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K장녀의 행복찾기
“이 사진을 보니 ‘환희’라는 낱말이 떠오릅니다. 당신에게 환희의 순간은 언제인가요?”
짝과 질문하고 답하는 유대인의 교육법인 하브루타 코칭 수업을 듣고 있었다. 그날은 ‘나무 틈 사이를 비집고 자라난 초록 싹’의 사진을 보고 짝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의 하부르(짝)가 그렇게 물었다. 훌륭한 질문에 감탄하면서 나의 환희의 순간을 빠르게 찾아보았다. 노오랗게 떠오른 장면을 얼른 붙잡아 짝에게 소개했다.
“음, 2년 전에 친정 부모님이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했어요. 마당에서 친정 식구들 모두 모여 노란 불빛 아래에서 밥을 먹거든요. 너무 소소한 일이지요? 하지만 가장 먼저, 선명하게 떠오른 저의 환희의 순간이에요.”
이 답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한 정답이다.
엄마는 예순이 넘으신 후로 딸들에게 자주 말씀하셨다.
“작은 밭이 있는 집으로 이사 가서, 작게 농사를 짓고 싶다.”
우리 형편을 뻔히 아는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작게’를 강조하셨다. 하지만 큰 딸인 나는 엄마의 작은 미소마저 옅어지도록 아주 독하게 말했다.
“엄마, 집 청소나 열심히 하세요! 지금 이 작은 아파트도 이렇게 정리가 안 되는데!”
부끄럽지만 그 당시 엄마와 나의 관계가 그랬다. 지저분한 집만큼이나 관계도 엉망이었다. 서로를 지독히 아끼면서도 이렇게 부딪칠 때는 누가 더 독한 말을 쏟아내나 내기하듯 그랬다.
우리 엄마는 살림에는 영 젬병이셨다. 깨끗하게 청소된 집에서 깔끔한 반찬을 내어주시는 엄마를 기대했지만, 나는 친정에 올 때마다 남편 눈치를 보며 집 청소부터 해야 했다. 명절날 친정에 오면 시가에 있을 때 보다 더 앉아있지 못할 정도였다. 엄마가 있는 친정이 그립다가도, 몸으로 만난 친정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우리 엄마는 다행히 못된 딸 말고 착한 딸도 있었다. 못된 언니 밑에 착한 막내딸이 있는 전래동화처럼, 우리 집의 착한 딸은 둘째였다. 엄마의 소원을 조용히 듣고 있던 동생은 우리에게 딱 맞는 집을 찾아냈다. 뒤늦게 정신 차린 큰딸을 포함, 세 딸은 돈도 모으고 마음도 모아 엄마가 말한 작은 밭이 있는 집을 샀다.
마당도 텃밭도 있는 예쁜 집으로 이사하고 나서는 정말 마법 같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
“자고 일어나면 여기가 천국인지 어디인지 모르겠다.”
엄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사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이 좋은 집, 이 넓은 집에서 건강하게 삽시다.”
아빠가 살아본 집 중 가장 넓은 집에서, 아빠는 최고의 감사 표현을 하셨다.
우리 세 딸도 엄마 아빠 못지않게 행복해졌다. 집에 오면 여전히 앉아있을 새가 없는데도 웃음이 난다. 집이 여전히 말끔하지 않아도 화가 나지 않는다. 집수리, 잡초 뽑기, 마당 정리도 재미있는 놀이 같다. 힘이 들지만 할 만하고, 힘이 없다가도 힘이 생긴다.
저녁에는 돼지고기를 구워, 평상을 식탁 삼아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숯불 위 익어가는 고기 냄새는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노라.’ 멀리멀리 소문을 낸다. 삼천포의 유명한 실안 낙조가 붉은 미모를 뽐내고, 우리는 노란 불빛 아래 서로를 보드랍게 바라본다. 내가 손꼽았던 그 환희의 순간이다.
“엄마, 우리 이 집에 이사 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주택으로 이사 가고 싶어 하셨던 엄마를 타박했던 큰딸이 요즘 자주 하는 말이다.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가 믿기지 않아서 나는 볼을 꼬집고 뺨을 마구 때려보듯이 이 말을 하고 또 한다. 같은 질문이 지겹지도 않은지 엄마는 ‘꿈만 같다’는 대답을 하고 또 하신다. 이럴 때도 참 쿵짝이 잘 맞는 모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신 엄마는 내가 일어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같이 밭에 나가보자 하셨다. 엄마는 작물 하나하나 만져주고 흙을 토닥거리셨다.
“이건 콩이고 이건 열무, 옥수수, 고추, 방울토마토야.”
싱그럽게 자라고 있는 작물들 옆에 더 환하게 웃고 있는 우리 엄마가 있다.
엄마, 엄마 말대로 마당 있는 집 오니까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