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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대로 동행 Apr 04. 2024

오늘도 강은 흐른다

'리버보이'를 읽고

현재 영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학 작가 중 한 사람인 팀 보울러의 장편소설로 해리포터를 제치고 만장일치로 카네기 메달을 수상한 리버보이는  국내에서만 40만 부 팔린 청소년 소설의 베스트셀러이다.


이 책은 청소년 소설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았던 죽음, 상실의 문제를 슬프고 격정 적이지 않게 기품 있고 서정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어른이 읽기에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소설이다.


그는 '이야기는 마음을 움직이고 고통을 잊게 만들고 삶을 변화시킵니다. 이러한 힘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글 쓰는 일을 그만둘 수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야기의 힘을 아는 그이기에 이 작품도 놀라운 흡인력으로 독자를 할아버지의 제스의 삶 속, 강으로 초대한다.

리버보이는 15세 소녀 제스와 할아버지를 통해 상실과 슬픔, 이를 극복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수영을 좋아하는 15세 소녀 제스는 할아버지와 둘도 없는 각별한 사이이다.


 병세가 짙은 할아버지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으로 여름휴가를 가길 원하셨고 가족들은 할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그 소원을 들어주려 함께 고향으로 향한다.


숙소별장 앞의 강을 바라보며 제스는 수영을 즐기고 미지의 소년 리버보이를 만난다. 반바지의 검은 머리 차림의 리버보이는 제스 자신의 분신이자 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이자 분신이기도 하다.


화가인 할아버지가 휴가지에서도 몰두하는 작품은 리버보이인데 그곳에는 강의 풍경만 그러져 있고 정작 리버보이는 없다.


제스는 늘 그것을 궁금해하다가 우연히 리버보이를 만난다.  리버보이는 소녀에게 병마로 힘이 없어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할아버지를  제스가 도와서 그림을 완성하라고 조언한다.

망설이던 제스는 리버보이의 말을 따라 할아버지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고 마침내  할아버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본인이 꿈꾸던 그림 '리버보이'를 완성한다. 그러나,완성의 기쁨으로 활기를 얻는 것도  잠시. 할아버지는 병마가 심해져 이내 자리에 몸져눕는다.


 제스 앞에 다시  나타난 소년은  강이 끝나는 지점에 바다가 시작되는데 자신은 그곳까지 수영해서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픈 할아버지를 두고 갈 수 없는 제스 대신 결국 소년 혼자 도전의 길을 떠난다. 바다까지 수영해서 가는 건 화재로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고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졌던 할아버지의 오랜 꿈이었다.


소년을 보낸 뒤 제스는 응급실에 실려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소년을 찾아 자신도 도전을 시작한다. 피곤하고 허기져서 죽을 만큼 힘든 고비마다 그녀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용기를 내고 마침내 강의 끝 지점 바다가 시작되는 곳에서 리버보이를 만난다.


그리고 도전의 완성 속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접한다.

'이제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여정이 끝났음을 알았다. 할아버지의 여정이 끝난 것처럼'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보낸 뒤 할아버지의 유골을 강에 뿌리면서 마침내 제스는 이전에는 포기했던 폭포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데에 성공한다.

 이제 유골을 떠내려 보내며 그녀는 그것을 할아버지 삶의 흔적들이라 칭한다.

그녀는 다시 소년이 강에 대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강은 끝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새로운 모습으로 부활한다는 말.

그때 그녀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송곳으로 찌르듯 아려와서  몇 번씩 책을 내려놓곤 했다. 내가 젊은 시절 겪었던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할아버지와의 이별이 계속 상기됐기 때문이다.


 또 사랑하는 아빠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삶의 끝자락을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소설 속 상황들이 나에게 더 생생하게 와닿았다.

 

다시 겪게 될 상실의 순간에 내가 제스처럼 초연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몇 번씩 책장을 넘기다 숨을 고르곤 했다.


작품 속에서 팀 보울러는 '또다시 삶은 계속될 것이다. 고통스러울 필요는 없었다. 단지 때가 되면 누그러질, 건강한 슬픔만이 있을 뿐이었다. '라고 말한다.


제스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강의 끝에 도달하는 도전을 완성한다. 그리고 유골을 뿌리면서 자신의 삶을 대면하고 한 발짝 더 나아갈 용기를 얻는다.


팀 보울러는 실제 자신이 14세 때 겪었던 할아버지의 죽음, 자신을 억누르는  슬픔으로 장례식에 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하며 제대로 작별을 고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사람들의 가슴을 적셔주는 소설을 통해 할아버지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의식을 치렀다


삶이 항상 아름다운 건 아냐. 강은 바다로 가는 중에 많은 일을 겪어. 돌부리에 차이고 강한 햇살을 만나 도중에 잠깐 마르기도 하고. 하지만 스스로 멈추는 법은 없어. 어쨌든 계속 흘러가는 거야. 그래야만 하니까. 그리고 바다에 도달하면 ,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난 그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리버보이의 말처럼 유유히 흐르는 작품 속 강은 우리 삶을 대변한다.  어떤 경우에도 삶은 흘러간다.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나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결국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삶의 유산을 기억하며 그녀는 성장하고,  삶은 여전히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리버보이는 15세 소녀와 할아버지의 동행과 이별,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예전과 같은 건 아무것도 없어.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거야. 저항해 봐야 소용없단다. 우리는 그걸 받아들여야 해. '라고 할아버지의 입을 빌어 속삭인다.

영원할 게 없는 삶, 유한한 시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15세 소녀가 슬픔을 딛고 일어나 자신만의 비상을 하듯 나 역시 그녀처럼 강에서 만나는 변화과 어려움을 인정하고 삶의 강물을 향해 몸을 던진다.


오늘도 강은 유유히 흐른다. 삶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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