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now me?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걸
인정할 수 있는가?
원하는 모든 것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인정해야만 한다.
나의 가장 약점인 곳.
나라는 아킬레우스의 건.
그 지점이 보이지 않을때의 나는
그럭저럭 현실에 만족하며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지점이
약하다는 것을 안 뒤의 나는 그 전과 다르다.
뒷꿈치에 온 신경이 쏠려있는 채로 살게 된다.
하지만 모르는게 더 나은가?
하면, 나는 차라리 아는게 낫다.
모를때는 그 곳이 무방비 했다.
죽을 위험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은?
그곳이 건인지, 근육인지, 인대인지.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왜 하필 아킬레우스는
거기가 약점이었는지도 궁금해지게 된다.
물론 처음에는 인정하기가 너무 싫다.
그게 나를 죽일 수 있는 곳이라니.
그게 나를 죽일 수 있는 것이라니.
그리고 그게
내가 그토록 무시하며 깔봤던 것들이라니.
그 모습이 내게 있다니.
구토가 치밀어 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인정을 해야한다.
나도 인간이고
그들과 다름 없다고.
나는 단지 그런 모습을 외면하고자,
눈 앞에 보이는 가치들을 키워왔다고.
그래서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 줄 알았다고.
그러나 나도, 그들과 다름 없다고.
인정하면 세상이 괴로울 것 같다.
인정하기 전에는.
인정하기 전에,
세상은 나에게 한 스푼 맛보기라며
내 아킬레스건을
보듬어주는 사람을 만나게 한다.
나는 사회적 가치가 있는,
부끄러움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가 살짝의 호감 정도로 다가온다.
그 사람은 좋은 사람이야.
배울 점이 있어.
옆에 두고 싶은 것 같기도..
그러나 세상은 한 입만 줄거라고 한다.
너의 아킬레스건을 네가 알면,
그땐 그 사람을 보상으로 주겠다 유혹한다.
하지만 그는 모른다.
한 번도 알려고 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겠지.
세상은 사람으로 이루어져있고,
모든 것은 사람을
통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사람과 나는 인연이 아니었나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해봐.
세상은 너를 죽기 직전까지 단련할거야.
지금 네가 하는 것은,
근육을 잠깐 찢어주는 일이야.
그리고 보상으로 너에게 쉼을 줄거야.
그걸 반복하고 나면 너는 아주 커져있을 거란다.
내게 자유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있긴 하다. 선택의 자유.
할 것인가, 혹은 하지 않을 것인가.
하지만 맛 보기 한 스푼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안다면,
내게 자유의지가 있을까?
사람은 쾌락에 취약한 존재로 만들어졌다.
어쩌면,
이것도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우리를 키우려는 방식은
같은 인간을 통해 이루어진다.
애정을 주어 달콤하게 만들고, 뺏는다.
너의 아킬레우스건을
인정하면 돌려주겠다고 한다.
대부분은 그 아킬레우스건을
찾지도 못하는 것 같다.
세상이 주는 애정에 행복해하다가,
행복에 젖어있을때쯤
세상은 내 행복을 가져간다.
내게 거긴 네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고 하는 것 같다.
맞긴 하다.
네가 있을 자리는,
더 자라날 자리니까.
거기에 맴돌며 남은 애정이 없나,
두고간 애정은 없을까 두리번 거리며
결국 주저앉지 말라는 건데
세상이 날 버렸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를 운운하며
애써 준 목숨도 버리겠다 협박한다.
가끔,
진짜 버릴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세상도 놀라서
그가 연명할 수 있을 만큼의
애정을 주곤 한다.
세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네가 더 클 수 있을거라는.
자라날 수 있을거라는 미련을.
사람의 쾌락은
극한으로 가면 고통이 된다.
사람도 참,
키우기 어려운 존재인 것 같다.
어떻게 매번
중도를 지키며 보살펴주고
애정을 줘야 잘 살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태어났다.
내 자신에게 애정을 주는 것은,
방목이 아니다.
나 혼자서 덜렁 내려다 놓고 하라고 하면
나는 뭘 어디서부터 해야할지 모르지 않나?
그래서
세상은 인간 틈새 곳곳에
질좋은 사수를 배치해두었다.
그들을 보고 따라해보라고 유도한다.
하지만 사수는 사수다.
그를 신봉해서는 안 된다.
