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3초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 universal seoulite Nov 05. 2023

베짱이는 아무 잘못이 없다.

“내 꿈은 베짱이처럼 사는 거야.”     

“어머 얘, 애들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애들 앞에서는 그런 소리 하지 마.”    

 

친구는 다급히 나를 끌어다 앉히고는 이렇게 말했다.    

  

가끔 친구집에 가면 아이들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묻거나 친구가 아이들에게 내 일에 대해서 얘기해 달라고 했다. 내가 미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진 일이었다면 좋으련만 나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중이라고 차마 말할 순 없었다.      


정말로 나는 베짱이가 꿈이다. 걱정을 달고 사는 내게 근심 없이 먹고 노는 베짱이의 마인드가 더없이 부러웠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마치 번호표 뽑고 기다렸다는 듯 다음 걱정거리가 찾아왔다. 그리고는 또 그 걱정거리를 해결하기 위해서 마음속으로 백만 가지 시나리오를 쓰곤 하는 게 내 일상이었다. 그래서 하루라도 근심 없는 시간을 보내는 베짱이가 되어 보고 싶었다. 물론 돈 걱정 없이 먹고 노는 것도 강렬하게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문득 베짱이가 뭐가 잘못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읽었던 책 속의 베짱이는 나무 위에 누워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베짱이는 창작 활동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누워서 빈둥거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실은 베짱이의 뇌 속에서는 바깥 정보들을 흡수해서 창작을 하기 위한 노동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속 뇌과학적 설명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우리가 쉬고 있을 때, 멍 때릴 때, 혹은 자고 있을 때 실은 머릿속에 복잡하게 쌓이고 얽혀있는 정보들을 분류, 정리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정보를 새롭게 조합, 배열한다고 한다. 베짱이가 누워있었던 이유가 왠지 납득이 가는 포인트이다. 물리적 노동으로 생산성을 높여 부를 축적하는 시대는 끝났다. 개미보다는 베짱이 같은 인재가 더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지금 빈둥거리며 놀다가 추운 겨울을 준비 못한 베짱이가 얼어 죽었다는 결론은 너무 고전적인 것이 아닐까.    

 

나는 베짱이처럼 살고 싶다. 근심걱정은 내려놓고(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에서 완전히 뿌리 뽑고) 가끔은 드러누워 하늘도 보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어쩌면 그런 시간을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마음가짐조차도 축복이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죄를 짓는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을 내려놓고 허공의 시간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맑아지는 중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