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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프 Apr 02. 2023

시인의 봄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이장희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生氣)가 뛰놀아라   

                             

                                 1924년 「금성」 3월 호에 실림



이제 시인의 시는 잊으려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봄이 오고, 봄을 느끼려 하면 어김없이 머릿속을 맴도는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시인의 시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분석해야 했고, 암기하고, 잊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습니다. 마음속에 진한 감동이나 아무런 울림도 없이…


그렇게 주입된 나의 봄은 
시인의 시에 대한 깊은 고뇌와 문학적 감성, 그리고 그 예민한 감각을 헤아릴 길이 없어, 해마다 고양이와 봄을 어색하게 조우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나의 봄은
쉬이 쉬이 올 겁니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봄 풍경에 고민 없이 아~ 하고 긴 감탄사를 내뱉을 겁니다.


이제
99살 먹은 고양이로부터
시인의 봄을 놓아 드립니다.
 
 




봄은 
떠 있는 꽃잎처럼 처녀의 마음을 들뜨게 합니다.


예쁜 몸짓은 흩날리는 꽃잎 같아서
봄을 향한 하늘거림이 포근히 내려앉는 봄볕을 받아
더욱더 가슴 설레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이 봄은 오래 동안 잊고 있던 누군가를 생각나게 하는

아지랑이처럼 아련한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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