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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K에게. 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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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원 Dec 31. 2021

k에게.

영원한 여름


그리고 이것은 내가 남겨진 사람이 되었을 때의 이야기.

영원한 것은 ‘영원’이라는 단어밖에 없기에 소중한 거다. 세상에 없는 것을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만큼 이나 자연스러운 일일 거란 얘기다.

그래도 만약 ‘영원’으로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소중한 사람의 죽음이다.

K의 죽음이 그랬다. K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대단한 녀석이고, 나는 K를 떠올릴 때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불안정해진다. K와의 인연은 14살 때부터 시작된다. 당시 부모님은 여태껏 본적 없이 치열하게 서로를 물어뜯고 미워했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약간의 삐딱선을 타려는 중이었고. 사립유치원,사립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 한 반에 24명씩 한 학년에 세 반. 대부분 있는 집 자식들이라 부모들의 높은 학구열, 학교의 넘치는 배려. 그런 것들 속에만 있다가 중학교를 가게 되니.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처음 듣는 욕설을 내뱉는 애. 담배 피우는 애. 남자 친구와 키스하는 애. 별의별 애들이 다 있어서 놀랐고, 그런 것들에 놀라는 사람이 나뿐이라는 사실에 더 놀랐던 것 같다.

놀라움도 잠시, 늦게 배운 도둑질이 날 새는 줄 모른다고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어른들이 하지 말라는 짓을 익혀 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지.

(또래보다 성장이 늦어 체구도 작고 조그마한 나에게 안 어울리는 모습이었을 거다. 대부분의 날라리들은 또래보다 한참 어른스러워서 대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말이다) 중요한 것은 가지 않아도 될 길에 서있는 나를 잡아준 친구가 K라는 것이다. 학교가 끝나면 거의 매일 K와 시간을 보냈다.

집에 일찍 들어가 봤자 온 집 안의 물건이 박살 나있고, 깨진 유리조각 이라든가 파편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일찍 마주할 뿐이었으니까. 어떤 날은 아빠가 엄마의 멱살을 잡고 베란다 난간에서 떨어뜨려 죽이려 한다던가. 또 어떤 날은 엄마가 식칼을 꺼내 들고 와 아빠를 찌르려고 하기 일쑤였다. 동생은 학교가 끝나면 집에 제일 먼저 달려가 주방에 있는 식칼을 전부 자신의 침대 안으로 숨기곤 했다. (이때 동생의 나이는 열두 살 밖에 안됐다.) 이웃들의 신고전화로 경찰들이 몇 번이나 집에 들어왔다. (솔직히 말이 이웃이지 그들은 나에게 이웃으로서 여겨질 만한 어떠한 행위도 한 적 없다) 집은 지옥이었다. 한때는 너무 사랑했던 두 남녀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지. 사탄이나 마귀 같은 못된 악령이 장난을 치는 걸까. 것도 아니면 천재지변의 일종일까. 가족의 불화는 가장 끔찍한 재앙이라고 생각했다.

탈출구가 필요한 나에게는 K의 존재가 위안이었다. K와는 같은 동네에 살았다. 나는 여중에 다녔고, K는 남녀공학에 다녔는데, 이성친구가 많았던 K에 비해 나의 이성 친구는 K 하나였다.

 

열여덟 살의 여름, K는 죽었다.

그날 역시 평소 그랬던 것처럼 2교시가 끝난 쉬는 시간에 학교를 땡땡이쳤다. 우리는 한강에서 컵라면을 먹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만나면 정말 마음이 편했지만 정작 깊숙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구질구질한 서로의 집안 이야기를 꺼내면 분위기만 진지해지고 상대를 위로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더 큰 비밀을 털어놓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K에게는 멋진 오토바이가 있었다. 몇 번 얻어 탄 적은 있지만, 스피드는 워낙 질색이라 나는 K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오토바이가 있다고 해서 K가 불량한 학생이라거나 학업에 충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K는 늘 나보다 매우 많이 성적이 좋았고,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하시는 홀어머니를 누구보다 끔찍이 아꼈다. 담배를 피운다거나 술을 마시지도 않았다. 오히려 ‘담배’나 ‘술’에 호기심을 보이는 쪽은 내 쪽이었고 자주 수업을 땡땡이치는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쪽이 K였다.

