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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사과 Oct 21. 2022

모자를 쓰지 않는 내가 반한 그 모자

주관적 아름다움과 가격의 정비례

밀리너리, 여성 모자 제작업을 뜻하는 단어
밀리너, 여성 모자를 만드는 장인


오직 핸드메이드로만 모자를 만드는 호리사키 밀리너리 스튜디오는 선생님 린다와 인연이 있다. 작년부터 인턴을 가는 학생들도 있어서 운이 좋게 스튜디오를 방문하게 되었다. 호리사키는 일본과 스웨덴 혼혈 밀리너 두 명이 시작한 스튜디오로 첫 해부터 프랑스 패션위크에 참가하는 등 주목받는 럭셔리 브랜드다.


한적한 마을 끝에 위치한 집 두 채가 호리사키 스튜디오와 부티크였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곳인데 바깥에서부터 예사롭지 않음이 느껴졌다. 스튜디오의 고급스러운 빈티지함이, 한눈에 보자마자 겨울에 호리사키에서 인턴을 하고 돌아온 친구들이 가져온 호리사키 모자와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카펠라고든에 오기 전에는 장인들은 어쩐지 무섭고 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친 그만의 고집도 생겼을 테고, 깨작깨작 아는 지식으로 자기를 보러 오는 우리를 우습게 생각할 것 같기도 했다. 다양한 분야의 장인들을 여러 명 만나고 나서야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번에도 그랬다. 날씨도 좋고 고양이도 있고 평화로운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삶이 주는 만족감이 커서 일까? 호리사키의 밀리너 장인들은 정말 옆집 언니 오빠같이 친근한 느낌이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오히려 더 알려주고 싶어 했다.



호리사키 스튜디오.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하다
밀리너 호리사키와 흰 모자를 쓴 인턴을 했던 친구 미호. 연습용으로 만든 지난 시즌 디자인 모자를 선물로 받았다.





모자를 만드는 것도 처음 보았고 럭셔리 브랜드의 스튜디오도 처음이었다. 나무 느낌의 스튜디오는 모자 제작에 관련된 크고 작은 신기한 장비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모두 오래되어 손때 묻은 정겨운 느낌의 물건이었다. 다시 한번 스웨덴의 에코 정신과 물건을 아껴 쓰는 마음가짐을 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만들 때 좋은 장비를 갖추는 것은 기본이지만 그것이 꼭 새것이어야만 좋은 물건이 나오는 건 아니다.


이어진 방은 호리사키 모자의 샘플들이 모여있는 전시실. 모자를 하나하나 꺼내어 설명해주었다. 토끼털, 여우털 등을 펠팅 방식으로 만든 모자들이었다. 털로 만든 모자인데도 신기하게 가죽 느낌이 나는 것은 털을 살짝 불로 그을리는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다.


디자인부터 재료 준비까지 모두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한 시즌당 주문받은 것만 소량으로 생산한다. 모자 하나를 만드는 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다. 원래 가죽모자가 시그니처지만 올해 여름은 조금 다르게 밀짚모자를 만들어 볼까 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는 모자 부티크를 볼 수 있었다. 모자와 어울리는 옷들도 진열되어 있다. 선생님 린다는 옷을 한 벌 샀다.


모자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밀리너 누군가의 책상
부티크에서 모자를 써볼 수 있다





사실 나는 모자를 잘 쓰지 않는다. 모자를 썼을 때 머리가 답답한 느낌이 싫다. 그런데 호리사키 모자는 한번 써보고 반해버렸다. 부드럽게 들어가 머리에 착! 패션을 완성하는 고급 아이템을 장착한 느낌이 좋다. 모자 하나가 너무 마음에 들어 잠깐 고민했다. 그런데 세상에 이게 웬일이야, 가죽도 아닌데 100만 원을 훌쩍 넘기다니! 급 지름을 하기엔, 모자를 잘 쓰지 않는 나로서는 위험부담이 큰 숫자라 다시 살짝 내려놓았다.


다 같이 마음에 드는 호리사키 모자를 골라 쓰고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호리사키 방문을 마무리했다. 크래프트 장인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그들의 철학과 일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내가 모자를 만들 일은 없겠지만 이곳에서 들은 철학과 이야기들은 오래 기억하려고 한다.



예사롭지 않은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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