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바람피우나 봐

남편의 변명

by 그대로 동행

간혹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 집과 달리 남자들이 여자들을 왕비님처럼 떠받들고 사는 집을 볼 수 있다. 직장에서 퇴근한 뒤에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은 물론, 주말이면 청소, 설거지 등을 해준다고 한다. 차를 탈 때 아내를 위해서 문을 열어 주거나 외식할 때는 아내가 좋아하는 식당을 가는 건 물론이고, 아내가 아플 때는 반찬까지 해준다는 남편들을 내 눈으로 목격도 하고, 듣기도 했다.


하루는 주말을 맞아 어머님 집에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하는 남편에게 그 친절한 남편의 얘기를 해줬다. 그러면서 아내에게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예쁘다'는 서비스 멘트도 해준다면서 부러워하니까 무심한 표정으로 먹을 것에만 집중하던 남편 왈

" 그 남자 바람피우나 봐. 그렇지 않고서야 부인에게 왜 그렇게 잘해줘?"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얘기를 듣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길 기대했던 나의 바람은 여지없이 깨지고 눈앞에서 남편은 여전히 우걱우걱 먹는 데에 집중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남편의 말도 맞는 듯했다.


내 경험상 아내에게 잘해준다고 큰소리치는 남자들은 거의가 오피스 와이프를 두고 있거나,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곤 했다. (물론 모두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일부 그런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남편의 그 모습이 좀 괘씸하다.

빈 말로라도 맞장구 쳐주면서 '나도 잘해줄게' 하면 어디 덧나나.


속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남편에게

"세상에 잘해주는 남편들은 다 바람피우는 건가? 그러면 우리 교회 00 집사님도 바람피우는 거야? 그렇게 잘해주는데 당신이 좀 본받으면 안 돼?"라고 말하는데 남편이 속으로만 끄응하는 소리가 표정에서 느껴졌다.

다음 날 예배 후 화기애애하게 교회 사람들과 식사를 하는데 남편이 마침 아내에게 잘해 주시는 00 집사님 옆에 앉아서 얘기하다가 급 질문을 꺼낸다.

"00 집사님, 바람도 안 피우면서 왜 이렇게 아내에게 잘해주세요? 그러시니까 제가 피곤하잖아요. 설마 뒤로 바람피우시는 건 아니죠?"

평상시 과묵한 집사님은 예의 허허 웃음을 지으면서 "제가 뭐 잘해주는 거 있나요? 그냥 남들같이 사는 거죠."라고 말한다.

부인 집사님은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 맞아요. 우리 남편이 뭘 그렇게 잘해준다고 그래요? 그 정도는 다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그 정도도 안 하는 사람 많습니다.'라고 나는 속으로만 되뇌며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면서 남편을 보니 벌써 흰머리가 눈에 띄고, 전에 비해 부쩍 듬성듬성해진 머리숱이 짠하다.


나는 다시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가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해서 지옥 같은 일터에서 가족들을 생각하며 버티는 그 수고만으로도 감사하자고.

비록 집안일, 요리를 전혀 도와주지 않아도 그의 오랜 시간 동안의 묵묵한 헌신이 있기에 우리 가족들이 각자의 꿈을 향해 이렇게 안온하게 살 수 있지 않은가.


이번 주말에는 모처럼 옷정리, 이불정리를 하자고 하니 남편이 또 끄응하는 신음소리를 낸다.

"나, 탁구 쳐야 하는데... 일찍 끝내줘야 해."

어이구. 또 그놈의 탁구 타령.

좀 오래된 일이지만 코로나로 내가 격리 됐을 때 나와 아이들을 거둬 먹인 적도 있음을 기억하자.


그가 건강하게 우리 곁의 든든한 가장으로 바람 피우지 않고, 이렇게 머물러 주니 충분하다고 되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