또래 집단을 봤을 때, 여자가 남자보다 정신연령이 높다고 하던데 K와 나의 경우는 반대였다. K는 또래 남학생들에 비해 어른스러웠다. 외계인의 존재를 믿는다는 사실을 빼면 공통 관심사를 찾기 힘들었다. (심지어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도 달랐다)

6월. 화창한 초여름의 날씨였다. 한강에 교복을 입은 사람은 우리 둘 뿐이었고, 나 때문에 수업 도중에 나왔다며 툴툴대다가, 또 잔소리를 퍼붓는 K의 얼굴이 정겨웠다.

그날은 꽤 오랫동안 한강을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정확히는 강물을 바라봤다기보다 강의 건너편 건물과 오렌지 빛깔을 지나 핑크색과 남색이 섞인 하늘이 될 때까지- 강의 반대편 풍경을 바라본 것이었다.

 

“소원이 뭐야?”

 

-소원? 글쎄....... 넌 뭔데?

 

“오토바이 타다가 죽는 거.”

 

-으웩. 소원이 죽는 거야?

 

“아니 그냥 죽는 거 말고 오토바이 타다가 죽는 거. 낼 수 있는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쾅하고 끝나는 거야. 멋지지?

 

-너무 끔찍할 것 같은데.

 

대충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갔다. 무언가 묻고 대답을 기다리는 일은 나의 역할이었는데. 그날따라 K가 내 역할을 자처했다. K를 만난 이래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들은 날이 아닐까 생각한다. K는 나로 하여금 K의 상황이나 생각을 짐작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본인 입을 통하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이 스스로 눈치채게끔 하는 고도의 스킬이었다. 그런데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져서. 이야기를 듣는 것에 신이 나서. 이유를 묻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 또는 오늘 왜 그래? 라던지. 그날따라 내가 K가 되고 K가 내가 된 것처럼 역할 바꾸기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K가 집까지 태워주겠다고 조금만 더 있다가 들어가라고 했지만. 오토바이는 타고 싶지 않았으므로 차가 끊기기 전에 들어가야 된다는 핑계를 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언제나-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버티고 버티던 건 나였고 얼른 집에 들어가라며 등 떠밀던 건 K였는데.

새벽에 침대에 누워 ‘너도 그만 들어가’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이 없었다.

나는 몰랐다.

‘아 그때 그게 마지막이었구나.’ 어디에도 마지막은 있는 건데 올 줄 몰랐던 건지 너무 빠르다고 생각했는지.

문자를 보낸 새벽, K는 죽었다. 메시지를 읽었는지 읽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나였기 때문에 같은 진술을 열 번도 더 말해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의 길을 달리다가 벼랑 아래로 떨어졌다고 했다. 아마 K의 오토바이가 낼 수 있는 최대속력으로 달리다가 그랬을 것이다. K는 왜 집에서 한참 떨어진 외곽의 길을 달려야 했을까. 누굴 만나러 가던 길이었나? 새벽에 누굴? 그럴 리 없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던 길이 아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기 전까지- 홀로 얼마나 오랫동안 한강의 반대편을 보며 앉아 있었을까.

성인이 되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장례식장은 몇 배나 건조하고 쓸쓸했다. 시끌벅적한 다른 장례식장과는 달리 고요했다.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으므로 ‘고요’ 또는 ‘적막’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더욱이 K는 외아들이었다.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으니. 장례식장을 찾는 조문객을 다 합쳐도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였다. 같은 반 친구나 담임 선생님 정도가 다였으므로. 해가지면 K의 곁에는 어머니 혼자였다. 이따금(나는 모르는) K의 친구들이- 환하게 웃고 있는 K의 얼굴 앞에서 울었다. 어떤 친구는 대성통곡을 했고, 어떤 친구는 훌쩍이기만 했다.

너무 이른 죽음이었다. 영정 사진 따위 준비해두지 않아서 열일곱 살의 소풍날, 친구의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인화한 모양이었다. 고작 1년 전 사진이지만 사진 속의 K는 애 띈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별로 슬프지 않았다. K의 존재가 그 누구보다 위안을 주는 존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눈물이 나지 않았다. K가 소원을 이룬 거라는 생각만 했다. 너는 역시 대단하다고. 소원이 이렇게 빨리 이루어져서 행운이라고.

