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그녀와 바람났다
골때녀와 사랑에 빠진 남자
남편이 그녀와 바람났다. 그것도 아주 심각하게 정기적인 만남을 갖고 있다.
매주 수요일 밤마다 남편은 아무리 피곤해도 어김없이 거실 한 켠의 TV 앞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얼마나 심각하냐 하면 소파에 앉아서 보면 멀리서 보인다고 (넓지도 않은 거실에서 ) TV 앞으로 의자를 바짝 당겨 앉아 진지한 표정으로 TV를 시청할 정도이다.
남편이 TV를 시청하는 표정은 흡사 국가 대표전 결승이나 메달을 두고 다투는 올림픽 경기를 볼 때의 표정이다.
그 좋아하는 탁구도 수요일 저녁에는 절대 치지 않는다.
오직 TV 앞에 의자를 끌어다가 엄숙하게 양팔을 팔짱 끼고 앉아있을 따름이다.
남편이 바람난 그 시간은 내가 아무리 불러도 , 막내아들이 곁에서 떠들어도 눈길을 주거나 요동조차 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막내아들만 보면 게임 좀 그만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남편이 그 시간은 본인의 휴대폰을 아들에게 넘겨주며 조용히 게임을 하라고 방조한다.
골 때리는 그녀들
내가 보기에는 별 어줍잖은 실력의 여자들이 떼로 나와서 축구를 한다고 괴성을 지르며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평범한 예능 프로에 불과하다.
그런데 우리 남편은 그 프로를 심각한 표정으로 보면서 혼자 응원하고, 안타까움의 한숨을 날리고, 어떤 날은 져서 분하다고 씩씩거린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건 알지만 그건 가끔씩 축구 경기나 관람할 정도이며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때 한시적으로 경기를 보는 정도이다. 그런 남편이 골 때리는 그녀들은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보는 열혈 시청자가 되었다.
남편이 그녀들을 그리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게 궁금해서 그 프로를 왜 그리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축구를 전혀 못할 것 같던 그녀들이 매일 치열하게 연습해서 성장해 가는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함께 성장하고 팀워크를 나누는 모습이 좋단다.
남편의 말을 듣고서야 고개가 끄덕여졌다.
매일의 고단한 직장생활, 치열한 경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축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줌마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어리숙한 아가씨들과의 팀워크를 보면서 남편은 삶의 고단함을 달래나보다.
나는 남편의 바람을 용서해 주기로 했다.
가끔은 나도 그녀들을 같이 만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