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나의 남편 이야기

탁구는 나의 힘

by 그대로 동행

내가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 남편의 첫 번째 부탁은

" 절대, 내 얘기 가지고 글 쓰지 말아라."였다.


독서, 글과는 담쌓고 지내는 남편인지라 관심을 전혀 안 가질 줄 알았는데 유독 자신을 소재로 글을 쓸까 민감해했다. 나는 호기롭게 그런 남편에게

" 염려 마. 당신 얘기로 글 안 써. 쓸 것도 없어."라고 했지만 뒤에서 이렇게 그에 대한 글을 쓴다.


브런치에 내가 글을 쓴다는 걸 알면서 구독은 하지만 남편은 나의 글을 잘 보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에게 하는 말 "내가 그렇게 탁구 좋아해도 당신에게 탁구 같이 치자고 말 안 하잖아. 그러니까 나에게도 브런치 글 강제로 읽으라고 하지 마. "


그가 나의 글을 좀처럼 읽지 않는다는 걸 안 뒤로 나는 그와의 약속을 깬다.


그의 마음도 이해는 한다. 우리 남편은 독서도, 글쓰기도 싫어한다. 대신 몸으로 움직이고 떠드는 걸 좋아하는 외향형, 유쾌남 스타일이다.

그래서 지금 여기 그의 흔적을 내가 대신 남긴다.

(남편이 응원했던 신유빈 선수, 우리 큰애와 동갑이고 그녀의 고교 은사가 남편 탁구 친구란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그는 탁구와 사랑에 빠졌다. 주말이면 애들 아침상을 차려주고 종적을 감춘다. 탁구장에서 수 시간씩 열심히 라켓을 흔드는 그를 막내아들을 시켜서 몇 번 호출한 적도 있다.


퇴근해서도 그 사랑은 멈출 줄을 모른다.

안방에서 밤늦은 시간 웅웅 소리가 나서 살포시 문을 열어 보면 침대에 누워 유튜브로 뚫어질 듯이 탁구 경기를 보고 있다. 나에게도 보낸 적이 없던 불꽃같은 눈길로 화면을 뚫어지게 응시하느라 곁에 누가 가도 눈치를 못 챈다.


심지어 백신 후유증으로 아픈 날도 탁구를 치고 왔다. 운동을 해야 몸이 풀린다나?

그리고 회사를 못 나갈 정도로 더 앓아누웠다.


코로나로 격리 끝나고 남편이 제일 먼저 달려간 곳도 탁구장이었다. 격리 기간 내내 죽는소리를 하면서 안방에 갇혀있던 남편은 마치 새처럼 가볍게 날아 언제 아팠냐는 듯 행복한 표정으로 탁구장에 갔다.


한 때는 그의 지독한 사랑이 이해되지 않아 잔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 5-6년 지나니 이제 그가 주말에 나가 주는 게 차라리 반갑다. 집에서 늘어놓지도 않고 밥 달라거나 잔소리도 하지 않으니 좋다.


썩 많이 티 나지는 않지만 살도 좀 빠진 것 같다. 운동의 효과인지 소화기능이 떨어져 먹는 게 줄어서인지는 모르겠다. 지난주에는 동네 탁구대회에서 자신의 팀이 우승했다며 부상으로 타 온 마스크, 휴지 등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나는 살림살이 장만한 게 어디냐고 남편의 사랑을 한껏 칭찬해줬다.


남편의 탁구 사랑이 오래가는 것을 보니 이제 좀 외로운가 보다. 아들 셋은 사춘기라고 아빠랑 눈도 안 마주치고, 나는 바쁘다고 집에서도 동동 거린다. 회사에서는 MZ세대와 586세대 사이에 끼여 눈치 보며 일하느라 애쓴다.


아직 나의 체력적 한계로 그의 사랑을 함께 나눠주지 못하지만 다음에는 탁구 잘하라고 음료수라도 운동 전에 챙겨줘야겠다.


남편이 브런치 글들을 안 보니 나의 창작의 자유가 보장돼서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그와의 약속을 어겨 좀 미안하지만 뭔가 후련하다.


갱년기가 오는지 부쩍 피곤해하고, 감상적으로 변해가는 그를 위해 이번 사랑이 오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