K의 어머니는 수척하고 파리했다. 원래도 마른 체형이셨지만 곧 있으면 죽을 것처럼 보였고. 사인은 ‘아사’로 보일 것이다. 아마 진짜로 오래 살지 못하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토록 아끼고 애틋이 여긴 어머니를 혼자 남겨둘 생각을 하다니. K는 내가 알던 것보다 독하다고 생각했다. 착하고 어른스러운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 같은 건 생각해볼 엄두도 안 났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무게의 슬픔일 것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꽝꽝 얼어버린 얼음 같기도 해서 바로 스며들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내가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점점 더 슬펐다.

장례식장에서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이 울었다. (K가 해줬던) 계란을 넣은 간장밥을 먹을 때. 그날 한강에서 바라본 하늘과 비슷한 하늘을 보았을 때. K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 들려올 때. K와 닮은 외모의 남학생을 보았을 때.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도 없을 만큼 다양한 경우에 울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여름만 되면 K의 꿈을 꿨다. 꿈속에서 만나는 K는 그립지만 낯설었다. 나는 스무 살이 훌쩍 넘어 성인이 되었는데. K는 열여덟 살 모습 그대로였다.

K가 나오는 꿈은 언제나 영원한 여름. K와는 수많은 계절을 함께했지만 마지막 계절인 여름 안에서만 만날 수 있었다. 여름 안에 갇힌 K.

나 혼자만 어른인 채 친구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기괴하고 슬픈 느낌이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그 자리에 남겨진 그림은 마지막 모습이거나 마지막인 것을 알지 못했던 후회이거나 그리움이거나 슬픔이거나 분노. 어쩌면 그 모든 것을 전부 끌어안은 고통이다.

K의 죽음 이후에 사귄 나의 친구들은 K가 누군지 모른다. 나는 단 한 번도 입 밖에 K의 이름을 올려본 적이 없으며, 누군가에게 K의 죽음을 들려준 적도 없었다.

K보다 소중한 친구를 사귀면. 그날로 K는 꿈속에서도 볼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K를 먼저 잊은 쪽은 내 쪽이었다. 대학교 내내 수십 편의 독립영화를 찍어 대면서. 또 첫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K의 기일을 챙기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 이후로는 더더욱 단단히 나를 채찍질하며 살게 되었고. 나는 아직도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했는데. 뭐랄까. 죽고 싶을 때에도. 살고 싶을 때에도. K가 떠오르게 된다. K의 몫까지 살아내야 한다는 이상한 소명의식이 생겨났다고 해야 하나. 그것은 나 스스로 부여한 책임감이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마다 이깟 일로 움츠러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언제나 K의 몫까지 살아야 한다고-

K가 마지막으로 나를 만났을 때. 분명히 나에게 힌트를 줬었다. 조금만 더 있다가 가라고 까지 말해줬는데, 나는 K의 마지막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K가 주는 힌트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K 녀석, 죽기 전에는 큰 위안이고 안식처가 돼 주더니. 죽고 나서는 (슬프고 싶을 때 얼마든지 슬플 수 있는-) 방패막이이자 좋은 핑계가 되어주고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모두 개소리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아픔의 크기가 줄어들거나 고통을 덜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괜찮아지는 것도 아니고 무뎌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똑같이 아파하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그냥 그렇게 살게 되는 것뿐이다. 속으로만 아파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K의 죽음을 겪고 나서 알게 되었다.

 

슬픔은 여러 단계를 거쳐 찾아왔다. 처음은 눈물이고 다음은 분노였다. 혼자만 죽어버리다니. 이기적인 자식. 가장 예쁘고 좋은 나이에 죽어버려서. 그 뒤에 네가 어떻게 자랐는지 볼 수가 없잖아. 넌 영원히 예쁜 얼굴로 기억될 거잖아.

죽음은 간사하다.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 가장 소중하게 되고. 세상 가장 가슴 아프게 되고. 영원히 특별함으로 남는다. 그 때문에 6월은 슬픈 달이다.

나는 어쩌다가 청춘드라마의 에피소드 같고 어디서 본 것만 같은 흔한 이야기의 주인공 역에 발탁된 것일까. 그날 K의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갔더라면. K는 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이 한심하거나 쪽팔릴 때면 어김없이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보냈다. K의 기일을 잊어버린 날은 일 년 내내 장마였던 것처럼 비가 내렸다.

물론 운명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모든 일은 우연일 것이다. 나는 우연과 필연을 오가며 여름만 되면 K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너는 언제 까지고 늙지 않는 영원한 여름으로 남아있겠지.

올해 여름도 나는 너를 생각해.



‘거긴 지금 어떤 계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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