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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사과 Oct 12. 2022

털 깎는 게 무서워 울타리를 넘어 도망친 새끼 양

귀닐라버그 농장의 새끼 양털 자르기

텍스타일 학과가 들떴다. 
살아있는 양의 털을 깎아보고 양모를 가져올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수요일 아침에 털을 깎아야 되는 양이 있다는 연락이 왔다. 갈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 그날 바로 저녁 먹고 타게 앤더슨 귀닐라버그 (Tage Anderson Gunillaberg)라는 농장에 가게 되었다. 


귀닐라버그 농장이 특별한 이유는 모든 것이 옛날 방식대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양털을 깎을 때도 기계를 쓰지 않고 전부 가위로 자른다. 기계를 쓰면 빠른 속도로 털을 깎을 수 있지만 양에게 심각한 상처를 안긴다고 한다. 온몸에 피가 날 정도의 상처로 뒤덮인다니 동물학대라는 말이 나와도 과언이 아니다. 귀닐라버그는 이에 반대하는 취지로 환경보호, 동물보호 차원에서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농장이다.


농장은 칼마르에서 차로 북쪽으로 3시간 반 정도의 거리였다. 농장 근처 도시인 옌셰핑에 도착하자 벌써 자정 가까이 되었다. 같이 간 친구 애니의 오랜 지인 집에 하룻밤 머무르기로 했다. 1층짜리 아담한 스웨덴 가정집으로 오랜 세월 갈고닦은 느낌이 났다. 


갈색 줄무늬 벽지를 자랑스럽게 설명해주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스웨덴식 아침을 먹고 간단히 커피를 마신 후 농장으로 향했다. 농장에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하자 보기만 해도 평온해지는 풍경이 펼쳐졌다. 양, 염소, 말, 소, 돼지, 닭..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농장 가축들이 여기 있는 것 같았다. 자연 그대로 방목하고 키운 동물들은 정말 평화로워 보였다. 직접 들어가서 만져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진 않았다.


염소들이 모여있다


양털을 깎게 된 사연을 듣게 되었다. 우리가 전화를 받기 전날 일어난 일이다. 털을 깎아야 할 1살짜리 양이 두 마리 있는데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털을 깎는 게 너무 무서운 나머지 밤에 울타리를 넘어 도망쳤다는 거다. 도망친 새끼양을 아침에 농장 주인이 다시 잡아와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우리에게 연락했다는 스토리다. 만화 같은 이야기지만 새끼양 두 마리는 아직도 무서운지 사진 찍으려고 다가가니까 잽싸게 도망갈 태세를 취했다.


양털깎이

양을 잡아서 의자에 올리고 목을 고정시키면 준비 완료! 잡아올 때는 큰 소리로 매애~ 울던 양도 일단 앉히면 체념한 눈빛으로 조용해졌다.

양털을 깎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위로 살을 자르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가죽에 될 수 있는 한 가장 가깝게 가위질을 한다. 가위질을 할 수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가위가 매우 크고 무거워서 열 번 자르고 나면 손이 아프다. 물론 양이 움직여서 살을 자를까 봐 조심조심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요령이 생기기 전까지는 힘들다. 


양은 털을 깎아주지 않으면 너무 길고 털끼리 서로 뭉쳐서 오히려 위험하다. 일 년에 두 번 가을과 봄에 털을 깎는데 깎는 계절에 따라서 털의 느낌도 달라지고, 그에 따라서 울의 종류도 결정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무서워하던 양들도 해가 갈수록 털 깎이가 자신들을 위한 일이라는 걸 알아서 나중에는 스스로 온다고 했다. 


털을 깎는 느낌은 흡사 두꺼운 고기를 가위로 자르는 느낌이었다. 싹둑 자르고 싶지만 쉽지 않아서 여러 번 가위질을 해서 조금씩 잘라냈다. 깎은 털은 가볍고 솜같이 생겼다. 그런데 뭔가 끈적끈적하다. 처음에는 더러워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털에 지방이 많아서라고 한다. 그래서 울 소재가 겨울에 따뜻한 거구나! 


털을 다 깎고 나면 양을 풀어준다. 양 옆으로 길게 울타리 쳐진 풀밭에서 하나, 둘, 셋 하면 목을 놓아준다. 출발선에 선 육상선수라도 된 듯 목줄을 놓자마자 달려 나간다. 한 가지 웃긴 건 양들은 머리가 별로 좋지 않다는 사실. 그래서 털을 깎고 무리에 돌아가면 다른 양들이 못 알아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다. 새로운 이방양(羊) 이 들어왔다고 생각해서 공격을 한다고!


털을 다 깎인 후 쏜살같이 뛰쳐나가는 양 (오른쪽 아래)




양털은 흰색, 베이지색, 갈색, 짙은 갈색, 회색, 검정으로 나눴다. 깎은 털은 색깔별로 큰 종이봉지에 꽉꽉 채우자 15kg이나 되었다.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털은 퀄리티가 최상일 때 바로 씻어두어야 한다. 벌레가 생기는 순간 바로 쓸모없는 양털이 된다. 카펠라고든으로 돌아가자마자 팀을 나눠 양털 씻기를 하기로 했다.


귀닐라버그 농장으로서는 우리가 가치를 알아주고 양털을 써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수공예학교 카펠라고든 학생들인 우리는 전통 방식으로 양털을 잘라보고 쓸 수 있어서 의미가 있었다. 양들아, 다음에 털 깎을 때까지 잘 놀고 있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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