나는 나로 살려고
세상에 태어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사수가 제 역할을 잘 해주더라도,
그도 한 명의 인간이다.
그 손이 닿지 않는 곳을,
요즘에는 사람들이 더욱 자주 느낀다.
세상도 인간 키워내기
프로젝트가 여간 어렵다.
요즘 활개치는
기능성 모기처럼, 애들이 똑똑해져서
이제는 우울증과 자살률의
극상승으로 세상에게 말한다.
사수가 넘 적어!
한 사람당 한 명씩 줘!
세상은 좀 억울하다.
난 언제나 네게 사수를 주고 있어.
근데 네가 너를 알려고 하지를 않으니,
그저 표면적인 기분을
쾌락으로만 채우려고 하잖아.
네가 왜 그런
기분을 느끼는지 아주 자세히 살펴봐.
너는 왜 우울해? 어떨때 우울한데?
행동, 생각, 어떤 말을 들었을때
내가 거기에 찔리고 아픈지.
나를 깎아먹는지.
잘 보라는 얘기야.
세상은 참....
다정하고 헌신적으로
어떻게든 사람들을 잘 키워보고자 애쓴다.
아까하던 얘기를 마저하겠다.
사람은 언제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마주하게 되는가?
세상은 나를 사람들과
잘 어울릴만하게 만들어놓는다.
내 생각에는 이만하면 뭐,
나름 굴러 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게 얼마나 잘이든,
내 생각보다는 못이든.
어쨌든 사는데 지장은 없다.
그러나 그 때,
세상은 맛보기를 건네준다.
자, 이 맛보기가
너의 아킬레스건을 찾는데 도움을 줄거야.
그럼 인간은 더없이 행복하다.
인생도 나름 잘 굴러가는데,
마침 선물처럼 받은 맛보기가 꽤 달콤하다.
그래서 이대로만 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할때 즈음
세상은 맛보기 역할을 했던 사람을 뺏는다.
여기까지.
이제 너는 네 아킬레스건을 찾아줘야겠다.
그걸 잘 찾아내고, 인정한다면
내가 너에게 빼앗았던 맛보기를 다시 줄게.
한 사람의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한 명의 인간은, 한 개의 우주와 같다.
그리고 그 한 명에게는
인간의 모든 속성이 있다.
인간에게는 우주,
세상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속성이 있다.
한 명만 이해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게된다.
자연스러운 이치, 왜 그러는지.
그러니 아주 자세히 보아라.
너의 속성이 무엇인지.
너부터 시작해라.
행복하려면 너 자신부터,
너의 결점을 인정해야해.
아킬레스건이 네게 있다는 것은,
네가 아킬레우스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또 너에게 그 건도
같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며,
그 맛보기는 너의 건을
이해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시간이 되었어.
너도 이제는 알, 때가 되었다.
너의 약점,
네가 그토록 혐오하던 것들이
너의 안에도 있다는 것을.
또, 너는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너는 강자이기도 하지만,
그 건이 찢기면 한없이 약자가 된다는 것을.
너도 하나의 세계고,
두개가 모두 있어.
여태까진 단지 몰랐을 뿐이야.
근데 언제까지고
모른채로 살 순 없어.
이제는 알 때가 온 것 같다.
그래서 너에게 주는거야.
네가 달콤하다고 느끼는 그 사람을.
세상은 말한다.
내가 너를 괴롭히려고,
혹은 너무 사랑해서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을.
내 목적은 너를 키우는 것. 그 뿐이라고.
인생사 새옹지마,
뭐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어?
이건 진짜 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하는 말인데,
너 분명 네가 뭔지를 인정하고 나면
그냥 관조하게 된다니까.
그냥 글쿤 하면서 넘기게 된다고.
모든 것에 왜 그랬지? 를 물어.
그리고 봐.
그 안에서 뭐가 일어나는지.
그럼, 너는 자연스럽게
기승전결을 모두 보게 돼. 이해하게 돼.
처음엔 분명
짜증도 나고 화도 나고 억울하고...
근데 잠깐 제쳐두고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자.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집요하게, 바라봐.
네가 이해할 수 있을때까지.
중간에 포기하니까
자꾸 쾌락만 찾게 되는 거 아니야...!
왜 떠먹여줘도 못 삼키냐고!
그거 유동식이야 임마...!
아이에게 아무리 얘기해봤자
뭘 삼켜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나.
