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인간관계의 시작점
- 언니, 나는 진짜. 진짜로 사람이 그냥 좋았거든? 혼자 못 있고 밖에 나가서 사람들 만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면서 기분이 막 좋아지고.
근데 일 시작하면서 성격이 이상해졌어.
어떤 날은 제발 나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고, 미치도록 혼자 있고 싶단 말이지.
근데 그게 또 이상한 게, 회사 관두고 전업주부되니까 이제는 혼자 있으면 막 불안하고 어쩔 줄을 모르겠어.
그렇다고 나가서 사람들 만나는 건 생각만 해도 피곤하고. 힘들고, 휴.
- 에휴. 너처럼 외향적인 애가 참 괴로웠겠다.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닐 텐데.
- 응, 이젠 찐친들 만나도 기분이 좀 그래.
친구들 만나면 뭔가 모르게 굉장히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집에 오면 이 말 저 말 다 곱씹어 보게 돼. '사람'을 만나는 거 자체가 좀 지친달까.
그렇다고 집에서 가족하고 막 엄청 잘 지내는 것도 아니야.
오늘 애랑 몇 마디라도 했는지나 모르겠어. 남편은 뭐 본인 사회생활하느라고 바쁘고.
- 그래, 그럼 이 참에 너 혼자 즐겁게 시간을 보내보자, 그런 건 어때?
- 그것도 잘 안 돼. 태생이 외향인 그자체야.
내가 워킹맘일 때는 전업주부만 되고 나면 사교계의 여왕이 될 줄 알았거든?
근데 오히려 전업주부로 몇 년 살아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그 모습이 아니더라고.
나 이 동네에 7년 살았는데, 친한 아줌마 한 명이 없어.
그렇다고 내가 기갈나게 살림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혼자 시간 있으면 휴대폰 붙잡고 있는 게 대부분인 것 같아.
멀리 사는 친구들이랑 시답잖은 톡이나 하고. 거기서 좀 위로받고.
나이 먹고 새 친구를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워.
그렇다고 예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들 만나기에는 서로의 일상이 너무 달라져 버렸고.
-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일상의 수다를 풀어낼 상대가 필요한 건데, 너 지금 그 정도의 관계를 맺을 사람조차 없는 거구나.
- 맞아, 그런 것 같아. 내가 관계를 맺고 싶은 그 사람들은 도대체 다 어디에 있는 건지.
- 나도 그런 생각했던 것 같아.
진실하고 믿을만한 사람 곁에 많았으면 좋겠다고.
근데 그게 참 어렵더라.
결혼을 일찍 한 덕에 남들보다 일찍 깨달았어,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다는 거.
그건 축의금을 안 냈다거나 결혼식에 오지 않았기 때문은 절대 아니야.
결혼을 하면서 내 생활 전반, 삶의 가치관이나 신념 이런 것들이 급속도로 바뀌는 걸 경험하잖아. 거기에 아이를 낳고 나면 다시 태어나는 게 이런 건가 싶게 나 자체가 아주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하고.
그런 내 모습을 이해하고 그대로 인정해 주는 사람들만 내 인간관계에 남더라고.
그 인간관계 안에는 가족도 예외일 수 없었어.
아무리 가까운 부모, 형제, 남편, 시부모 그 누구라도 내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갈릴 수가 있더라고.
분명 '아닌 사람'으로 분류가 되는데도 끝까지 혼자서라도 잘 지내보려고 애써봐야 소용이 없었어. 십 년이 지나도 안 되는 관계는 여전히 안 돼. 받는 것만 원하는 사람은 끝까지 받기만 해. 노력해 봐야 나 혼자 서운하고 더 오래 아플 뿐이지.
너야 지금 동네 아줌마들, 혹은 친구가 없다고 고민하고 있지만, 더 심각한 사람들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이혼도 하고 부모나 시부모를 평생 안 보고도 살아.
내 주변에 1년에 한 번도 시가 안 찾는 며느리들이 수두룩해.
그러니 얼마나 넌 다행이니. 적어도 가장 가까운 가족들과 그런 '문제'는 없잖아.
물론 문제가 없다는 게 좋다는 건 아니지.
나라면 가족과 친밀감부터 높여볼 것 같아. 아이랑도 유대감을 키우고, 남편과도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거지.
어쩌면 그들도 남이야. 아무리 내 뱃속에서 나왔다고 해도 자식은 남이고, 얼마나 사랑해서 결혼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남편도 어차피 남이야.
네가 그렇게 사람을 만나고 싶고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면, 가까운 사람들하고 먼저 돈독한 우정을 쌓아보면 어떨까.
남이라고 딱 선을 긋고, 잘해 줘 봐.
나에게 온 손님,
나의 고객,
혹은 옆집 아이,
옆집 아저씨라고 생각하고.
문어발식 인간관계없다고 해서, 기죽을 거 없어. 전업주부인데 아줌마들 네트워크에 안 끼면 어떠니, 그거 해서 학원 정보 알아낸다고 네 자식의 행복에 단 1%라도 기여하는 바가 있을까?
너한테 무엇이 중요한 지 생각해 봐. 정말로 인간관계에 목말라 있는 것인지.
만약 그랬다면, 너는 이미 동네 아줌마들과 집 앞 치킨집에서 치맥 중이겠지. 근데 넌 그렇지 않고 지금 이런 고민을 토로하고 있잖아.
혹시 그저 자랑하고 싶은 친구를 만들고 싶은 건 아니지?
아니면 너의 남모를 비밀을 털어놓을 친구가 필요한 거니?
그렇담 차라리 그건 여기에 댓글을 남겨. '펑'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뭔들 못 적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