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프다

밥벌이의 지겨움

by 그대로 동행

홀로 계셔서 외로운 어머님 곁을 지키느라 집을 나가 시댁으로 들어간 남편이 덜컥 아프다는 연락이 왔다.

통 소화를 못하고, 안색도 안 좋아져서 어머님의 걱정이 태산 같다.


급기야 어머님은 며느리인 나에게 전화를 주셨다.

"애, 00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 저렇게 아프다가 어찌 될까 내가 겁난다. 너라도 좀 설득해서 병원에 좀 데리고 가봐라."

여간해서 며느리에게 무얼 부탁하거나 전화를 안 주시는 분인데 팔순이 넘은 노모가 오죽 걱정이 되면 나에게 전화까지 하셨을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남편은

"응. 속이 좀 안 좋아서 회사 근처 병원에서 타온 약을 먹고 있어. 요새 통 기력이 없네."

힘없는 목소리로 웬만하면 늘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남편이 낮게 가라 앉은 목소리로 말한다.


남편이 이렇게 말할 때는 분명 어딘가 단단히 아픈 것이다. 수년 전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으로 밤잠을 설치던 남편은 큰맘 먹고 대형병원에 가서 심장 관련 각종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결과는 이상 무.


답답한 마음에 여기저기 원인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후에야 혈관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내서 지금까지 수 년째 약을 복용하고 있다. 고지혈증, 지방간, 만성 위염에 부정맥까지 나날이 남편이 먹는 약은 늘어만 간다.


그런 남편의 병력을 익히 알기에 이번에도 안심이 되지 않아 나는 계속 큰 병원을 가자고 설득했다.

결국 남편은 주말에 검진 예약을 해서 나와 토요일 날 가기로 했다. 그러나 검진은 검진이고 여전히 소화를 못하고 힘들어하는 남편. 그 와중에도 희한하게 탁구는 매일 치러 다닌다. 몸도 아프다면서 웬 운동이냐고 핀잔을 주니 탁구라도 해야 스트레스를 날리고 체력도 유지된단다.


무엇이 남편을 그토록 아프게 하는 걸까?

최근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는 남편도 회사가 직격타를 맞아 힘들어했다. 분양은 물론이고 건설 수주가 안되고 수주된 프로젝트도 그간 원가가 크게 상승해 진행을 못한다고 한다.

회사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남편은 잠 못 이르고 힘겨워했다.

세 아들과 아내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그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까? 남자 나이 50이 넘어가면 한국의 평균 샐러리맨의 선택지는 이전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좁아진다. 아무리 이전의 경력이 화려해도 50이 넘어간 남자들을 받아줄 직장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안팎으로 녹록지 않은 상황으로 인해 어깨가 축 처져있다.


이제 막 재수를 시작한 큰아들, 한창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고교생 둘째 아들, 김정은도 떨게 한다는 중2에 들어선 막내아들, 게다가 갱년기 핑계로 신경이 한창 예민해진 아내까지.... 책임질 가족들은 많은데 마땅히 털어놓지는 못하고 혼자서 끙끙거려 왔다. 급기야, 그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하고 몸이 보내는 직격타를 맞은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그리 아프면 어머님 집에서 걱정 끼치지 말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집에서 내가 음식을 맞춰서 해줄테니, 아파도 여기서 아프라고 했다.

그러나 남편의 대답은 단호하다.

"우리 엄마는 외로워서 내가 필요해. 나는 여기서 지낼 거야."

아, 이런 걸 고양이 쥐 생각한다고 하는 것이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어머님은 아들이 아파서 저렇게 신경 쓰시는데... 본인은 극구 곁에 머물겠다고 하니 나로서도 할 말이 없다.


토요일, 이른 새벽 잠에서 깨어 전날 밤까지 대장검사를 위해 속을 비우느라 초췌한 얼굴의 남편과 검진기관으로 향한다. 3시간여가 지났을까. 커피숍에서 수업 책을 읽다가 깜빡 졸은 내 옆에 조용히 그가 앉아 있다. 대장의 용종을 떼고 나머지 결과는 추후에 받기로 했다며 희미하게 웃는다. 조수석에 그를 앉히고 운전하며 돌아오는데 바깥의 눈부신 햇살과 대조되게 그는 수척한 얼굴로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중략)전기밥솥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김훈의 수필 '밥 1' 중-


진저리 나는 밥을 먹이기 위해 일터라는 전장으로 매일 향하는 남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나이 50이 넘도록 30년 가까운 세월을 치열한 전장에서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복무해 온 한 남자의 여윈 어깨가 내 눈앞에 있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핸드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 라며 김 훈 작가의 '밥 1'은 끝난다.

아무 도리 없다. 그래서 오늘도 대한민국의 가장들은 여윈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 한기가 가시지 않은 아침 이른 시간부터 버스나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고 각자의 전장으로 향한다.


매일 반복되는 고단한 일과 속에 그가 이제 기운을 추스르고 밥을 소화하기를... 그래서 하루치의 지난한 전투를 마치고 마침내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무사히 귀환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한다.


고작 탁구로 위안받는 삶일지언정 그는 한 가정을 수호하는 이 땅의 위대한 가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