하다 보니, '경영의 신'으로 불린 故 마쓰시타 고노스케(파나소닉 초대 사장)의 이야기가 떠올라 남겨본다.
가난과 허약, 무학(無學)은 하늘이 내게 준 축복이다. 집안이 가난했기 때문에 열심히 일을 해야 했고, 몸이 허약했기 때문에 건강에 신경을 썼고, 배움이 없었기 때문에 학식이 있는 사람들의 충고를 경청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