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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천사 Jun 24. 2024

"난 깍두기야"

아빠가 화가 난 이유는 세가지야.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아들.


열한살이나 된 아들이지만, 아직 우리는 매일밤 함께 한다.

외둥이기도 하지만, 언젠가 따로 자게 되는 그 날이 오기 전까지, 아들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아직 따로 재우지 않는 것도 이유중 하나다.


그 날은 아빠가 화난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시동을 걸고 있다.

여행을 다녀온 그 날부터 일주일 가까이 침묵을 하고 있는 아빠를 옹호하고 싶겠지.


그 이유들은 이러하다.


첫째,

아빠의 속옷이 마르지 않았는데 걷어둔 것.

빨래건조대에 있는 신랑의 다 마른 속옷을 걷어두었다. 라고 하지만 쇼파에 던져두었다.

그 마른줄 알고 걷어둔 속옷의 허리 밴드 부분이 마르지 않았다는 것. 

(신랑은 샤워를 하고나면, 본인 속옷을 직접 손빨래해서 빨래건조대에 널곤 한다.)

무심한 엄마를 보며 한마디 하는 아들이 때로는 신랑보다 더 얄밉다. 

(속옷 밴드부분에서 덜마른 xx 냄새가...)


둘째,

책 좋아하는 것을 인정한다지만, 도서관 책을 여기저기서 상호대차까지 하며 대여해놓고는 제 때에 반납하지 않은 것. (심지어 연체가 된 것) 

봐야할 책과 보고싶은 책은 많고, 반납일자를 앞두고 한 페이지라도 더 보려다가 반납일자를 놓치고 말았다.


셋째, 

아빠의 음료수병을 아빠 허락없이 버린 것.

최애 소주의 값이 오르면서 신랑은 외식을 하게 되면, 마트나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서 음료수병에 담아 홍초를 섞어 식당에 가곤 하는데, 그 음료수병을 내가 버렸다는 것이다. 

(여행중에도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않아 가방이며  장바구니 적신건 잊으신건지...?)


세가지 이유를 다 듣고나서, 아들에게 물었다.


엄마가 화가 난 이유는 알아?


난 엄마편도 아니고, 아빠편도 아니야.

난 깍두기야.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어느 쪽에도 끼지 못하는 사람이나 그런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어디서 들었을까.

적재적소에 한마디 던지는 아들 덕분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잠들었던 그날 밤.


아들의 깍두기 한마디 덕분에 다음날, 우리부부가 화해했다는 훈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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