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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고 싶었던 날들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by 백재민 작가

글을 쓴다는 기쁨도, '그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새로운 정체성을 찾았다는 설렘도 잠시였다. 모니터 앞을 벗어나 거리로 나오면, 현실은 여전히 비상구 없는 컴컴한 미로였다.


통장잔고는 바닥을 기었고, 당 활동은 사실상 멈춰버렸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가끔 들어오는 대타알바, 그리고 멍하니 카페테라스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뿐이었다. 세상은 바쁘게, 그리고 화려하게 돌아가는데, '위원장'이라는 거창한 명함을 가진 나의 시간만 고여서 썩어가는 기분이었다.


테라스에 앉아 거리를 보고 있으면, 문득문득 '문명' 그 자체에 대한 회의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거리의 사람들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문명의 편리를 온몸으로 누린다. 올해 새로 출시된 삼성의 갤럭시와 아이폰 신제품을 싼 값에 사기위해 그 폰을 들여다보며 쏟아지는 정보를 찾아보는 사람들, 매달 쏟아져 나오는 기업의 할인이벤트를 찾아 질 좋은 여가서비스를 즐기는 연인들. 그들의 손에 들린 쇼핑백과 스마트폰은 이 시대의 '행복'을 증명하는 보증수표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번화한 거리의 뒷골목으로 들어가보면, 그 화려한 문명의 빛이 닿지 않는 그림자가 보인다. 리어카를 끌고 내 앞을 지나가는 어르신처럼, 혹은 휠체어 바퀴가 보도블록 턱에 걸려 멈춰 선 장애인처럼. 과연 대다수가 문명의 편의를 온전히 누리고 있나하는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신자유주의를 배경으로 깐 자본주의사회는 우리를 속인다. 물질은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할 '수단'이지만, 어느새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버렸다. 남들이 다 가진 '아이폰'과 '맥북'을 가지지 못해 불행하고, 그 불행에 잠겨 때를 놓치면, 또한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해 불행하다. 1%의 상류사회를 포함한 모두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놓인 것만 같다.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말이다.


심지어 이동할 권리조차 자본의 논리에 종속된다. KTX와 SRT가 개통되며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되었다고 떠들썩하지만, 정작 도심지 밖 촌사람들의 발이 되어주던 무궁화호 노선은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둘 폐선되고 있다. 도시는 화려해지는데, 나 같이 가난한 자들의 이동반경은 오히려 좁아진다.


누군가는 신상전자기기를 사기 위해 망설임 없이 카드를 긁을 때, 누군가는 5,500원짜리 음료수 앞에서 돈걱정을 해야하는 세상. 나는 그 문명의 배급 줄 맨 끝에 서서, 내가 가진 16,000원의 가치를 가늠한다. 나는, 우리는, 이 거대한 문명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경제적으로만 소외된 것은 아니었다. 2022년 초순 즈음해서 지방선거가 눈앞에 닥쳤다. 내가 발 딛고 있는 땅, 포항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분주하다.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국의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거리에 나부끼는 현수막도, 사람들의 옷차림도, 심지어 들려오는 대화마저도 격앙되거나 부풀은 낙관으로 어수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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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릿출신 글쟁이. 넓은 스펙트럼을 지향하는 이단아. 평론과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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