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이 나이 40이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얼굴에 책임질 나이가 진작에 지난 50대 초반에 들어서니 남편과 나는 여기저기 노화의 징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30대는 6년 동안 내리 아들 셋을 낳느라,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살았는데 40대가 넘어가면서 차츰 정신이 들어보니, 아이들이 훌쩍 큰 만큼 그나 나나 피할 수 없는 세월의 직격탄을 맞았다.
직장 초년생 시절,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나의 마음을 가장 끌었던 건 그의 풍성한 머리숱이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모두 대머리 내력이 있는 집인지라, 장차 태어날 2세를 위해서라도 나는 모발이 풍성한 사람을 나름 이상형으로 설정했다.
그때 내 눈앞에 나타난 남편은 모발 숱 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대학 졸업 전에 이미 대기업 S 사에 채용되어 승승장구했던 남편은 직장 초년생 특유의 싱그러움과 패기를 간직한 의욕적인 젊은 이었다. 오죽하면 결혼식 날, 사람들이
두 살 연상의 남편을 나보다 연하로 보았을까. 그만치 그는 서글서글한 인상의 밝고 환한 동안 얼굴이었다.
그런데 함께 살아온 지 이제 24년 차 접어드니 예전 그의 동안은 온데간데없고, 이제 이마의 주름, 꺼져가는 체력, 듬성듬성한 머리숱을 걱정하는 평범한 중년남이 되었다. 가끔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잘못해서 그런가 양심의 가책도 느끼곤 했다. 세 아들을 키우면서 일까지 병행하느라 다른 집들같이 남편을 살갑게 챙겨 주지 못한 데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다. 그러나 거울을 보면 나도 남편 못지않게 뺨이 꺼지고, 잔주름이 늘고, 모발이 줄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세월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나 보다.
40대 한창 시절에 그간 어려움 없이 살았던 남편은 인생의 가장 큰 역경을 만났었다. 대기업을 명퇴하고 받은 명퇴금을 주식으로 날리고, 수년간 심하게 맘고생을 앓았다. 그때의 후유증일까.
그 이후로 그토록 풍성했던 남편의 모발이 눈에 띄게 부쩍 줄었다. 잠시 힘들어서 그런 거려니 하면서 언젠가 돌아올 줄 알았던 머리숱은 이후에도 여전하더니 급기야 50이 넘어 직장의 중책을 맡으면서 더 심하게 줄어들었다. 결국 작년에 큰 아들이 수험 생활을 하는 동안 아들의 모습이 못마땅해 가끔 불화를 겪고 마음고생을 더하더니 모발이 눈에 띄게 부쩍 듬성해졌다.
나는 속으로 아들이 대학만 들어가면 남편을 위해 모발이식 수술을 해주리라 맘먹고, 나름 유명한 병원 등을 알아보며 주변 경험자들의 조언도 구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들은 수시에 붙은 대학을 가지 않고 굳이 재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누가 자식의 고집을 이길 수 있겠나. 결국, 우리는 아들의 손을 들어줘서 1년 더 수험생활을 하도록 허락했다.
큰 애의 재수비용이 추가되면서 아쉽게도 남편의 모발이식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이제 고 2인 둘째가 바로 큰 애 다음으로 바로 수험생 생활을 해야 되기에 언제쯤 남편의 모발이식을 할 수 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의 온갖 학원비, 책값,옷값, 식비,치아 교정비 등은 금액을 상관 않고 아낌없이 쓰면서 정작 자신을 위한 돈에는 늘 움츠러들었던 남편.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듬성듬성해진 머리숱을 향해 한숨만 내쉬는 남편의 모습이 짠하지만 어쩌겠나.
부모 된 이상 자식 앞가림은 도와줘야 되지 않겠나.
가끔 한숨을 내쉬는 그의 모습이 '청춘을 돌려다오..' 하는 아쉬운 비명으로 들린다.
남편의 청춘을 돌려주고 싶다. 매일 가족을 위해 수십 년 간 새벽 별을 보면서 출근해서 하루 종일 전쟁 같은 일상을 견디고 밤이슬을 맞아 눅눅해진 어깨로 들어오는 그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는 선물 하나쯤 해주고 싶다.
절반이라도 돌려받은 청춘으로 그가 예전의 아이처럼 환한 미소로 웃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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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아들아, 아버지 모발 이식하도록 이번에는 꼭 대학 들어가라. 그게 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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