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를 매일 치면서 남편에게 생긴 주요한 변화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한 자부심을 회복해 간다는 것이다.
남편은 건강 검진 할 때마다 지방간, 고지혈증 등의 결과를 매년 받는 사람이다. 물론 올 해도 여지없이
그 결과가 나왔지만 다행히 수치가 적어졌다며 그나마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면서 요새 자신의 뱃살이 많이 슬림해지고 체격도 더 다부져졌다고 자랑하고 다닌다. 세뇌를 당해서인지 확실히 매일 운동하더니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부작용이 나오고 있으니....
바로 착각 병이다.
자신의 몸이 조금 슬림해졌다는 말을 인정해 주자 남편의 호들갑이 시작돼서, 집에 올 때마다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를 측정하면서 혼자 웃다 시무룩했다를 반복한다. 급기야 지난 주말에는 체중계를 들고 집구석구석을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안방에서 체중계를 들고 나와 거실로 부엌으로 이동하며 열심히 몸무게를 재는 모습이 의아해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남편 왈
"응, 안방 바닥이 좀 기울어져서 몸무게가 정확히 안 나오는 것 같아. 내 몸무게가 그럴 리가 없어. 그래서 체중계를 옮겨서 재면 나을까 해서 다시 재보는 거야."
이런.... 나는 남편 앞에서 그야말로 먹던 물을 분수처럼 뿜으며 거침없이 웃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참았다. 멀쩡한 안방바닥이 기울었다고?
본인의 몸무게가 여전한 건 아니고?
이제는 별 핑계를 다 대는구나 생각이 들어 애들을 불러서 아빠 몸무게 좀 측정해 보라 했다.
아이들은 별 관심도 없다는 듯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와서 "아빠, 이 체중계는 정상이에요. 아빠 몸무게가 전에 비해 변하지 않은 것뿐이에요."라고 쏘아붙이고 방으로 휑하니 들어간다.
홀로 남은 남편은 계속 몸무게를 재느라 분주하나 여전히 숫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 그의 몸무게는 불과 0.5Kg 빠졌다.
그러나 남편은 그 숫자를 인정할 수가 없다. 그렇게 운동하고 뱃살이 들어갔으면 최소한 2킬로는 빠져야 된다는 게 자신의 지론이다. 그러나 어쩌랴?
체중계가 그렇다는데.....
이번에는 거울을 들여다보더니 그나마 위로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내게 묻는다.
"그래. 무게는 그렇다 치고... 그래도 내 몸매가 좀 미끈해진 것 같지 않아?"
뭐래? 미끈? 누가?
머릿속을 휘감는 온갖 의문사들을 구겨 놓고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뭐가 미끈? 어디가? 미끈한 사람 다 죽었다.'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응. 미끈해. 인어공주도 울고 가겠다. 당신 몸매 좋아졌네."라고 말해 준다.
(남편 안 닮은 사람)
그제야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남편은 체중계를 제자리에 갖다 놓고 룰루랄라 탁구채를 들고나간다.
그래, 당신만 행복하면 되지, 착각 좀 하면 어때?
나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데 몸무게에 저리 신경 쓰는 걸 보니 머잖아 지방간 수치도 바닥으로 내려갈까 내심 기대하면서...
그런데 거울을 보니 남편이 문제가 아니다. 축 처진 뱃살이 바지 사이로 올록볼록 엠보싱처럼 나오고, 올봄에도 바지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허벅지, 종아리가 튼실해진 내가 진짜 문제이다.
밖에 바람도 살랑이는데 작년 옷이 또 적어지면 어쩌나.... 가슴이 덜컹한다.
더 늦기 전에 나야말로 운동을 하러 나가야겠다.
남편의 착각 덕에 내 모습도 돌아보니....
그의 착각은 무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