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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이, 다른 정당

당론을 거스르는 일이란

by 백재민 작가

택시에서 내린 그날 밤 이후, 나는 며칠간 방황했다. 회의실과 땅바닥 사이의 거리감을 줄이고 싶었으나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사무처장님의 직함을 사무처장으로할지, 사무총장으로 할지를 두고 논의하던 회의실, 그리고 과거 빨갱이딱지를 온몸으로 감당하며 택시를 몰던 기사님 사이에 무언가 큰 벽이 가로막고 있는 듯했다. 그 사이 어디쯤에 내가 서 있는지, 뭘 할 수 없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선거운동에서 모셨던 어른이 떠올랐다.


5화에서 언급했던 그 어른 말이다. 막썰어횟집에서 "내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서지 않을 테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나에게 정당활동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셨던 분이다. 그분은 수십년간 굵직한 선거에 진보정당 후보로 출마해오셨고, 지난 당내선거에서는 부대표직에 도전했다가 낙선하셨다. 그 선거를 마지막으로 정치활동을 중단하셨다. 정치를 중단하신 이후 이제는 지역기자로 일하고 계셨다. 오랜만에 카페에서 대화를 나눌 일이 있었는데 지난한 정치인생에서 낙선이라는 고배를 마셔야 했던 어른이 많이 수척해보였다.


나는 그 수척한 얼굴에서 몇 년 뒤의 나를 보는 것 같아 두려웠다. 회의실의 언어에 갇혀 땅바닥과 멀어지고, 결국 낙선하여 잊히는 미래.


하지만 그분은 좌절속에서도 지역기자로 일하며 '기록'을 선택했다. 그 의지만큼은 여전해 보였다. 이제는 정치가 아닌 기자로서 말이다. 보도된 위덕대학교 총학생회관련 기사는, 그래서 '회의실 밖에도 길은 있다'는 희망처럼 여겨졌다.


어른께서 기자활동을 하며 보도한 기사 중엔 위덕대학교 총학생회와 관련된 이슈도 있었다. 위덕대학교의 어느교수가 강의 도중 5.18 민주항쟁을 언급하며 그 사건을 폭동으로 비유한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 일이 논란이되어 총학생회는 규탄시위를 강행했고, 어른께서 이를 기사화하셨다.


"기자님 보도하신 총학 기사 봤습니다. 총학생회장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어 그래 재민아, 문자로 보내줄게"


요즘 총학생회는 기성이 가르치는대로 자기의견은 없고 이용만 당하는줄 알았다. 그 총학을 이용하는 쪽이 되려 학생측이든, 교측이든, 관변단체든 그들이 필요로하는 '청년'의 밝은모습과 신세대이미지를 위해 이용하다가 버림받을 그런 학생회말이다. 하지만 모셨던 분이 보도한 기사내용을 보니 위덕대학교 총학생회는 '평범한 요새것들'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경북에서는 여전히 민감한 주제인 5.18을 전면에 내세워 이슈화하고, 그에 대한 망언에 맞서 작은시위를 벌였다. 어쩌면 이들과는 함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어른을 통해 그들과 연락이 닿았고, 대면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 떨리는 마음을 안고 약속장소인 총학생회실로 향했다.


위덕대학교의 소재지는 경주이긴 하나 지리적으로 포항과 가까워, 포항시내버스를 통해 갈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교문에 이르러 구불구불한 교내 도로를 힘겹게 올라가니, 구석 가득 세워진 학교건물 사이에 '용맹관'이라는 건물이 보였다. 그 강의관 3층에 총학생회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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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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