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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K에게.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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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원 Sep 13. 2022

죽음에 관한 기억(1)


죽음을 목격하는 일은 흔한 일이기도 하고 흔하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꽤 자주 봤을 테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살면서 눈앞의 죽음을 볼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나는 죽음을 목격한 적이 있다. 나이로는 일곱 살,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마음먹은 해에 눈앞에 펼쳐진 죽음을 목격했다. 죽음의 대상은 의외로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상관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면 나의 인생 어느 순간 만나게 되었을지도. 엄마와 아빠는 쇼윈도 부부 생활을 하면서도 곧잘 부부동반 모임에 참석했다. 나를 대할 때는 세상의 이목보다 너의 행복이 중요하다고 가르쳤으면서 정작 본인들은 누구보다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었다. 그날은 부부동반 모임에서 스키를 타러 간 날이었다. 어려서 스키를 탈 수 없었던 동생은 어딘가 맡겨둔 채 나와 엄마, 아빠, 아빠의 친구 부부들의 여행이었다. 강원도의 한 스키장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때문에 꼭두새벽부터 출발해야 해서 졸린 눈을 비비고 힘겹게 옷을 입던 게 생각난다. 스키장까지 가는 동안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깊고 달콤한 잠을 잤다. (지금까지도 가장 깊고 달콤한 잠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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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빠는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과 함께 스키를 대여하는 곳,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내가 서 있던 곳의 전방에는 내 키보다 더 큰 대형 앰프 두 개가 쌓아 올려져(입구의 왼쪽에도 똑같이 앰프가 있었으리라) 당시 유행하는 노래를 출력해내고 있었고- 앰프의 오른편에 현란하게 움직이는 바람 풍선이 있었다. 앰프에서 나오는 노래의 볼륨과 맞먹는 크기의 사람들 웅성거림이 더해져서- 주변이 굉장히 시끄러웠다. 나는 멍청히 서서 바람 풍선이 오르락내리락 팔다리가 접혔다 펴졌다 하는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은색 스키복을 입고 은색 빛 고글을 쓴 남자가 눈앞으로 걸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지만 온몸을 은색으로 휘감은 남자를 보면서 저 아저씨는 꼭 갈치 같다고 생각하면서 웃었다. 바로 그때였다. 죽음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갈치의 모양새를 떠올리며 피식하고 웃음 짓자마자 2단으로 쌓아 올린 앰프가 떨어졌다. 마침 남자는 앰프 앞을 지나고 있었다. 앰프가 그 사람의 위로 떨어졌고, 곧이어 바람 풍선이 맥 아리 없이 그 위를 덮었다.     

다들 놀라서 쳐다봤지만 그 아래- 사람이 깔려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앰프의 쿵 하는 소리와 바람 풍선이 무너져 내리는 것에 놀라서 쳐다볼 뿐. 일행도 없이 혼자 걸어가던 사내의 죽음은 관심 밖의 허무였다. 나는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었다. 바람 풍선이 덮여있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흰 눈을 적시는 피가 새어 나왔다. 피는 내 발 앞에 있는 눈까지 빠르게 퍼졌다. 하얀 눈 위에 인간의 피가 그토록 빠르게 번질 수 있다는 사실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상상만으로는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꽁꽁 얼어버린 물 결정과 방금까지 살아있던 사람의 따뜻한 피. 흰색과 붉은색은 이 세상의 모든 조합 중 가장 잔인한 색깔 배치다. (앰뷸런스가 흰색 바탕에 빨간색 글씨로 디자인된 것은 흰 눈 위의 피를 뜻하는 것 일 거라 생각하기까지 했다) 근처에 구급차가 세워져 있었는지, 구급대원들이 빠르게 나타나서 남자를 실어갔다. 들것 위에 축 처진 남자의 팔다리가 꼭 바람 빠진 풍선 인형 같다고 생각했다. 노래를 틀어주면 다시 금방이라도 살아날 것만 같은. 남자는 죽었을 것이다. 의사도 아닌데 죽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내가 본 것이 죽음이었다고. 그 사람을 보고 갈치에 비유하며 웃지 않았다면 남자는 살았을까? 그럴 리 없지만 죽음에 일조한 것이 ‘웅성대는 사람들 틈에 서 있던 나’였다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만들어낸 심리적 귀책사유였을 것이다. 내가 처음 목격한 죽음은 너무나 허무해서 입에 올릴 거리조차 되지 못했다. 남자는 스키를 잘 타는 사람이었을까? 혹시 스키를 한 번도 타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건 아닐까? 일행은 어디에 있던 걸까? 구급차가 떠나고 피로 얼룩진 눈 위에 금세 하얗고 빛나는 눈이 깔렸다. 모여 있던 사람들도 어느새 흩어져 제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는 모든 상황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후에 돌아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스키를 타는 내내 하얀 눈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가며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밟고 있는 하얀 눈 밑에도 붉은 눈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녁이 되어 리조트 로비에서 어른들이 모여 맥주를 마셨다. 아빠 친구가 그 남자의 죽음을 얘기했다. 예상대로 남자는 죽었다. 죽었다고 생각했으면서 정작 사실을 확인하고 나니 이상하리만큼 피곤이 몰려왔다. 나는 먼저 방으로 올라갔다. 스키장을 오면서 깊고 달콤한 잠을 자지 않았다면 풀썩 쓰러졌을 것이다. 두 발로 서있지 못할 정도로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스키를 타느라 온몸에 힘을 주어서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죽음은 ‘허무’ 그 자체였다. 한동안 나는 흰색과 붉은색 크레파스를 함께 색칠하지 않았고, 흰 티셔츠에 튄 파스타 소스라던가. 떡볶이 국물을 쳐다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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