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가 펼쳐졌다
10년 가까이 남편 직장문제로 주말부부로 지내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주변에서 사람들이 늘 하는 말이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남편과 떨어져 지내니 얼마나 좋겠냐며 다들 부러워한다고 한다.
몰랐다. 친구가 그 얘기를 할 때 그게 그토록 부러운 일이라는 것을....
내가 아는 다른 지인도 남편분과 떨어져 수년째 사시는데 역시 아들이 셋인 그분은 가끔 남편이 필요할 때 없어서 아쉽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남편이 돌아오는 주말만 기다린다고 하셨는데 갑자기 나는 궁금해졌다.
내가 남편과 떨어져 산다면?
그런데 남편이 진짜로 집을 나갔다.
그것도 방에 놓겠다고 새 매트리스까지 장만해서 장롱의 옷가지들을 싹 챙겨서 나갔다. 그가 새로 거처할 방에는 안마의자, 책상, 책장에 새로 산 매트리스, 장롱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다. 50대 초반의 꽃중년 남자를 맞이하는 따뜻한 거처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집이 무척 춥다는 것이다. 난방을 통 안 해서 한기가 느껴진다는 그 집은 바로..... 어머님 집이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사시는 시어머님이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후 2년 가까이 밤마다 잠을 못 이루셨다고 한다. 자식들 힘들까 봐 내색을 안 하셨는데, 밤마다 홀로 남은 외로움으로 인해 잠을 못 이루신 어머님이 많이 힘들어하셔서 병원을 모시고 갔다. 의사 선생님은 별말 없이 신경안정제를 처방해 주셨다.
가끔 약을 드시는 어머님을 차마 홀로 남겨둘 수가 없어서 남편이 어머님 집에 들어가기로 했다.
어머님 집의 방 한 칸에 자기만의 방을 꾸몄는데 문제는 어머님이 나름 생활비를 아끼시느라 겨울에도 통 난방을 틀지 않으셔서 잘 때 한기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그는 외롭고 무서워 잠 못 이루시는 어머님의 곁을 지켜야만 한다.
처음에는 순전히 이렇게 어머님을 위한 효심으로 합의를 본 일이다. 그런데 막상 그가 짐을 챙겨서 주말에 집을 떠나니....
신세계가 따로 없다. 이렇게 편할 수가 있나 싶다.
우선 퇴근 시간 맞춰 저녁식사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 다음 날 출근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드는 남편을 배려하느라 밤만 되면 집안에서 숨죽이며 돌아다니거나 말하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우리 애들은 한밤중에야 공부를 마치고 들어오는데 아빠가 나간 뒤로 12시가 넘도록 치킨 시켜 먹고, 수다 떠는 자유를 만끽한다.
저녁 늦게 TV 왕왕 틀어놓고 소파에 노곤하게 누워 있는 남편이 없으니 집안이 조용하다. 심심하면 냉장고를 뒤적거리며 뭐 먹을 거 없냐고 입맛 다시는 사람이 없으니 냉장고에 남편을 위한 주전부리를 채워 놓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 하루 회사에서 이런 저런 일 있었노라 미주알고주알 늘어놓고 수다 떠는 사람이 없으니 내 마음대로 수업 없는 날은 저녁 시간을 조용히 보낼 수 있다.
주중에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주말부부들은 이 좋은 장점들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던 거구나.
내친김에 친구에게 전화 걸어 주말부부로 지내는 게 어떻냐 물으니 친구왈
" 야, 한 10년 이렇게 사니까 이제는 오는 날이 귀찮다. 한 침대에서 자니 잔 것 같지도 않게 피곤하고... 요새는 떨어져 있는 게 낫다니까... 너도 이제 그 맛을 알았구나."
친구와 나는 한참을 비밀스럽게 키득거리며, 서로 잘됐다고 진심으로 격려해 줬다.
아, 좀 떨어져 살아보는 것도 괜찮은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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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요약: 여보,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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