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까지 품은 임산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제부터 당신은 암환자입니다

by 유나시

나는 임신 중기 무렵부터 이따금 가슴 주변부의 미미한 통증을 느꼈다. 임신 경험이 있는 친구들에게 ‘임신 중에 가슴 통증이 있었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가슴은 커졌어도 통증은 없었다고 했다. 친구들과 달리 나에게만 생긴 증상으로 여겼다. 왜 입덧도 보면 누구는 열 달 내내 토를 하는 반면 누구는 입덧이 뭔지도 모르고 지나갔다고 하는 것처럼 가슴 통증도 자연스러운 임신 증상 중 하나로 나에게만 찾아온 것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해진 날짜마다 뱃속의 아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은 날, 의사가 어디 불편한 점은 없느냐는 질문에 ‘아 저 유방이 좀 아파요.’라고 말했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처럼 의사도 별일 아닌 듯이 말해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임신 중에 유방이 아픈 것은 입덧과는 다른 현상이었다. 곧장 유방외과로 가볼 것을 당부했다. 다른 과도 통합 운영하는 병원이라서 유방외과는 바로 옆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의사가 유방외과 진료를 꼭 보라는 말이 걸려 그날 바로 유방외과를 들렀다. 하필 점심시간이었다. 산부인과 진료 대기가 길어 몸이 지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귀찮기도 했다. 두 명의 간호사가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이따금 유방이 쿡쿡 찌르듯 아프다고 했다. 간호사가 한번 만져봐도 되겠느냐고 물은 뒤 왼쪽 가슴을 이리저리 만졌다.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무언가 만져지는 것 같지만 임신 중이라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 일단 접수를 했지만 마음을 돌려 이내 접수를 취소했고 나중에 시간 내서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집으로 왔다. 병원을 다녀온 뒤로 통증은 잠잠해졌다. 그렇게 그렇게 무심하게 잊고 지냈다.


출산을 2주 앞둔 시점이었다. 난생처음 참기 힘든 통증이 찾아왔다. 그날 직감적으로 상황이 심각할 수 있음을 느꼈다. 그럼에도 미련한 성격 탓에 곧장 병원을 가지 않았다. 통증을 완화해 보려고 갖은 노력을 했다. 두 손으로 가슴을 쥐어짜보기도 하고 수압을 세게 틀어 샤워기 호스를 가슴에 대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점점 더 심해졌다. 칼로 살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이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남편에게 병원 다녀오겠다는 말만 문자로 남긴 채 급하게 택시를 잡고 부랴부랴 가까운 유방외과를 방문했다.




진료가 끝나기 일보직전 4:40분에 도착.

진료 접수 마감 팻말이 올려져 있었지만 울고 있는 막달 임산부 모습을 본 간호사들은 지나치지 않았다. 접수를 받고도 한 시간이나 늦게 퇴근을 하셨다.


초음파부터 확인했다. 15분 정도 베드에 일자로 누워 초음파를 진행하니 뱃속에 아이도 힘들었는지 꿀렁꿀렁 움직이기 시작했다. 초음파 확인이 끝나고 의자에 앉았다. 의사는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고 뜸을 들이며 말을 했다. 내가 아프다고 한 부위에 혹 모양이 좋지 않다고 했다. 오늘 이렇게 온 김에 조직검사까지 하는 것이 어떠겠느냐며 물었다. 대답을 미적거렸다. 적막이 흐르는 불길한 분위기에서 조차 설마 암일 것이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 싶어 속으로 출산 후 검사하러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의사가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의 걱정 어린 눈빛을 읽은 의사는 막달에 국소 마취는 태아에게 영향이 거의 없다고 했다. 그래도 같은 아이 엄마로서 조직검사로 인해 아이에게 해가 될 1%의 가능성도 불안할 수 있으니 고통을 참을 수 있다면 마취 없이 검사를 하는 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의사가 설득하는 상황. 더 이상 우격다짐 할 순 없었다. 마취 없이 조직검사를 하겠다고 했다.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조직검사까지 해야 한다고. 당장 오겠다는 답문을 받았지만 답장을 해주지 못했다. 서둘러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다시 베드에 누웠다. 간호사는 손에 수건을 쥐어주었다. 아픔을 참기 위해 입을 앙다물었으나 새어 나오는 탄식까지 막을 수 없었다. 내 고통을 아이가 함께 느끼고 놀랐는지 이번에는 배가 딱딱하게 뭉쳤다. 그 순간에도 아이 걱정부터 들었다. 간호사는 검사 결과는 일주일 정도 소요되고 그때 꼭 보호자랑 오셔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조직검사를 하고 이틀 삼일은 덤덤했다. 딱딱한 한쪽 멍울이 그제야 암인 것 같은 확신이 들며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서 불안이 증폭했다. 돌이켜보니 임신 중기부터 왼쪽 가슴에서 동글동글한 무언가가 만져졌던 기억이 스쳤다. 조직검사를 기다리는 초조한 마음과 달리 시간은 더디기만 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여전히 생생한 그날의 날짜.

"2021.8.27."

유방외과 간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간호사: 혹시 오늘 오실 수 있을까요?

나: 마침 그쪽으로 갈 일이 있었는데 바로 갈게요.

간호사: 보호자 동행해 주세요.

나: 많이 안 좋나요? 저 혼자 결과 들어도 되는데요.

간호사는 멋쩍은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보호자가 같이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남편에게 상황을 전달했더니 곧장 휴가를 내고 오겠다고 했다. 간호사에게 다시 연락했다.


나: 남편이랑 같이 가는데 4시 전까지 도착할 거 같아요.

간호사: 혹시 남편분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나: 남편이랑 같이 갈 건데, 연락처가 왜 필요할까요?

간호사: 일단 알려주세요.




전화를 끊고 엄습해 오는 공포가 나의 목을 조였다.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허기가 졌다. 시간을 보니 점심 먹을 즈음이었다. 그 와중에도 건강한 음식을 먹겠다는 의지로 간판을 이리저리 쳐다보다가 추어탕 가게를 홀로 당차게 들어갔다. 30분 뒤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혼자 병원에 가서 결과를 듣고 올 테니 밥 다 먹으면 집에 먼저 가있으란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물었다. 얼버무리는 수화기 너머 남편의 목소리에서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고 나는 듣기 싫지만 들어야만 하는 그 말을 상대에게 재촉하기 바빴다.

어차피 알게 될 건데, 빨리 알아야 해결을 하니까 그냥 말해줘. 나 괜찮아. 암 이래?


횡설수설하는 남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정말 괜찮아. 심각한 거래? 말해줘 얼른.


마침내 그에게서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다.

응.. 암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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