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진짜 영웅입니다.

가장의 무게를 생각하며

by 그대로 동행

밤새 어깨가 아프다고 끙끙대며 몸을 뒤척이는 당신을 보며 생각합니다.


한 때는 밤새 우는 아기를 달래고도 새벽녘에 어김없이 일어나 출근하던 큰 산 같던 사람.

세 아들이 온몸 여기저기 매달려도 거친 숨소리 뿜으며 끄떡없는 강철 같았던 사람.

그런 당신이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 앞에 조금씩 허물어집니다.


태풍예보가 오는 날, 당신의 출근을 걱정하는데, 예의 무심한 표정으로 태풍을 뚫고 묵묵히 우산을 든 채 현관문을 나서는 모습을 봅니다.

퇴근해서는 비에 젖은 신발로 인해 발이 조여 아프다고 신음하는데... 하루 동안 쌓인 고단한 피로의 무게가 당신의 얼굴에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수요일 밤마다 '골 때리는 그녀들'을 보면서 응원하다가 좋아하는 팀이 극적 골로 역전승했다고 입에 거품을 물며 본인의 영웅담처럼 경기 장면을 얘기하는 당신을 보며 헛헛한 웃음을 지어 봅니다.

세상의 별 낙이 없어 tv 프로그램 하나에 신나 하는 당신의 모습이 속으로는 짠합니다.


스트레스에 못 이겨 짜증 내는 고3 , 늘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고1 둘째 , 한창 사춘기가 오느라 온갖 투정을 부리는 중1 막내 , 예전 같으면 잔소리도 하고 가끔씩 대화도 할 법한데 이제는 아이들의 말을 묵묵히 침묵하며 참는 당신의 모습이 도리어 슬픕니다.

당신이 차라리 아이들에게 호통도 치고, 왜 그러냐고 물으면 좋겠지만 그러기에 이제는 너무 지쳤나 봅니다.

가끔 유행가를 듣거나, 아버지의 얘기가 나올 때 2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을 떠올리며 당신이 남몰래 눈가를 훔치는 걸 봅니다. 1년간 투병하는 동안 매일 아버님 병원을 오가며 고생했지만, 여전히 미안하고 사랑함을 알아요.

오늘은 우리 아빠의 산소가 될 자리를 정리해 주러 가네요. 그 마음과 수고, 고마워요.

나는 이제라도 당신이 울고 싶을 때 더 이상 속으로 삼키지 않고 소리 내서 울면 좋겠습니다.

나도 당신의 눈물을 이해하게 되니ᆢ.

울음을 삼키느라 가슴이 시퍼렇게 멍들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사업과 주식투자 실패, 실직과 수 차례의 이직, 아이들의 잦은 병치레, 아버님의 죽음 등 돌아보면 기막힌 시간의 터널을 함께 걸어왔네요.

모든 상황들이 절망적일 때 지독하게 싸우고 원망도 했지만, 지나고 보면 그 시간들을 통해 우리 가족은 더 단단해지고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지요.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가장 큰 유산은 물질이 아니라 실패를 딛고 일어선 삶과

그 속의 간절한 기도임을 믿어요.


창 먹성 좋고 혈기 왕성한 세 아들, 골골대며 슬픔에 잠긴 아내를 세상의 온갖 풍상과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이 세상 가장 든든한 우산이 되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요.


머리숱이 줄어든다고, 어깨가 충돌증후군으로 아프다고, 일하느라 양손의 힘줄이 상해 수술한 자리가 욱신거린다고 , mz세대 후배들 달래 가며 일하느라 힘들다고 고충을 털어놓을 때 대충 흘려듣고 건성으로 대답한 거 미안해요.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한데 바쁘다는 핑계로 마주 보고 진득이 앉아 있어주지 못했네요.


당신을 보면서 한 가정의 생계를 짊어진 가장의 삶의 무게를 생각합니다. 이제 당신이 혼자서만 고단한 신음 뱉지 않고 그 짐을 함께 나누고 가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우리 둥지를 떠난 뒤 여윈 어깨끼리라도 기대고 살 수 있도록, 우리가 앞으로도 느리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 삶의 끝날까지 동행하길 기도합니다.

더 이상 큰 산이 아니더라도, 강철 같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당신은 우리의 변함없는 진짜 영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