그런다고 아이에게 화를
내고 승질내고 짜증내면 뭐가 달라지나?
아, 달라지긴 한다.
아이는 우렁차게 울고 혼비백산이 되어,
집안이 뒤집어지긴 할 것이다.
그러나 아이를 안고
가만히 살펴보며 왜 안 넘어가지?
먹을 줄 모르나? 살짝 눕혀볼까?
하며 이렇게 저렇게 애쓰다보면,
어느순간 아이는 먹는 법을 배운다.
그렇게 다독이면 아이는
부른배를 안고 깊은 잠에 빠져들고,
엄마에게는 자유의 시간이 온다.
그러나 그 앞에서 화내던
엄마의 집구석은 여전히, 시끄럽다.
-
여튼, 자꾸 이야기가 새는데
인간이 아킬레스건을
아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의 자아를 재구성하면 된다.
상세하게 설명하겠다.
내가 세상속에서
나름 구실을 하며 잘 살아가고 있을때,
세상은 내게 맛보기를 건네준다.
나는 그걸 한 번 맛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내가 여태 살면서 맛봤던
잠깐의 달콤함과는
비교가 안 되기 때문에.
이대로만 살면,
나 꽤 행복하게 잘 살겠는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이제 세상은 타임리밋.
맛보기니까 다시 데려간다며
내게서 걔를 가져가는데
나는 뺏긴것 같은 느낌이
몽글몽글 솟아오른다. 왜 줬다 뺏어!
화도 난다.
넘 고통스럽고 이래도 되나 싶다가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살다보니 살아지는 것 같고.
어떻게든 살아지긴 한다.
근데 그게 잘산다는 느낌은 아니다.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다.
뭘 해도
그 맛보기만큼은 아닌거같어.
내가 이전에 했던 달콤한 쾌락들은
맛보기 앞에서 의미가 없다.
그럼 나는
맛보기를 그리워하면서
인간에게 필요한
3대 욕구가 부족해서 그런가. 하며
충실하게 욕구를 채워봐도,
나를 채워주는.
내 전부가 채워지는 느낌은
걔가 있을때였음을 느끼고 갈망한다.
그러나 지금 걔는 없다.
(쓰고보니 중독의 초기와 비슷한 것 같다.)
그럼 이제 세상은
이 환경에 내가 적응하지 않도록,
자꾸 이벤트를 던진다.
지나가는 맛보기의 실루엣을 본다거나...
다른 3대 욕구를 채우는 중에
맛보기가 생각이 나서 지울수가 없다거나.
그러다가 맛보기가
내 머릿속에 난무할때쯤.
세상이 한 말이 떠오른다.
아킬레스건인지 뭔지. 그게 뭔데.
세상은
사기꾼 같은 미소..는 아니고
손을 슬슬 비비며 때가 됐나?
생각하는 중.
자. 아킬레스 건은,
바로 너의 아주 근원적인 회피점이야.
네가 적어도
'나는 이런 사람은 아니지' 라고 생각한 것.
그 아주
하등하고 열등한 것이
네게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건 뭐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너는 어떤지 너 스스로 아는거야.
그거 알면,
내가 너의 아킬레스건도 이해하며
사랑해주는 그 맛보기를 다시 네게 줄게.
그 때 세상의 속마음은 이렇다.
'그게 네가
너 자신으로 온전히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유일한 방법이야.
나는 처음부터
너에게 그것만을 바랐어.
내 유일한 목적이야.
네가 너의 결점을 알고도,
너를 사랑하는 것.
맛보기는 그저 수단이야.
네가 다시
무(無)로 돌아가기 전까지,
이 여행은 계속 될거야.
모든 것은 그저 과정이야.
너는 자라고,
배워서 커지는 것만이 가능해.'
하지만 그 속마음을 못 들은 나는?
세상이 맛보기로 가득차서
지금 뭐만 생각하면 걔가 떠오를 지경인데,
지금 나를 아는게 중요한가?
걔를 아는 것도 시간이 없어요..~
그러나 세상은 단호하다.
안돼. 돌아가.
너를 모르면 맛보기 안 줘.
(당연하지. 세상 입장에서는
이 순간을 고대해왔는데,
쉽게 맛보기를 내어주면 쟤는
지 아킬레스건도 모르고 살거 아냐.
그럼 지가 아킬레우스라는 것도
모르고 산다 백퍼.)
그럼 이제 나는 내게서
쭈뼛쭈뼛 찾아내보기도 하고,
나를 한계까지
강하게 밀어붙여도 본다.
이 '한계까지
강하게 밀어붙인다'는,
최대한 회피하는 것.
이런 나를 볼 바에야.
이렇게 두렵고 무서울 바에야,
맛보기 멀리할게.
하지만 살랑살랑,
눈 앞에서 맛보기는 흔들린다.
갖고싶지?
근데 가지려면
니가 그런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돼.
근데
이 '그런사람'이라는 것은
진짜 너무 역겹고
토악질이 나오는,
내가 그토록
혐오했던 부류인 것이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갖고 싶다.
내가 꽁꽁
숨겨왔던 것들을
까발리지 않아도,
네가 감추고 싶어하는 부분도
모두 좋다며 웃던 말간 미소.
걔를.
그래서 갖고 싶었다.
걔 옆에 있으면,
내가 나 자신으로서
온전히 사랑받는 기분이라서.
사랑받고 싶어서.
이런 세상의 허물같은 것들은
모조리 집어던진채로도,
누군가의 무엇이 아니라 그냥 나대로.
근데 걔는 그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해서,
가볍게 주는 것 같아 보여서.
나도 그저 옆에 있으면
언제고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세상이 뺏어갔다.
세상은 처음부터
맛보기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세상은 단지 걔를
은근슬쩍 내게 붙여줬을 뿐이다.
맛보기라는 것은 누가 규정했는데?
화가, 짜증이 치솟는다.
엄마 나 저거 사줘~~~!!
마트에서 누워버리는
아이처럼 화를 내본다.
그러다
무릎꿇고 세상에게 빌어본다.
제발 사주세요... 엄마 나 저거 ...
안 사주면 밥 안 먹을거야!
단식투쟁도 해본다.
너 잠 안자니? 엄마가 알빠야?!
여보, 애가 사춘기가 왔나봐요...
잠도 안 자본다.
해볼만한건 다 해본다.
일탈도 해보고... 욕구도 채워보고...
그러나 내가 채우는 욕구는.
기본 욕구와 반항으로 얻는 쾌락은,
아주 낮은 등급의 즐거움만 준다.
왜?
나는 매슬로우의
맨 꼭대기에 있는
가치를 맛본거거든....
(이걸 한 번 맛 본 인간도
그렇게 많진 않다.
이게 맛봐지려면
내가 4단계(자존의 욕구**밑의
이미지에서는 자기표현의 욕구**)까진
성취해야 맛볼 수 있다.)
여튼.
세상은 내 눈앞에 당근,
아니 맛보기를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할 수 있다를 외친다.
거기까지 가는게 어렵지,
막상 가면 별거 없어.
그냥 인정하게 돼.
그냥 체념하고 포기하고 받아들여.
이거 인정하면
네가 밑바닥까지 떨어지고
너는 더이상 재기불능인 것 같겠지만,
그땐 내가 너한테
맛보기 다시 준다니까..!
근데 이건 미리 말 안 해준다.
맛보기가 다시 온다는 걸 알면
가짜로 포기한 척 하니까.
인간은 아주 교활하다.
머리가 팽팽 돌아간다.
어떻게 해서든
잔머리로 걔를 얻어내려고
진짜 발악을 해본다.
그때 알게된다.
아.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내가 이런사람이라고?
내 밑바닥을 그제서야 보게된다.
내가 가장 기피했던,
역겹다고 생각했던
인간의 모습이 내게서 보인다.
발악이 끝나면
체력이 모두 소모되어
탈진하게 된다.
탈진하는 순간
인간은 한계를 인정한다.
'아 ... 나란새끼는 개 쓰레기 새끼구나...........'
하지만 이것을 아는 순간.
이 순간부터가 시작이다.
한없이 떨어져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관점을 돌려 벽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다.
관점이 커진 순간.
내 그릇도, 자아도, 가치도.
다시 리셋이 되는 순간.
1이었다가 0으로 돌아오는,
하지만 그 아래 계단의 0과는
차원이 다른 0인.
전혀 다른 내가 된다.
그럼 이제 그 벽을 밀어보라.
그곳은 문이다. 주저앉지 마라.
탈진해서 기력이 없겠으나,
단 한 발만 내딛어보라.
그곳에 있다.
아주 환한 미소를 짓는 너의 맛보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